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9시21분께 전북 무주군 부남면의 한 주택에서 난 불이 산으로 번져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 제공=전북특별자치도 소방본부
[서울경제]
경북 북동부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이 좀처럼 진화되지 않는 가운데, 해외 전문가들이 이번 산불에 대해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악화한 기상 조건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놨다.
26일(현지시간) 기후과학자 네트워크 ‘클라이마미터’(ClimaMeter)와 미국 기후변화 데이터 연구단체 ‘클라이밋센트럴’은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과 관련해 각각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두 단체에 따르면 산불이 발생한 기간 한국의 기온은 1991년부터 30년간의 평균보다 4.5~10도가량 높았다. 산불 발생 지역인 일본 서부 역시 평균 대비 7~8.5도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례적으로 따뜻한 기온과 낮은 습도가 초목을 건조하게 만들어 불이 더 빨리 확산했다는 것이다.
클라이밋센트럴이 21일부터 25일까지 산불이 발생한 지역의 기후변화지수(CSI)를 측정한 결과, 한국 남부지방 곳곳이 CSI 5등급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더위가 최소 5배 더 발생했다는 뜻이다. CSI는 기후변화가 온도 상승에 끼치는 영향을 수치화한 지표다.
클라이마미터가 이번 산불처럼 화재 발생이 쉬운 ‘고온건조’ 기후 패턴을 과거(1950~1986년)와 최근(1987~2023) 데이터에 기반해 분석한 결과, 단체는 산불 피해 지역의 평균 기온이 과거 대비 최대 2도 더 높으며 하루 강수량은 최대 2㎜ 더 적고, 바람이 시속 4.8㎞ 더 강하게 불었다고 밝혔다.
다비데 파란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리서치 디텍터는 “최근 몇 주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기록적인 강설과 수십년 만의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며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 온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 여러 극단적 상황을 증폭해 재난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카르멘 알바레즈 카스트로 스페인 파블로 데 올리비데 대학 자연시스템학과 교수는 “이번 동아시아 산불은 인간이 주도한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한 기상이변 빈도와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시급히 기후변화 영향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26일 경북 청송군 청송읍 야산으로 산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건조 특보가 유지 중인 경북에는 27일 5㎜ 안팎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나, 산불 영향권이 경북 북동부로 급격히 넓어지는 양상이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산청·하동·청송의 진화율은 77%, 의성은 54%, 안동은 52%에 그쳤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한 영덕은 10%, 영양은 18%의 진화율을 보이고 있다. 울주 언양과 경남 진해의 산불은 진화가 완료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산불로 26명이 사망했다. 중상 8명, 경상 22명 등의 인명피해도 동반됐다.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온 지역은 경북으로 총 22명 사망, 중상 3명·경상 16명 등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남에서는 4명이 숨졌고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울산에서는 2명의 경상자가 나왔다. 이와 별도로 의성군 산불 현장에서는 진화 작업에 나섰던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장 A(73)씨가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