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비님은 안 오고, 바람 따라 불길만”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으로 번진 가운데 25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민가 인근 야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의성 안평면에서 거 누군동(누군지), 가(걔)가 마 일부러 캤겠냐마능(했겠냐만). 내 여태 살면서 이런 일은 첨이라카.”

25일 오후 경북 안동체육관 보조경기장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만난 김수연(88·여)씨는 연신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김씨는 경북 의성에서 난 불이 넘어온 경북 안동 길안면의 최전선에 있는 백자리 마을 주민 중 한명이다. 김씨는 “내가 저 좋은 데 살았으면 이런 일 안 겪었을라나. 산골짜기에서 흙만 파고 사느라 이런 일을 다 겪나 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백자리 주민들은 경북 의성 산불이 안동을 위협할 수 있단 소식이 전해진 23일 밤부터 불안에 떨었다고 했다. 불길이 마을로 번질 수도 있다는 소식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마을회관과 길안초등학교를 거쳐 안동체육관까지 몸을 옮겼다. 잠도 오지 않는 밤을 꼬박 보내고 날이 밝아 사정이 나아졌단 말에 안심하고 집에 돌아가 몸을 누이자마자 다시 뛰쳐나와야 했다. 다리가 불편한 김씨는 “깜박 잠이 들었는데, 경찰 둘이 와서 나를 양쪽에서 들어 옮겼다”고 했다.

같은 마을의 김잎분(64·여)씨는 두번의 대피길 모두 당뇨약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정신없이 나오다 보니 약도 안 챙겨왔다. 밥이라고 주는데 입맛도 없으니 먹지도 않고 약도 못 챙겨서 어지러워 주저앉았다. 다행히 주변에서 사탕을 챙겨서 도와줬다”며 “집으로 돌아간 뒤 마음 편히 점심밥이나 먹을까 했는데 또 부랴부랴 나왔다. 한참 나오다 보니 또 약을 안챙겼더라”라고 했다. 김씨는 마을을 지키고 있는 시동생의 도움으로 약을 받아왔다. 시동생은 산자락에 있는 김씨의 집에 불이 붙어 옆집 물을 끌어다 겨우 껐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왔다.

김분수(75·여)씨는 “비가 좀 와주면 좋겠는데, 바람 따라 불만 날아온다”며 “제발 내 몸 하나 누일 집이 안 타길 빌고 또 빈다”고 했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난 불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일대까지 번지면서 안동시와 산림당국은 25일 헬기 1대, 인력 880명, 장비 1150대로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산불로 안동 주민 1264명이 안동체육관과 마을회관, 인근 숙박시설 등으로 대피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4148 [속보] 의성 산불 빠르게 확산, 영덕 전 군민 대피…포항에서도 주민 대피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7 트럼프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국에 25% 관세”…사실상 중국 겨냥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6 다시 남태령에 선 ‘트랙터’…농민·시민들 “평화 시위 왜 막나”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5 원·달러 환율, 50일만에 1470원 돌파… “1480원까지 간다” 전망도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4 의성 산불 전방위 확산‥청송서 60대 여성 사망 "산불 추정"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3 미 안보라인, 민간 채팅방서 ‘후티 공습’ 논의 발각 ‘파문’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2 심우정 검찰총장,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근거 없는 주장”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1 청송서 60대 여성 소사상태 발견…경찰 "산불 사망 추정"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40 [속보] 청송서 60대 여성 소사상태 발견…경찰 “산불 사망 추정”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9 청송서 불탄 60대 여성 시신 발견…경찰 "산불 사망 추정"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8 [속보] 청송 60대 여성 불에 타 숨진 채 발견…경찰 “산불 사망 추정”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7 홍명보호, 요르단전도 1-1 무승부···월드컵 본선행 조기 확정 불발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6 "회원 탈퇴요? 매장으로 '직접' 오세요"…코스트코 '배짱 영업' 결국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5 천년 고찰 의성 고운사도 전소…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병산서원 불길 근접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4 법무부, 산불 확산에 경북·안동 교도소 수용자 3,500여 명 이감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3 [속보]산불 확산 청송서 60대 시신 발견···경찰 “산불로 사망 추정”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2 산불에 ‘1300년 역사’ 고운사 전소…부처님은 흰 천에 싸서 옮겼다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1 '의성 산불' 청송으로 확산… 청송교도소 재소자 긴급 이감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30 [속보] 청송서 60대 여성 소사상태 발견…경찰 "산불 사망 추정" new 랭크뉴스 2025.03.25
44129 “내 인생 걸린 집인데 어찌 가” 산불 번져도 못 떠나는 주민들 new 랭크뉴스 2025.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