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 증시의 3가지 '굴레'
저배당·잦은 증자·수출 변동성
수출 의존 높아 경기 민감도 커
배당성향 최저...아르헨보다 낮아
이익 늘어도 자사주 소각·배당 인색
'밸류업' 역행 행태에 개미들 분통
저배당·잦은 증자·수출 변동성
수출 의존 높아 경기 민감도 커
배당성향 최저...아르헨보다 낮아
이익 늘어도 자사주 소각·배당 인색
'밸류업' 역행 행태에 개미들 분통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1일 한국 주식 투자자들은 하루에 세 번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는 코스피 시가총액 10위 이내의 촉망받는 방위산업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 원 규모의 사상 최대 유상증자를 발표한 것이었다. 한 달 전 한화에너지 등 그룹사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3,000억 원에 취득했기에, 투자자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당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재무 담당 임원은 "(인수자금은) 현금 보유분과 영업활동 현금흐름으로 충분하다"고 답했지만, 한 달 만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것이다.
같은 날 이차전지 기업인 금양은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거래가 정지됐다. 금양은 KOSPI200 지수에서 퇴출된 데 이어,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 ‘의견 거절’ 감사 의견을 받았다. 한때 19만4,000원까지 상승했던 주가는 9,000원 밑으로 내려갔고, 시총 규모도 6,333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코스닥 시가총액 4위 기업 HLB도 간암 신약 '리보라세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불발된 여파로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 기업들은 모두 한국 증시 양대 시장 시가총액 최상위권에 있는 '대형 우량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런 대형주도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 한국 주식시장이다. 오죽하면 '국장(국내 증시)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수출에 흔들리는 기업 이익
한국 증시에서 개별 종목 투자가 어려운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상장기업 대부분이 수출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은 내구재(가전, 스마트폰, 자동차 등)와 소재(반도체, 철강,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자본재(조선, 기계 등)에 치중돼 있다. 이 산업들은 글로벌 경기 변동에 따른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다.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내구재 소비가 크게 위축되기 쉬운 데다, 주력 수출산업 대부분이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장치산업이다 보니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경기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재고를 쌓고 가격을 인하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크다는 이야기다. 아래 [그림]은 수출과 한국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을 함께 보여주는데, 수출이 줄어들 때마다 급격한 EPS 하락을 겪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한국 제품 중 압도적인 브랜드나 독점력을 가진 제품이 없다는 것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나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모두 강력한 마케팅 파워를 자랑하기는 한다. 그러나 불황에도 가격 할인 없이 제값 받고 팔 수 있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기 힘들다. 반면 애플의 아이폰이나 명품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쇼퍼백(Shopper bag)은 경기 나빠진다고 대폭적인 할인 판매를 하는 일이 드물다.
한국 제품도 브랜드가 상승하고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는 산업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러나, 적어도 수년 내에 이런 품목이 수출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격렬한 이익변동에 대응하는 방법은
그렇다면 수출 경기에 민감한 수익 구조를 가진 기업들의 경영 전략을 들여다보자.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강력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불황기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작년에만 53조 원이 넘는 설비투자를 단행하고, 28조 원에 이르는 연구개발비를 집행했다. 이런 와중에도 매년 배당을 꾸준히 지급하고 주가 폭락 국면에는 자사주 매입을 단행하는 것을 보면, 삼성전자가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전략을 채택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경기변동에 따라 기업 수익성이 널을 뛰기 때문에 자본정책, 즉 기업의 자금 조달 및 사용 정책에서 삼성전자와 다른 전략을 취하게 된다.
한국 기업의 자본정책에서 핵심은 배당금 지급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은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배당은 매우 경직적인 자본 정책이기 때문이다. 즉 배당을 꾸준히 지급하다 중단하는 순간, 주식시장에서는 '이 회사에 무슨 큰일이 생긴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연기금을 비롯한 장기투자자들은 기업의 배당이 경영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라 간주하기에 더욱 충격이 커진다. 심지어 회사채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거나, 유상증자 등 다른 자금 조달 수단이 막혀 버릴 수 있다. 이런 연유로 한국 상장기업들은 배당의 시작에 매우 신중할 뿐만 아니라, 한 번 배당을 주기 시작하더라도 좀처럼 인상하지 않으려 든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최저 배당 성향, 즉 순이익 대비 배당금의 지급 비율이 세계 최하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4~2023년 기준 한국은 27.2%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42.7% 독일은 54.6% 그리고 아르헨티나도 27.4%를 기록해 한국보다 높았다. 물론 절대적인 배당이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상장기업의 이익이 일시적인 부침은 있어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기에, 지급 배당금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배당이 의미 있게 인상되는 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면? 증자!
배당을 최대한 억제했음에도 자금이 부족할 때, 기업들은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다. 자회사 및 물적분할 회사의 상장, 그리고 유상증자가 대표적인 자금 조달 방법이다. 물론 미래 전망이 밝은 프로젝트에 투자할 돈이 필요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에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증자에 나서는 타이밍을 보면, 이게 정말 수익성 높은 곳에 투자할 목적인지 의심하게 된다.
1984년 이후 한국 코스피 지수는 20배 올랐지만, 시가총액은 381배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주식 수에 주가를 곱해 계산하니, 40년 동안 상장 주식 수는 20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주식 수가 가장 크게 늘어난 해를 찾아보았더니, 급박한 위기 다음 해였다. 1998년과 1999년 등 외환위기 직후, 그리고 2009년이나 2020년 등이 가장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때가 주가 레벨이 높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기 전망도 매우 불투명한 시기였다는 점이다. 경영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 놓고, 막상 이익이 늘고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소각 같은 보상은 주지 않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 셈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최근 발간된 한국은행의 보고서 '주주환원 정책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에서 저자들은 기업의 주주 환원이 높아질 때 기업 가치가 개선되는 경향이 있지만,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주주 보호 수준이 높을 때에만 주가를 끌어올린다고 지적한다. 즉 기업들이 배당을 줄이고 유상증자 등을 통해 보유 현금을 높이는 일은 주주들 입장에서 긍정적 소식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빈번하게 자금을 조달하면서 아예 배당을 주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는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한국 상장기업의 대부분이 이 부류에 들어가니, 해외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개별 종목에 대한 투자 판단을 내리기에 정보가 부족한 면이 있으니, 시장 전체를 산다는 마음으로 자산을 분산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