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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한·중 기업 인력 확보전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베트남 북부 박닌성의 한 중국 제조기업에서 근무하는 베트남 노동자. 베트남 산업통상부 홈페이지


“박닌성(省) 내
중국 업체 평균 급여가 한국 기업보다 높기 때문에 한국 회사가 인력을 채용하기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노동자 수도 체감보다 30%가량 줄었다. 노동자들이 중국 업체의 신규 투자가 이뤄지는 다른 성으로 가기 때문이다.” (박닌성 소재 한국 A기업)


“사람이 직접 조립과 검사를 하는 우리 공장의 경우 작업자 숙련도가 중요 요소 중 하나다.
꾸준히 인력이 확보되고 숙련도를 높여야 하는데 적정 인력 유지가 안 돼 어려움
을 겪고 있다.” (박닌성 소재 한국 B기업)


지난 18일 베트남 북부 박닌에서 주(駐)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KOCHAM·코참) 주최로 열린 ‘북부 지역 인력난 대응 간담회’에 참석한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인들은 한목소리로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구해도 이들이 계속해서 일하도록 붙잡아 두기도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8일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서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북부 지역 인력난 대응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현지 기업 현황 설명을 듣고 있다. 박닌=허경주 특파원


①중국 기업으로의 이직 ②공단 인근 주거 지역 부족에 따른 낮은 노동력 유입 등 두 가지가 그 이유로 꼽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업체만의 일이 아니다. 베트남 곳곳에서는 몇 해 전부터 노동력 유출이 심화하고 있다는 한국 사업체들의 초조한 하소연이 이어진다.

”교육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



베트남에는 한국 기업 약 1만 개가 있다. 현지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을 비롯해 LG, 효성 등 한국 주요 기업과 이들을 따라 온 1·2차 협력 업체 생산 시설 상당수는 박닌·박장·하이퐁·하이즈엉 등 베트남 북부 지역에 자리 잡았다.

당초 이들을 베트남으로 끌어들인 매력 포인트는 △높은 성장 잠재력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남아시아를 잇는 허브라는 지리적 이점 △풍부한 젊은 인력 △저렴한 인건비다.

지난 18일 삼성전자 베트남 생산공장이 위치한 베트남 박닌성 옌퐁 산업단지에서 오토바이를 탄 노동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박닌=허경주 특파원


문제는 이 같은 장점을 노리고 베트남에 둥지를 튼 기업이 한국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1기(2017~2020년) 이후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업체들도 탈(脫)중국에 나섰고, 국경을 맞댄 베트남 북부 지역으로 대거 밀려들었다.
공단과 인근 지역에서 공급할 수 있는 노동력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만 가파르게 늘면서 인력 확보 경쟁
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중국 기업은 한국 등 타국보다 5~10% 높은 임금을 제안하며 다른 나라 회사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예컨대
한국 공장에서 일할 경우 직책, 외국어 구사 능력, 근무 시간에 따라 월 800만~1,200만 동(약 45만8,000~68만7,000원) 급여를 받는다면, 중국 기업은 월 900만~1,300만 동(약 51만5,000~74만5,000원)
을 준다.

단순 노동자는 물론 사무실 보조 근로자와 엔지니어, 중간 관리자, 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업의 베트남 ‘인력 빼가기’는 직급을 가리지 않는다. 전자 부문의 경우 한국 공장에서 근무한 경험을 높게 쳐주는 까닭에 이탈 폭이 더 크다.

베트남 북부 지역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 생산시설에서 일하는 현지 노동자들. 베트남 기획투자부


박닌성 한국 제조공장 관리자는 “비숙련 노동자를 6개월에서 1년여가량 교육해 쓸 만한 인재로 만들어두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다시 경험이 부족한 직원을 뽑아 일을 곧잘 할 만한 때가 되면 또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먼저 나간 노동자가 같이 일했던 동료를 꼬드겨 데리고 나가는 경우도 잦아 조직 분위기도 나빠진다”
고 말했다.

중국 인력 확보 ‘당근책’ 쏟아내



한국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베트남 노동자가 이탈하는지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중국 기업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1일 하노이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떨어진 박장성 꽝쩌우 산업단지와 번쭝 산업단지를 찾았다.

산단에 들어서자 한자 간판을 단 공장이 끝없이 이어졌다. 중국 대표 태양광 모듈(패널) 기업 JA솔라(Solar), 전자제품위탁생산 기업 리쉰정밀(立讯精密·Luxshare), 중국 굴지의 전기 스쿠터 업체 야디(雅迪·Yadea) 등 대부분 중국 기업의 생산 시설이다.

지난 21일 베트남 북부 박장성 꽝쩌우 산업단지에서 중국 전자제품위탁생산 기업 리쉰정밀(立讯精密·Luxshare) 노동자들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서고 있다. 박장=허경주 특파원


대부분의 공장 입구에는 ‘노동자 긴급 모집’이라고 적힌 구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많은 기업들은 회사의 장점을 소개하며 구애에 나섰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력 불필요. 기본급 510만 동(약 29만2,000원), 수당 130만 동(약 7만4,000원), 총 월 수입 900만~1,200만 동. 3개월 근무 후 급여 인상 검토
. 신규 직원 보너스 300만 동(약 17만2,000원), 신규 직원 추천자 보너스 200만 동(약 11만4,000원), 설·추석·어린이날·생일 등에 다양한 선물
제공.’- 중국 배터리 제조사 신왕다(欣旺达·Sunwoda)

‘100명 긴급!, 기본급과 수당 포함 총 월 수입 900만~1,300만 동. 점심 및 야근 시 식사 무료 제공(급여에서 공제 안 함), 위험하지 않은 작업 환경. 성수기 무료 과일·아이스크림 제공, 설·추석·크리스마스·생일 등 명절 선물 지급. 다양한 스포츠 활동 가능’- 중국 전기스쿠터 업체 야디(Yadea)

‘24시간 에어컨 가동’ ‘중졸 가능’ ‘기숙사 제공’ 등의 조건을 내건 회사도 적지 않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 기업들이 각종 당근책을 꺼내 들면서 구인에 안간힘을 쏟는 것이다.

지난 21일 베트남 북부 박장성 꽝쩌우 산업단지에 중국 배터리 제조사 신왕다(欣旺达·Sunwoda)의 인력 모집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력 불필요' '총 월 수입 900만~1,200만 동' '신규 직원 보너스 300만 동' 등 입사 시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박장=허경주 특파원


기업 문화를 이직 이유로 꼽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한국 H사에서 중국 G사로 이직한 베트남 청년 지앙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은 업무 강도가 높고 생산량 압박이 심해 어려움을 겪었다”
며 “두 회사 기본급 차이가 월 약 40만 동(약 2만3,000원)에 불과해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심적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사실 떠나는 노동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개인에게 노동과 일자리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노동력은 제조업의 핵심이고, 특히 숙련된 노동자는 업무 효율과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잦은 이탈은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 기획투자부는 지난해 12월 부처 기관지 킹떼바드바오 기사에서
“잦은 이직은 노동력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의 교육 및 (인력) 교체 비용 부담을 증가
시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탄 베트남 청년들이 지난 21일 박장성 꽝쩌우 산업단지에 위치한 홍콩 디스플레이 제조기업 블루웨이 테크놀로지 베트남 생산공장 앞에 걸린 인력 모집 현수막 사진을 찍고 있다. '24시간 에어컨 가동'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박장=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투자 악영향 가능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하지만 당장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한국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이 지방 정부나 타국 기업과 협의 없이 급여를 올린 까닭에 업체들의 불만이 커졌고 결국 (일부 지방성이) 중국 투자를 제한한다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지방 정부는 중국의 임금 인상을 통한 인력 빼가기 행태에 입김을 가하기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한다.
당국이 사기업 임금 체계에 왈가왈부할 수 없고, 인력 이동은 노동 시장의 수요·공급에 달려 있다는 이유
에서다.

지난 18일 한국 기업의 호소에 황티투하이 박닌 산업단지 관리위원회 기업관리과장은 “중국 기업이 한국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문제에 대해 박닌성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한국 기업이 불필요한 관리 비용을 절감하고 지출을 조정해 노동자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인력 유출을 막고 숙련된 노동자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
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18일 베트남 북부 박닌성 옌퐁 산업단지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베트남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고 있다. 박닌=허경주 특파원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일할 사람을 데려오려 해도 쉽지 않다. 한 대기업 계열사 베트남 법인의 경우 필요 정원을 채우지 못해 한국에서 인력을 모집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다만 현지 정부는 ‘베트남 시행령에 따르면 경영진, 임원, 전문가 등 전문가 직군에서는 외국인을 채용할 수 있지만, 단순 직무는 금지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임금을 올려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지만 여의치 않다.
베트남 최저임금이 매년 6~7%가량 가파르게 오르는 점도 부담스러운데, 추가 인상분까지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이 지역에 급격하게 늘어난 외국 기업들에 비해 거주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므로, 외국 기업끼리 서로 뺏고 빼앗기는 경쟁을 벌이지 않으려면 타 지역에서 더 많은 인력이 유입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방 정부가 주택 건설이나 교육 인프라 확충 등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한국 기업인들은 호소한다.


18일 간담회에 자리한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지방 정부에 “외부 인력이 성으로 많이 유입되고 산업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며 “거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경제 성장은 물론 (FDI기업의) 추가 투자 유치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참석자 역시
“공단 확장과 공장 증가 속도에 비해 주거·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점을 해결하는 게 우선순위”
라며 당국 차원의 주거 확대를 요청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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