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왼쪽)과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2월7일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계엄 당일 ‘KBS에 간첩죄 관련 보도 소스를 줘야한다’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여인형 전 사령관에게 이를 묻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부 언론사에 대한 봉쇄, 단전·단수 등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계엄 전 언론 작업이 의심되는 정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3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여 전 사령관의 기소 전 여섯 차례의 검찰 조서 등을 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가 여 전 사령관을 불러 조사하면서 방첩사의 ‘KBS 간첩죄 보도 지원 지시’와 관련해 묻거나 관련 진술을 받은 기록은 없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31일 여 전 사령관을 구속기소 하기 전 여섯 차례 소환해 조사했고 기소 이후로도 박헌수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등의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참고인 조사 때도 여 전 사령관에게 관련 질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1일에는 한 방첩사 간부를 불러 조사하면서 “지난해 12월3일 여 전 사령관이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에게 ‘KBS에서 간첩죄 관련 보도를 할 건데 우리가 소스를 줘야한다’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간부는 “KBS 보도 관련 간첩 외사 사건 기소 사례를 정리한 것을 여 전 사령관이 당일 저녁 보고 받았다”고 진술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런 작업이 계엄을 염두에 두고 실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 정당했다”고 말하면서 야당이 간첩죄 확대에 반대한 점을 든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하필 그 시점에 계엄을 정당화하는 작업이 있었던 것은 내란 혐의에 대한 직·간접적 증거”라며 “적어도 양형에 참작할 만한 사유로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검찰이 여 전 사령관에게 이를 캐묻지 않은 것은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는 근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경향신문과 한겨레, MBC 등 일부 언론사를 봉쇄·단전·단수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이미 드러났는데도 군이 추가로 언론사 대상 작업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안일하게 수사했다는 것이다. 서채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간단히 확인할 수 있었던 단서를 발견하고도 충분한 진술을 받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제기된 의혹은 충분히 수사했다고 밝혔다. 특수본 관계자는 “조서에 담기지 않았다고 수사 과정에서 확인 안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 측은 “평시에도 방첩사 차원에서 국회나 언론과 긴밀하게 소통한다”며 “계엄과 상관없는 일”라고 말했다. KBS 역시 “KBS가 간첩죄 보도를 할 예정이었다거나 방첩사에서 간첩 사건을 전달받았을 수도 있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