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무죄 선고 후폭풍이 국민의힘을 뒤흔들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사실상 털어낸 이 대표를 상대하기 위한 전면적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이 불가피하다고 여기던 여권 일각에서도 윤 대통령 탄핵 기각ㆍ각하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탄핵 찬성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측근인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닥터 스트레인지는 1600만분의 1로 타노스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을 계산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대선을 치른다면 정권을 지킬 확률은 그보다도 낮다”며 “현시점에선 면죄부를 받은 이재명을 이길 수 없으니 탄핵은 불가하다. 시간도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사이 대법원 판결도 받아보고 위증교사와 같은 다른 재판 결과도 받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의 동시 퇴장론을 주장해 온 한 중립성향 의원도 “민주당이 국회 과반 의석만 가지고도 30차례의 줄탄핵을 하고 정부 필수 예산을 다 삭감했는데, 정권까지 차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느냐”며 “이렇게 될 바에야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의 적대적 공생이 당분간 더 이어지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윤 대통령 ‘파면 불가론’은 그간 친윤 성향 의원들의 탄핵 기각 주장과는 맥락이 다르다. 선거법 항소심 무죄로 일종의 면죄부를 얻은 이 대표와 조기 대선에서 대결을 벌일 경우 패배가 예상되니, 차라리 윤 대통령 탄핵이 기각ㆍ각하돼 조기 대선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 선거법 2심 무죄 선고 이후 ‘지금 흐름으론 이재명을 이길 수 없다’는 일종의 패배주의가 당에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규모 산불 재난 대응 및 피해복구를 위한 산불재난대응 특별위원회 긴급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다만 이같은 패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에 대한 무죄 선고로 중도층의 ‘반(反) 이재명’ 정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통화에서 “이 대표의 2심 무죄는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후보 교체의 기회를 날려버렸다”며 “대선 국면이 된다고 8개 사건에서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 대표가 범죄자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내겠나”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이재명이 억지 무죄가 된 것은 사법부의 하나회 덕분”이라며 “오히려 잘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차기 대선을 각종 범죄로 기소된 범죄자와 하는 게 우리로서는 더 편하게 됐다”고 썼다.
이 대표를 향해 “재판 결과에 승복 의사를 밝혀야 한다”(권성동 원내대표)고 압박해 온 여당 지도부도 ‘반 이재명’ 정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27일 당 비상대책회의에서 여당 지도부가 “이 대표의 무죄 선고는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권영세 비대위원장), “판사의 판결문인지 변호사의 변론서인지 잠시 헷갈렸다”(권 원내대표) 등 동시에 법원을 압박하고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 지도부 인사는 통화에서 “항소심에서 이 대표가 100만원 이하 형을 받아 피선거권을 유지하게 됐다면 오히려 법원이 공정해 보였을 수도 있었다”며 “법원이 1심 선고를 정반대로 뒤집으면서 ‘그래도 이재명은 안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