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한국기독교언론포럼 공동대표(전 CBS 대기자)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전광훈은 신학대를 졸업하지 않은 부흥사 출신이다. 기존 개신교계에서 세력을 넓히지 못하니 독자적으로 극우 진영에서 세력을 넓혔고, 윤석열도 좌파를 통제하겠다며 여기에 호응해 더 힘을 얻게 된다.”
변상욱 한국기독교언론포럼 공동대표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등 극우 개신교 세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변 대표는 “전광훈을 제어할 다른 보수 개신교계 원로가 없다시피한데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 ‘광화문파’로 통칭하는 전광훈 세력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광화문파’와 경쟁하는 ‘여의도파’를 이끄는 손현보 부산세계로교회 목사를 두고는 “보수 개신교 진영에서 원로들을 중심으로 그를 행동대장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가 이끄는 세이브코리아가 집회 때마다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건 각 지역의 기독교총연합회가 배후에 있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개신교 정당은 원래 중도보수를 표방했다”며 “군사정권과의 공생과 뉴라이트의 탄생을 거쳐 극우화까지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1983년 CBS에 입사해 2019년까지 일했으며, 국내·외 개신교계, 개신교에서 이단·사이비로 정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등을 취재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극우 개신교 세력의 연원과 상황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전광훈은 어떤 사람인가.
“부흥사는 미국에서 시작됐고 한국엔 1960년대까지 성행했는데, 휴머니즘을 질타하고 절대복종과 순종, 종교적인 열광을 강조하는 포교를 했다. 전광훈은 반공 의식이 강한 평안도 출신 고 김홍도 전 금란교회 목사(1937~2020)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개신교 정당 운동이 뉴라이트와 함께 득세하면서, 전광훈이 주도한 개신교 정당도 유럽의 중도보수 성향이 아닌 극우 성향을 띄었다.”
- 전광훈은 어떻게 영향력을 키웠나.
“그가 주도한 기독사랑실천당이 2008년 18대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2.59%를 받아 원내 진입선인 3%에 근접했고, 전광훈은 영향력을 넓히게 된다. 그때부터 극우적 발언을 하며 기존 대형 교회들은 거리를 두고 있다. ”
-그럼에도 개신교 주류가 전광훈을 끊어내지 않는 것 같다.
“진보 진영이 집권할 때 개신교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다. 성소수자와 무슬림에 대한 문호가 넓어지는 것도 반대하지만, 사학재단 재산도 지키려 한다. 적잖은 교회나 개신교인들은 미 군정으로부터 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을 ‘학교를 짓는다’는 조건으로 할양받았다. 진보 정권은 사학재단 재산에 세금을 세게 물리거나 재산 세습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대장이 필요한 것이다.”
-‘여의도파’ 손현보는 누구인가.
“손현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에 반대하며 대면예배를 강행하며 유명해졌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에서 목회하는, 보수 개신교의 세가 큰 영남 출신이기도 하다. 전광훈의 ‘광화문파’는 손현보의 ‘여의도파’가 영향력을 키우는 데 위기감을 느끼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보수 진영에서 둘을 화해시키려 했는데, 전광훈과 손현보가 각자 얻는 것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개신교의 정치 참여는 언제 시작됐나.
“평안도 출신 한경직 전 영락교회 목사(1902~2000)가 1945년 신의주에서 기독사회민주당을 창당한 게 최초다. 당시 개신교는 유럽의 기독사회당, 기독민주당 같은 중도보수 성향의 정당을 표방했다. 차별과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인식이 정당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만 북한 사회주의 세력의 영향으로 위세를 펴지 못했다. 남한에 내려온 직후에는 평안도 출신들이 정착에 어려움 겪어 정당 운동까지 하지는 못했다.”
-개신교는 어쩌다 반공 노선을 타게 됐나.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반공주의’가 1960년대 한국 개신교에도 건너왔다. 한국엔 군부 정권이 자리 잡으면서 교계에도 평안도를 기반으로 한 반공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았다. 정권은 개신교를 통해 정통성을 보완하고, 교회는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처음엔 농민이나 도시로 몰려든 가난한 서민들을 받아들여 교회가 커졌는데, 이들이 점차 중산층이 되면서 교회도 기득권화됐다.”
-극우 개신교 세력은 왜 거리로 나왔나.
“극우 군사정권이 집권했을 때는 거리로 나설 필요가 없었다.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정권 10년을 거치면서 극우 개신교 세력의 기반이 약해졌다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뉴라이트의 준동과 함께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 이때 여성들을 규합한 엄마부대, 댓글 활동을 한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 개신교 정당 운동이 시작된다. 정당 운동을 시작한 인물 중 하나가 전광훈이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17일 경기 수원시에서 열린 전국총연합 자유마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극우 세력은 왜 공격적인가.
“개신교의 교리는 빠른 속도로 바뀌는 현대 사회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후 사회를 개신교의 영향력 아래 두자는 ‘신정국가론’이 대두된다. 이것이 1990년대 ‘신사도운동’으로도 바뀌는데, ‘예수의 12사도’를 본받아 정치, 경제, 사회 등 7개 영역에 개신교인들이 진출해서 주도권을 잡고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하나님을 따르는 선한 세력’과 그 반대의 ‘악의 세력’이 대결하는 영적 전쟁의 장으로 보게 한다. 반대하는 이들과의 대립이 ‘사탄과의 최후의 대결’이 되고 ‘순교해도 좋다’는 데까지 이른다.”
- 누가 극우 개신교 집회에 나오나.
“참가자들의 입장은 다 다르다. 노년층은 반공을, 40·50대는 자녀 세대가 동성애에 휩쓸릴까 봐. 어떤 젊은이들은 무슬림 난민들이 들어와 범죄를 저지르리란 공포를 이유를 댄다. 사학재단의 이권을 지키려 뒤에서 지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세력화하기 위해 북한과 중국부터, 성소수자 문제, 이같은 반기독교적인 것을 부추기는 좌파 정권과 노조를 한 데 묶어버린 것이다.”
-윤석열 파면 후 개신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탄핵이 인용되면 정치권은 윤석열이나 전광훈 목사 등과 손절하면 생존할 수 있다. 보수 정당이 복지 정책을 공약에 넣는 것처럼, 포퓰리즘을 동원해가며 빠져나갈 수 있다. 문제는 교회다. 가뜩이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데 교회가 ‘보수·반공’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극우’를 생산하는 축으로 자리했다. 한국 교회만 사회에서 고립될까 걱정이 크다. 교회가 극우의 준동을 사죄하고 극우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실천방안을 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22일 강원도청 앞 중앙로터리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 등 보수 단체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연 가운데 대학생이 단상에 올라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와 관련해 지난 1월19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문재원 기자
변상욱 한국기독교언론포럼 공동대표(전 CBS 대기자)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