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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의 바리스타·만학도·성경통독가… 황혼의 여정에서 들려주는 우리 시대의 메시지
게티이미지뱅크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라.”

올해로 90세를 넘긴 신앙의 선배들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이들이 그 세월을 거쳐 전하는 깨달음엔 깊은 울림이 있다. 이들은 1930년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군부독재,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지나 팬데믹 시대까지 살아냈다. 한 세기가 오롯이 담긴 버거운 세월에도 여전히 왕성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표정은 오히려 가뿐했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묻는 질문엔 “인생의 여정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정답만 돌아왔다. 아흔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배움을 이어가고 하나님을 전하며 신앙 고백을 담은 책을 내고 성경 통독도 이어가는 현재진행형 신앙인들을 만났다.

들꽃카페 교회, 구순의 바리스타 목사
강영애 목사가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들꽃카페에서 차를 따르고 있다. 강영애 목사 제공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36㎡(12평) 남짓의 ‘들꽃카페’에는 직접 커피를 타 주면서 외롭고 고독한 교인들을 만나 기도해주는 할머니 바리스타가 있다. 매주 화요일 9명의 시니어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곳은 강영애(90)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이자 기도처다.

강 목사는 “은퇴를 앞두고 두려웠다. 쉬지 않고 달려온 삶을 멈춰야 했기 때문”이라며 “커피믹스만 타 마셨던 내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전문가에게 커피 내리는 법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들꽃카페’는 외로운 이들뿐 아니라 지친 목회자들이 쉬어가는 공간이다. 강 목사는 따끔하게 꾸짖기도, 때론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품어주기도 한다. 카페는 목요일 단 하루 문을 닫는다. 이날은 강 목사가 삼각산에 산기도를 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 건강 비결은 바로 산기도야. 오전 7시에 삼각산에 올라가 바위 위에서 한 시간 반 동안 기도해.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빠지지 않아. 걱정 안 해도 돼. 그런다고 뼛속에 물 안 들어가거든.”

삼각산은 그에게 특별한 장소다. 강 목사는 1935년 광주에서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외교관을 꿈꾸며 1958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지만, 시대의 한계 속에 꿈을 접고 결혼을 선택했다. 신앙이 없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교회를 싫어한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그녀가 끝까지 붙든 것은 신앙이었다.

강 목사는 “교회에 다녀올 때마다 남편의 의심이 폭력으로 이어졌다”며 “결국 자식 셋을 데리고 삼각산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삼각산 움막에서 3년을 지냈어. 건빵으로 버티고 없으면 바위틈 물을 마셨지. 낮엔 성경을 읽고 밤엔 기도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났어. 그때 교회 7곳을 세우겠다고 서원하고 산을 내려와 목회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

그는 1971년 인천복음교회에서 시작해 들꽃카페교회까지, 하나님께 한 약속을 모두 지켰다고 회고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자신의 신앙 여정을 담은 책 ‘신기한 믿음’을 펴냈다. 고단한 세월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걸어온 90년의 발자취를 담은 책이다.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한 제가 자랑하려고 책을 낸 건 아닙니다. 제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통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세상 서로 사랑하고 돕고 베풀며 하나님 보시기에 예쁜 삶을 살아가세요.”

70년 만의 학위… 91세의 만학도
권용도 장로가 지난 2월 대전 한국 침례신학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특별공로상을 받은 뒤 축하를 받고 있다. 권용도 장로 제공

올해 91세가 된 권용도 장로는 지난 2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거의 70년 만에 기독교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는 그를 향해 어린 후배들은 뜨거운 박수로 축하와 존경을 표했다.

권 장로는 “경희대 한의과를 다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1957년 신학교에 편입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휴학하고 군에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며 “제대 후 바로 사회에 나가 직장인으로 살며 신학의 꿈은 늘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9년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첫 적금 10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어려웠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생각하면서 후학을 지원하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이 실천은 ‘겨자씨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이어졌다.

후배들의 학업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인생도 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꿈도 돌보고 싶어진 계기다. 그는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내 인생을 돌아보니 가족 모두가 석·박사 학위가 있는데 나만 없더라”며 “그제야 마음속에 묻어둔 신학교의 꿈이 다시 떠올라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어린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 건 쉽지 않았다. 90세의 만학도는 “교수님과 학생들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 ‘왜 웃는 거지’ 싶은 순간도 있었다”며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 시험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마태복음 7장 7절을 붙들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지. 수료식 날, 모든 여정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해 눈물이 났어요.”

권 장로는 졸업 후 아내와 함께 시골 미자립교회를 다니며 외로운 어르신들과 교제하고 전도와 신앙 상담을 하며 지내기로 했다. 하지만 고령이라는 한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긴 어렵다. 그는 “최근 아내 건강이 부쩍 약해져 걱정”이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90년 삶을 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하나님께 빚진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며 살아온 날들이 모두 은혜였고 감사뿐이었습니다. 베풀고 용서하며 사랑하며 사세요. 그것이 결국 가장 복된 길이었습니다.”

세월을 이긴 신앙, 매년 성경 7독
김경심 권사가 지난 22일 경기도 남양주 자택에서 성경을 읽는 모습. 김경심 권사 제공

김경심(91) 마석감리교회 은퇴 권사는 지금도 새벽예배를 비롯한 모든 공예배에 빠지지 않는다. 교인들은 그를 ‘신앙의 롤 모델’이라고 부른다.

구순의 나이에도 그의 변함없는 신앙의 열정, 성경 통독과 걷기 묵상 그리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꾸준함 때문이다. 김 권사는 “2002년부터 24년째 매일 새벽예배를 다녀온 뒤 4000보씩 산책하며 묵상과 기도를 한다”며 “말씀을 읽고 나면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해져 틈만 나면 성경을 읽다 보니 매해 성경을 6~7독 한다”고 비결을 전했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너무 많아 좋아하는 구절을 하나만 고르기 어려워. 최근 특별히 감동받은 말씀은 요셉이 형들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라고 고백하는 장면인데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 깊이 묵상하게 돼.”

김 권사는 42세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장로가 된 큰아들의 전도로 교회에 나간 게 시작이었다. 그는 “그 뒤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시골에서 6남매를 키우며 둘째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지. 가진 것 없이 힘든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위로와 기쁨을 얻으며 버틸 수 있었어. 지금은 자손들이 사랑하고 화목하게 예수를 잘 믿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어.”

남은 인생의 목표는 “천국으로 부름을 받는 날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최선을 다해 살고 사랑하며 오직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세요. 그 믿음을 붙들고 믿음의 푯대를 향해 끝까지 걸어갈 때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됩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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