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제거수술 후 뇌손상으로 사망
이유 듣지 못해 민사·형사 소송 나서
정부,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추진 중
"설명·사과, 소송 가능성 낮춘다"
의협은 "방어진료 부추길 것" 반대
이유 듣지 못해 민사·형사 소송 나서
정부,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추진 중
"설명·사과, 소송 가능성 낮춘다"
의협은 "방어진료 부추길 것" 반대
2019년 편도선 수술을 받기 전 밝은 모습의 김동희(당시 4세)군. 유족 제공
2019년 10월 다섯 살 동희는 엄마를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희야 엄마(동희 엄마), 비가 와서 우째 갈라카노(비 와서 어찌 가려고). 단디 가래이(조심히 가라). 아빠 퍼뜩 나사 온네이(아빠 빨리 나아서 와), 파이팅."
동희는 말이 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던 28개월, 아빠가 백혈병 판정을 받아 부모보다는 외할머니와 보냈던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엄마 아빠를 부르듯 '희야 엄마, 희야 아빠'라 불렀다. 입원을 위해 부모가 한 달씩 집을 떠났다 돌아올 때마다, 쓰는 단어가 하나씩 늘어 있곤 했다. 고작 다섯 살이 하는 말이 모두 부모를 걱정하는 말들이라 부산 사투리가 귀여우면서 미안해, 집을 나서는 부부 어깨엔 새삼 든든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저 말은 아들에게서 들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동희는 의료사고로 숨졌고, 병원 측이 사망이유조차 설명해주지 않아 이유라도 알고자 소송에 나서 1심만 5년째이다. 진심 어린 설명과 도의적인 사과 한마디면 달라질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대한의사협회는 아직도 병원(혹은 의료진) 측의 의료사고 설명을 의무화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다.
편도선 수술 받고 숨진 다섯 살 아이
만성 편도염을 앓았던 동희는 2019년 10월 4일 지역 A대학병원에서 편도제거수술을 받았다. 보통 1시간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2시간 13분이나 수술 시간이 걸렸다. 동희 부모는 '출혈이 좀 있었지만 잘 마쳤다'는 집도의 말을 듣고선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동희는 밥이나 약을 전혀 먹지 못하는 데다 기력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퇴원이 이른 것 같았지만 집도의가 '원래 편도선 제거 수술을 하면 그렇다'고 해 결국 이틀 만에 퇴원했다.
그런데 수술 6일째였던 10월 9일 동희는 새벽 1시 45분쯤 왈칵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었다. 동희를 실은 구급차는 수술한 A병원 응급실로 향했지만, 해당 응급실은 구급차 도착 5분 전이었던 1시 58분, "심폐소생술(CPR) 환자가 있어 못 받는다. 허락도 없이 오면 어떻게 하냐"며 이송을 거절했다.
결국 2시 18분, 20㎞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동희는 10월 24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뇌 대부분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5개월의 투병 끝에, 동희는 2020년 3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동희 부모는 살면서 소송을, 그것도 병원을 상대로 할 일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소송을 결심한 건
동희가 왜 죽어가고 있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집도의와 병원이
"법대로 하라"고 했기 때문
이었다. 소송이 아니고서야 보편적이고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는 편도선 절제수술을 받고 왜 동희가 뇌손상을 입었는지, 설명을 들을 방법이 없어보였다. 동희 부모는
병원이 수술 도중 출혈 범위를 찾지 못해
재수술(광범위 소작술)을 했다는 내용을 경찰이 확보해 그나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한의사협회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건당 100만~200만 원을 들여 진료기록 감정를 요청했지만, '진료가 적절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 진료기록 감정을 몇 번이나 더 요청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진료가 적절했다면, 의사가 성실히 설명했으면 될 일이 아닐까.
동희 부모는 2020년 6월
기적처럼 만난 의료전문 검사…기소에 성공했지만
그때 동희 부모를 살린 건, 국민청원과 한 의사 출신 검사였다. 수술실 폐쇄회로(CC)TV를 법제화해달라는 동희 아빠의 청원은 동의 20만6,040건을 얻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고, 그대로 경찰서에서 끝나는 줄만 알았던 사건은 경찰청으로 이송됐다.
경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은 수사를 진전시켜 송치했고, 사건을 건네받은 검찰은 7, 8번의 담당 검사 변경을 거쳐 의학박사 출신의 의료공인전문검사인 장준혁 검사(당시 서울서부지검)에게 배당했다.
장 검사는 직접 A병원을 찾아 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재수술 후 병원의 의무기록이 작성돼
있지 않았고, 재출혈 가능성이 있었지만 부모에게 설명하지 않았던 점 △A병원이 동희의 이송을
거부했던 당시, 설명과 달리 CPR 환자가 없었다는 점
등을 밝혀냈다. 검찰은 2023년 6월 의료진의 과실, 응급의료기피 사실 등을 규명해 업무상과실치사, 의료법위반, 응급의료법위반 혐의로의료공인전문검사를 만나 기소에 성공할 수 있어 환자들 사이에서도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동희네 사건은 지난 17일에서야 겨우 형사소송 1심 첫 증인신문이 열렸다.
민사소송 재판부는 형사재판 결과를 보고 결론 내리겠다면서 모든 심리를 멈춘 상태다. 아픈 몸을 이끌고 1인 시위며 방송을 통해 동희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 애썼던 남편은 2022년 결국동 희 곁으로 떠났다.
동희 아빠 김강률씨는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중 의료사고로 동희를 잃었다. 동희는 아빠가 치료를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김강률 아빠 퍼뜩 나사 온네이' 하고 응원하던 사랑스런 아이었다. 동희는 2020년 3월, 강률씨는 2022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유족 제공
"지금 살고 있는 이유는 둘째가 있어서···. 남편하고 약속했거든요. 첫째는 동희의 억울함을 반드시 밝혀달라, 둘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잘 견뎌라. 본인이 오래 살지를 못하니까 숙제들을 여러 가지 남겨놨어요. 그래서 둘째를 선물로 주고 간 것 같아요."
소희씨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적힌 '디데이'는 네 개다. 동희가 떠난 날, 동희 아빠가 떠난 날, 동희 동생이 태어난 날, 그리고 동희 동생이 성인이 되는 날이다. 네 살 동희 동생은 이번 달부터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나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일상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과 한마디 없었던 해당 집도의는 최근 피부과 시술을 하는 의원을 개원했다고 한다.
정부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추진, 의협은 반대
정부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이나 병원의 설명 의무를 법제화하고, 이때의 유감이나 사과 표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진이 법적 부담으로 사고 발생 후 환자와 가족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었다"며 "이로 인해, 환자와 의료진 간 불신과 갈등 악화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이 빈발하고 환자-의료진 모두 장기간 소송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협은 "의료사고에 대한 설명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의료인의 합리적인 의료행위를 위축시키고 방어진료를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어떤 사과나 설명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보다 형사고소와 형사소송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