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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절반 면적 불탔다…기후·인재·대응 모두 실패
[비즈니스 포커스]

25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일대의 산이 이번 화재로 타 검게 그을려 있다. 2025.3.25 사진=연합뉴스

“이게 끝이 아닐 것 같다는 걱정이 많이 듭니다.”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3월 26일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통해 이번 산불 사태가 기후 위기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대규모 산불 앞에 인간은 무력하고 참담했다. 인재(人災)와 대응 체계, 산림 조건과 기후 위기. 한국은 지금 산불 앞에서 가장 나쁜 조건을 모두 갖춘 상태다.
서울시 면적 절반 탔다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산불 재난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월 29일까지 산불로 25명이 숨지고 5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대략 집계된 산불 구역은 올해 초 세계를 놀라게 한 ‘캘리포니아 남부 산불’을 훌쩍 뛰어 넘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돼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북부 5개 지자체로 확산된 산불 영향 구역은 29일 기준으로 4만5157헥타르(ha)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1월 28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캘리포니아 남부 산불 면적은 약 2만3200ha다.

국내에서도 역대 최대 면적였던 2000년 4월 삼척 등 5개 지역 동해안 산불 2만3794ha, 2022년 3월 울진·삼척 1만6302ha를 훨씬 넘었다.


극심한 피해를 낸 경북 산불은 전날인 28일 일주일 만에 모두 진화됐으나, 밤사이 안동에 이어 의성에서 재발화해 당국이 진화작업을 펴고 있다.

지난 21일 발생한 산청 산불은 9일째 산림을 태우고 있다. 이날 오전 6시 기준 산청 산불 진화율은 96%다.

역사상 최악의 화재 원인에 의견은 분분하다. 통계적으로 보면 봄철인 3월과 4월은 한반도의 화재 집중 시기다. 2015년부터 최근 10년간 3~4월에 전체 산불의 46%(251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산림 피해 면적은 전체의 86%(3424ha)다. 봄철은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부는 시기로 산과 들에 겨우내 메마른 풀·낙엽 등이 남아 있어 산불 발생 및 확산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다 원인은 인재였다. 한 해 평균 산불 발생 건수 546건 중 원인 미상 78건을 제외하고 입산자 실화가 171건(37%)으로 가장 많았고 쓰레기 소각 68건(15%), 논·밭두렁 소각 60건(13%) 순이었다.

이번 화재 역시 첫 시작은 인재로 추정된다. 대규모 산불의 불씨가 된 경북 의성군에서 ‘실화자’로 추정되는 성묘객이 급하게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발화 지점에서는 라이터가 발견됐다. 의성군은 “괴산리 야산 산불은 성묘객 실화에 따른 것으로 불이 나자 실화자가 직접 119에 ‘묘지를 정리하던 중 불을 냈다’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산림 피해 면적이 10년치 평균(3424ha)보다 커진 건 이 시기에 ‘강풍’을 만나 북동부권 4개 시군으로 급속도로 불이 번졌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 기간 전국적으로 초속 15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고 산간은 초속 20m 이상의 돌풍이 불었다. 특히 강한 바람을 타고 불티가 빠르게 번져 수초에 2km 이상 날아가는 비화 현상이 나타나거나 나무 상단부를 태우며 확산하는 ‘수관화’ 현상도 보였다. 이번 산청 산불 현장에서는 무려 10초 만에 산 정상부에서 불티가 1km 이상 날아가는 것이 목격됐다.
30년 된 헬기, 73세 기장번지는 불 앞에 정부의 진압 시스템은 초라했다. 3월 26일 경북 의성의 산불 현장에서는 진화 헬기 1대가 추락했다. 1995년 생산된 30년 가까이 된 헬기였다. 기장 A 씨는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나이는 73세.

전문가들은 산불 진화의 핵심인 헬기 부족 문제가 이번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현재 산림청에서 보유하고 있는 헬기는 모두 50대다. 이 중 32대가 담수용량 5000리터(L) 미만의 중형이고 11대는 1000L 미만 소형이다. 담수용량 5000L 이상으로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뿌리며 큰 역할을 하는 대형 헬기는 고작 7대에 불과하다.

이 헬기가 모두 산불 현장에 투입되지도 않는다. 수급 부족과 점검 등으로 하루에 30∼35대밖에 운용할 수 없다. 중형 헬기 29대 중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 8대가 멈춰 있고 1대는 지난해 사고가 나 조사 중이다. 기종 역시 노후화됐다. 기령이 20년을 초과한 헬기는 약 65%(33대) 정도인데 이 중 30년 이상 된 헬기도 12대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도 별도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 피해 면적인 경북도가 보유한 19대의 헬기 중 대형 헬기는 한 대도 없고 5대는 소형, 14대는 중형이다. 19대 중 13대는 기령이 30년을 초과했으며 1962년에 제작된 헬기도 1대 있다.

전문가들은 일찍이 산불 진화의 핵심인 소방 항공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살수가 가능한 소방 항공기는 1만~3만L의 물을 공급할 수 있다.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전 의원은 과거(2023년 5월 16일) 소방청을 상대로 진행된 현안질의 당시 “야간에 소방 헬기는 뜨지 못하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해도 못 뜨는 데 반해 (비행기는) 야간에도 운용 가능하고 담수용량과 진화 효과도 훨씬 더 크다”며 비행기를 활용한 산불 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군 수송기를 활용하면 예산이 덜 든다고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산림청이 80억원을 들여 군 수송기에 물탱크를 부착하는 방식을 추진하자 국방부가 협조할 수 없다고 밝혀 중단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산불특수진화대의 평균 연령도 논란이다. 60세가 넘는다. 이번 산청군 산불 당시 고립돼 사망한 진화대원 3명이 모두 60대였다. 지역에서 산불진화대는 대부분 공공형 일자리 형식으로 모집돼 고령층 참여가 많다. 무거운 소화장비를 메고 작업을 해야 하는 진화대원은 최고령자가 81세다.
불 잘 붙는 나무, 방치된 숲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산림의 ‘구조적 인화성’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산림수탈과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산을 녹화를 통해 조림에 성공한 국가로 공인받고 있다. 그러나 숲을 가꾸는 데 집중했던 지난 50년이 이제는 ‘숲을 관리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산림의 대부분은 1970년대 이후 조림된 침엽수 중심의 단순림으로 밀집도가 높고 수분 보유력이 낮다. 나무 사이 간격이 좁고 생육 관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산 전체가 하나의 연료층처럼 작동한다. 게다가 벌채 후 남겨진 고사목, 가지, 낙엽이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어 불씨만 튀면 곧바로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산림 인부들이 안전 문제 등으로 나무를 벌목만 하고 끌어내리지 못한 채 잘려진 목재가 산에 그대로 쌓여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재천 교수는 “산림의 밀집도 문제를 이제 심각하게 고민하고 풀 때”라며 우리처럼 산악 지형이 굉장히 많은 오스트리아를 예로 들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처럼 산악 지형이 많은 나라는 험준한 지역에서는 기계로 벌채한 나무를 끌어내릴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며 “꼭 사람이 수작업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장비가 작동하려면 산불 대응과 산림 관리를 염두에 둔 공간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구조적 원인은 편중된 식수 정책이다. 경북 북부는 산불에 특히 취약한 소나무 숲이 집중된 지역이다. 산림청 ‘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경북의 소나무(소나무·해송) 숲 면적은 45만7902ha로 강원(25만8357ha), 경남(27만3111ha)보다 월등히 많아 전국 1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소나무의 연소 특성이다. 소나무 송진은 테르펜(terpene)류 정유 성분을 20% 이상 포함해 불이 잘 붙고 한 번 붙으면 오랫동안 강하게 타는 수종으로 분류된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소나무는 활엽수보다 화염 온도는 1.4배, 연소 시간은 2.4배 더 높고 길다.
전문가들은 재해 복구 시 활엽수 중심의 ‘내화수림대’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불에 덜 타는 수종을 완충 지대에 배치함으로써 산불 확산을 늦추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은 여름” 호주 사례 닮아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이 단발적 재난이 아니라 기후 위기로 인한 장기적 위험의 전조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재천 교수는 “이번 산불이 직접적으로 기후 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여러 정황을 보면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비가 자주 내리는 온대 지역이지만 최근엔 비가 한 시기에 집중되고 나머지 기간엔 극도로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기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 재난이 2019~2020년 여름 호주 남동부를 집어삼킬 듯 할퀴고 간 ‘검은 여름(Black Summer)’ 산불이다. 당시 호주 산불은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가뭄 현상이 겹치며 대형 재난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장동영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 등 한국과 독일 연구진은 위성 관측자료를 분석해 블랙서머 산불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장기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2000~2020년 인도양 해수면 온도를 분석한 결과 2019년 이례적으로 강한 ‘양의 쌍극자 지수’(positive Indian Ocean Dipole)가 발생했으며 이 현상이 동쪽에 위치한 호주 지역의 강수량을 감소시켜 장기적 고온·건조 기후를 유발했다고 밝혔다. 이는 결국 호주 남동부 산불의 장기화와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당시 정 교수는 “한국도 기후 위기의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우려했다.

가장 효과적인 산불 대응은 시작부터 막는 것이다. 한 해 평균 산불의 대부분은 인재이며 자연 발화는 극히 드물다. 결국 모든 산불은 사람의 부주의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법적 처벌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현행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과실로 산림을 태워 공공을 위험에 빠뜨린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산림보호구역에 불을 지른 경우에도 형량은 7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이다. 산림 인접지에서 소각을 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50만원 이하가 부과된다.

일각에서는 “조선시대 형벌을 도입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반응까지 나온다. 당시에는 방화범 본인은 능지처사, 가족 중 남성은 교형, 여성과 아동은 노비로 삼는 등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극단적인 형벌을 적용했다.

물론 시대적 잣대를 그대로 지금에 적용할 수는 없다. 옹호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매년 대형 산불이 반복되고 인재 가능성이 뚜렷한 상황에서는 경제적·환경적 피해 규모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 것 아니냐는 반문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불마저 진영 대결의 불쏘시개로“하필 이 시점(탄핵 정국)에 동시다발 산불이라니. 간첩 소행이 확실하다.”

“김건희 여사가 나쁜 흐름을 바꾸려 산불로 무속적 의식을 실행한 게 아니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전국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산불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다.

진보 성향 유튜버 A 씨는 지난 3월 23일 ‘김건희, 산불로 호마의식’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호마의식은 불을 활용한 밀교적 수행이다. 그는 “김건희 여사가 윤 대통령과 자신에게 드리운 악재를 끊기 위해 무속 의식을 실행했다는 의심이 나온다”며 “불이 강한 사람은 더 강한 불로 나쁜 기운을 태워 없앤다는 얘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은 24일 오전까지 조회수 7만1000회를 넘겼고 “대선 때도 산불이 났다”, “우연일 리 없다”는 댓글 900여 개가 달렸다. 영상은 언론 보도 이후 비공개로 전환됐다.

대통령실은 “전국적 재난을 음모론의 도구로 삼은 행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허위 주장에 대해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음모론 유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부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간첩 세력이 국가 중요시설을 노리고 방화했다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미국 정치 갤러리’에는 사흘간 관련 글 300여 건이 올라왔고 “산불은 반국가세력의 비대칭 전술”이라는 글에는 280여 건의 추천이 달렸다.

이외에도 ‘중국인 유학생의 방화’ 보도를 재조명하며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재난을 추모하기보다 정략적 도구로 삼는 음모론이 난무하는 것은 극단적 갈등이 심화됐다는 방증”이라며 “가짜뉴스 생산자와 플랫폼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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