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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등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각각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찬성을 주장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준범 ㅣ 논설위원

“그래서 대체 언제 한다는 거죠?”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인사는 이거다. 대통령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뒤 110일, 국회의 탄핵소추 뒤 10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 종결 뒤 두달이 넘도록 헌재는 아무 말이 없다. 혼돈의 안개 정국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참을성 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서도 피로, 좌절, 화가 묻어난다.

윤석열을 파면해야 할 사유는 지극히 간명하고 중대하다. 그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안 맞는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내렸다. 군경을 동원해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봉쇄·장악하려 했으며, 정치인·법관 체포를 시도했다. 그 자체로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이다. 더구나 윤석열은 헌재 변론에서 ‘선관위에 군 투입 지시’ 외에는 명백한 사실관계와 책임 대부분을 부정해, 헌법 수호 의지를 버리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위험인물을 끌어내리고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 이토록 험난할 줄 몰랐다. ‘내란성 불면’의 겨울에 이어, ‘헌재성 불안장애’의 봄이 되고 있다.

상식적 결론이 나오겠지 하면서도 사람들이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지난 석달여 동안 상식과 예측을 벗어난 일들을 너무 많이 봐서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의 비상계엄 가능성을 선제 경고했을 때 모두가 웃어넘겼지만,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미국 의사당 난입 폭동 같은 초현실적인 장면이 서울 한복판 법원에서 벌어졌다. 못 나올 줄 알았던 윤석열의 석방은 경악 그 자체였다. 경호관 인간띠와 철조망을 동원해 체포를 거부하는 대통령의 농성전은 ‘상식 이하’의 저 아래 장면이었다. 이제 누구도 ‘어떠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상식과 예측이 무너진 자리에 신뢰와 존중도 허물어졌다. 계엄·탄핵 사태를 거치며 우리는 믿고 의지할 사람, 집단, 기관을 잃어가고 있다.

사법부와 검찰은 손잡고 윤석열을 석방했다. 검찰은 계엄령 이전까지는 윤석열 부부를 보호하다가, 정국이 바뀌자 태세를 바꿨다. 하지만 법원이 윤석열 구속취소를 결정하자, 심우정 검찰총장은 기다렸다는 듯 즉시항고도 없이 그를 풀어줬다. 논란이 커지자 구속영장 청구 기준을 ‘시간’ 단위에서 다시 ‘날’ 단위로 하라고 지시했는데, 결국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윤석열만 유일 수혜자가 됐다. 검찰은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 구속수사에도 납득할 수 없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검찰도 내란에 관여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은 커지고, ‘검찰은 고쳐 쓸 수 없는 조직’이라는 말이 새삼 힘을 얻는다.

행정부는 국민이 아니라 국민의힘·윤석열 눈치를 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국회에서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 임명을 ‘여야 합의가 안 됐다’고 주장하며 거부했다.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도 거부했다. 그의 ‘미스터리’ 행동들이 없었다면, 내란 수사권 논란이나 최상목 대행 체제 등 지금까지의 혼란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입법부는 지난해 12월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이 합심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과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공이 있다. 그러나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유민주주의 대 반국가세력의 체제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윤석열 옹호,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 입법부의 주요 축이 집단적으로 극우에 포획됐다. 거리로 뛰쳐나간 제1야당 또한 말이 험악해지고, 자신감과 안정감을 잃어간다. 종교계도 신망을 잃었다. 극우 목사들은 사랑과 포용 대신 혐오와 배제, 심지어 폭력을 선동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학계에도 ‘신뢰받는 권위자’는 사라졌고, 유튜브가 장악한 미디어 환경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을 재촉하고 있다.

사회를 지탱해온 가드레일이 여기저기 망가졌다. 믿을 곳이 사라지고 있다. 불길한 눈초리는 이제 헌재를 향하고 있다. 헌재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특별법을 ‘관습헌법 위반’이라는 논리로 뒤집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희한한 논리로 윤석열을 복귀시키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헌재는 헌법과 상식을 지키는 마지막 가드레일이요, 기댈 곳이다. 선고가 늦어진 만큼, 그 역할의 무게는 더 커졌다.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정상화하고,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 헌재에 달려 있다. 시민들은 충격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헌재를 믿고 견뎌왔다. 불안과 혼란을 헌재가 끝낼 때가 됐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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