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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미국 측과 접촉한 결과,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 최하위 단계에 포함시킨 것은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음."3월 17일 외교부 입장문
미 에너지부(DOE). 워싱턴DC=UPI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9시. 늦은 시간에 외교부는 돌연 이 같은 입장문을 배포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공식적으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오른 사실을 인정하자 부랴부랴 그 이유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책 문제가 아니라 단순 보안사고 때문에 동맹국가인 한국이 미국 적성국가나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거부해온 국가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민감국가 지정, 단순 보안 사고 때문?

조태열(가운데) 외교부 장관이 24일 국회 외통위에서 열린 현안질의에 출석해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에 관한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 입장문은 한국이 민감국가에 지정됐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 일주일 만에 나왔습니다. 에너지부의 공식확인이 이뤄지기 전까지 외교부는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비공식 경로로 제보를 받아 경위 파악 중"이라고만 하고 있었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정권 교체 직전인 올 1월 초 한국을 SCL에 지정한 사실이 확인되자 외교부는 '미 측의 설명'이라는 근거를 들며 최근 내부 규정을 강화하면서 기술적 보안 문제로 한국이 SCL에 지정됐다고 강조합니다. 이어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실험실에 가는 한국인이 많아서 일부 사건이 있었고 이 명단이 만들어졌다"며 "일부 민감한 취급 부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반 사례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의 말이 '맞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외교부는 설명을 해온 주체가 '에너지부'인지도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기엔 이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현
에너지부 담당자들조차 한국이 SCL에 지정된 정확한 배경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
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가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됐습니다. 미 DOGE의 칼부림으로 에너지부에도 대량해고바람이 불었는데요. 하필 SCL 관리를 하는 정보방첩국(OICI)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해고된 첩보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복귀 지시에 불응했죠. 그래서 지금 에너지부와 산하 국립연구소에는 방첩업무를 맡아줄 직원을 구하는 공고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민감국가 지정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여기
에 있습니다. 외교부가 입장문에서 설명 주체를 '에너지부'가 아닌 '미 측'이라고 밝힌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별일 아니다(No big deal)'라고 해명한 윤 대사대리도 정확히 사안을 이해하고 말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핵 비확산·핵 안보 업무 맡았던 SCL 관리 조직

미 에너지부(DOE) 내부자료에 명시된 '민감국가'의 정의. 미 에너지부


주목할 점은 민감국가 목록을 관리하는 주체입니다. 당초 SCL은 에너지부의
'비확산 및 국가안보국'에서 관리
를 했습니다.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대만계 연구원이 핵탄두 기술 문건을 중국에 넘긴 혐의를 받는 사건이 발생하자 2007년 핵 정보와 방첩문제를 통합 관리하는 기구인 '방첩정보국(OICI)'이 탄생했죠. 이들은
핵무기와 핵주기 프로그램, 핵물질 안보와 핵 테러리즘, 외국의 핵능력 및 핵활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분석·조사하고 관련 내용을 국가핵안보청에도 고지
합니다.

민감국가 목록을 관리하는 행정조직의 성격만 봐도 '단순 보안 규정 위반'으로 볼 만한 단서가 없는 것
입니다. 물론, 미 에너지부는 한국이 민감국가 명단에 있어서 기술협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내부 규정상 민감국가의 국민은 에너지부나 산하 연구소를 방문할 때 일정 기한 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엄격한 신상검사와 특별보안계획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첨단과학 기술 협력 동향 보고서를 작성한 제임스 쇼프 사사카와재단 수석이사도 "민감국가로 지정됐다는 건 한국 연구자들이 미국과 특정 분야에서의 기술협력을 할 때 위험 평가(risk-matrix)를 통과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라며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된 새로운 분야에서의 한미 간 협력은 일정 기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외교문서와 최근 개정 자료에도 민감국가 지정 사유는 '핵 관련'



본보는 과거
외교문서와 2023년 개정된 에너지부 자료, 2024년 개정된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관련 규정을 모두 찾아봤습니다
. 아울러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에너지부 산하 국립연구소의 보안을 주제로 개최한 청문회
도 살펴봤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민감한 핵 및 원자력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연구소를 방문하는 해외, 특히 중국 과학자들의 수가 급증한 사실을 우려
했습니다. 조태열 장관과 조셉 윤 대사대리가 말한 '보안규정 위반'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핵 또는 원자력 기술과 관련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윤 대사대리는 지난해 2,000명 이상의 한국 학생, 연구원 공무원이 수출 민감성 자료가 있는 연구소를 방문했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외교부도 구체적으로 어떤 위반이 발생했는지 설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감국가로 지정된 유일한 동맹국인데도 말이죠.

"보안 규정 위반이 발생했더라도 한국 정치인들은 핵무장론과 핵잠재론이 결국 한국으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 과학자연맹(FAS)의 아담 마운트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일보의 이메일 인터뷰 문의에 이같이 밝혔습니다. 보안 위반 사례가 발생했더라도, 한국 내 만연한 핵무장론이 민감국가 지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입니다.

국내 핵담론 경계해온 바이든 행정부와 "NPT 준수" 외치면서 핵잠재론 방치한 외교부



굳건한 한미동맹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늘 미국의 핵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의심을, 미국은 한국의 핵개발 추진에 대한 의심을 해왔습니다.
비확산 문제에 있어 한국의 신뢰도는 높지 않은 것도 사실
입니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2년에는 연구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추출을 시도했다가 발각됐고, 2004년 우라늄 농축 사실이 드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될 뻔한 적도 있습니다.

2023년 7월 18일 진행된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 당시 모습. 대통령실 제공


핵무장론이 불거질 때마다, 그리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과정에서 핵연료 재처리 기술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미국은 끊임없이 한국의 핵개발 의도를 의심했죠.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을 때, 워싱턴과 주한미국대사관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 논의는 일시중단됐고, 미국 외교관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 원문과 의도를 파악하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와 한국의 비확산 의무 준수를 확인한 '워싱턴 선언' 후 바로 "한미 핵 공유" "마음만 먹으면 1년 안에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이 대통령실에서 나오자 백악관에서 즉각 진압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논의를 맡은 당국자가 윤석열 정부의 핵전략 정보 요구에 '질려'버려 반한(反韓)으로 돌아섰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습니다. 실제 해당 인물은 워싱턴에서 한국 핵무장과 미국 전술핵 재배치에 가장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의 핵무장뿐 아니라 핵잠재력 확보 의도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눈치만 보는 무책임한 외교부…한국 핵무장,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일 아니다



보안 문제 하나만으로 일거에 민감국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국제사회가 주시해온 '비확산체제 위협국가'이고, 핵무장 또는 핵잠재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상황에서 보안 문제가 발생했다면 민감국가에 지정되기 충분합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 비확산체제는 급속도로 약해졌습니다. 러시아의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와 북한과의 동맹조약, 미국의 오커스협정 및 호주 핵추진잠수함 도입 결정이 대표적입니다. 북핵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비확산체제가 약해지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핵' 자도 꺼내면 안 되는 것일까,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미국의 핵 정책을 자문해온 한 학자가 본보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러시아가 북한과 동맹을 재건하면서도 핵 관련 기술을 제공하지 않는 이유가 한국의 핵개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한국이 핵도미노의 출발점이 되면 비난이 결국 미국을 향할 것이라는 걸 미국이 모를까요? 한국이 핵개발을 한다고 하면 중국은 또 어떻게 반응하겠어요?"

결국 벨라루스 전술핵 재배치와 오커스 핵추진 잠수함 협정은 '핵균형' 차원의 조치라고 한다면, 한국의 독자 핵개발이나 핵잠재력 확보는 핵균형을 깨트리는 정세불안 요소라는 지적입니다. 일본이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을 통해 우라늄을 무기급인 20% 수준으로 농축할 수 있는 반면,
리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으로 우라늄을 저농축할 수 있다고 합의하고도 관련 협동연구가 제한
되는 이유인 것이죠. 이런 기술을 보유해도 한국이 핵을 무기화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다는 의미이고, 한국이 무기화하면 동북아 지역정세를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 중국 모두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인식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을 둘러싼 국제 핵 질서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북핵 위협 때문에 독자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NPT의 공인 핵보유국들은 한미 핵확장억제로 북한의 핵위협은 충분히 억제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동북아 안보 균형 문제로 확장되는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만큼 우려가 큰 것이지요.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가 한국의 핵무장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독자핵무장에 우호적인 인물은 국방부 정책차관 인준을 기다리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입니다. 하지만 그가 국방부에 들어가더라도 맡을 업무는 '전략·정책'이지, 핵 관련 업무가 아닙니다. 또, 콜비 차관 후보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발언한 건 중국의 핵능력 견제 목적에 더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핵무장을 한다면,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해야 하는 역할을 노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어려움과 한계를, 외교부는 분명 알고 있습니다. 비확산 실무와 한미 원자력 협정 논의를 하는 당국자들이니까요. 그런데도
외교부는 국내 핵무장·핵잠재론을 잠재울 수 있는 민감국가 논란이 불거지자 '정책상 이유'가 아니라 단순 보안 사고 때문이었다고 일관
했습니다. 조태열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체 핵무장 검토' 가능성에 대해 "시기상조지만 '오프 더 테이블'(논외)은 아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조 장관은 민감국가 지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에서도 열심히 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지나친 정쟁화를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의 정쟁만큼 외교부는 국익을 해치는 담론이 확산하는 것을 차단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책상 이유가 아닌 단순 보안 규정이 민감국가 지정 이유였다는 외교부의 입장문은 그 의무를 다한 것일까요?

외교부도 맡아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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