빗썸·크래프톤 등 ‘큰손’ 등장
“부동산 투자, 기업가치에 부정적”
“부동산 투자, 기업가치에 부정적”
“서울 강남 일대 알짜 빌딩들 주인이 빗썸과 두나무로 바뀌고 있다.” 부동산 업계가 주목하는 ‘큰손’으로 가상자산 거래소 운영사들이 떠오르고 있다. 빗썸은 최근까지 9800억원, 두나무는 지난해까지 4000억원을 강남 부동산에 투자했다. 직접 매입 사례만 합산해도 두 기업이 강남 부동산에 쏟아부은 비용은 1조4000억원에 육박한다. 비공개 거래와 펀드 등을 통한 우회 투자를 합하면 수치는 더 커진다.
강남 부동산을 가상자산업계가 쓸고 있는 동안 서울 성수동 일대는 게임 업체 크래프톤과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점령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2020~2023년 7158억원, 무신사는 2019~2023년 1780억원 안팎을 성수동 부동산 투자에 썼다. 두 기업이 성수동 부동산 부지 매입에 쓴 돈은 9000억원에 육박한다. 무신사는 대림창고를 중심으로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2가 주변 부동산 최소 6곳을 매입했다. 크래프톤은 옛 이마트 성수점과 메가박스스퀘어를 대형 복합 거점으로 키우고 있다.
3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비대면 경제로 성장한 이들 기업의 ‘부동산 쇼핑’이 최근 4~5년 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큰손이 된 기업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되는 부동산’을 샀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집중 성장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가상화폐 거래, 온라인 게임, 모바일 쇼핑 등 비대면 사업으로 기업을 키우고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불렸다는 점에서 업계 안팎에선 아이러니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표적인 기업이 이 네 곳이지만 부동산 쇼핑에 나서는 기업은 늘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세청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부동산매매업을 하는 법인은 5만8140개에 이른다. 2019년 3만2869개에서 5년 새 약 76.9% 증가했다. 부동산임대업 법인은 같은 기간 4만9035개에서 6만2409개로 27.3% 늘었다.
기업들의 부동산 쇼핑은 안전자산 확보와 핵심 상권의 포트폴리오 구축으로 풀이된다. 부동산을 사들이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매각 후 재임차(세일앤드리스백) 등을 통한 자산 유동화 용도로도 쓰인다. 문제없는 자산 확보 방식이지만 비판적인 시선 또한 적잖다. 본업과 무관한 부동산 투자가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 비중을 높이는 동안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을 줄이거나, 비용 탓에 실적이 하락하는 경우도 나오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영전략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가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한경영학회지에 게재된 논문 ‘경영전략과 투자 부동산 그리고 기업 가치’에 따르면 투자 부동산 비율이 높을수록 본업의 성장성과 시장의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