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를 인수한 MBK 파트너스에 투자한 국민연금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국민연금이 이번 투자로 약 1조 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백번 양보를 해서 이번 투자가 그냥 시장 예측을 잘 못해 벌어진 투자 실패라면 충분히 용서할 수 있을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잘못된 방식으로 투자를 한 것이라면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 기사는 연금 개혁을 살펴보는 시리즈 보도인 만큼 이번 홈플러스 사태를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 측면에서 살펴본다.
■ 10년 전의 반대...국민연금 가입자 죽이는 연기금 투자
국민연금이 MBK파트너스를 도와 홈플러스 인수전에 참여한다고 하자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수많은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은 투자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MBK 파트너스와 같은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한 뒤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 등을 한 뒤 기업을 되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노동자가 낸 보험료가 가장 큰 재원인 국민연금 기금이 기업 인수와 구조조정 전문 펀드에 큰돈을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원칙을 벗어난 것이라는 이들의 비판이었다. 문제 제기가 나왔지만 국민연금은 투자를 강행했다.
국민연금 MBK 투자 철회 촉구 성명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연금행동)〉 2015년 8월
세계 3대 기금을 가진 국민연금은 흔히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200조 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어느 곳에 투자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펀딩 성공'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연금이 투자하면 신뢰성이 인정돼 여러 다른 연기금이나 금융기관이 뒤쫓아 투자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당시 홈플러스의 모회사인 영국계 테스코는 분식회계 논란에다가, 세금 회피를 위한 무리한 배당 등 역대 최대의 '먹튀'라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MBK 파트너스가 결과적으로 테스코의 '먹튀'를 완성하는 투자에 국민연금이 백기사로 나선 셈이었다.
■ 문형표-홍완선 라인...2015년 여름 국민연금에 무슨 일이
2015년 당시 약 500조 원의 적립금을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은 '연못 속 고래'라는 위험에 노출됐다. 국민연금은 이때부터 해외주식 비중을 크게 늘리고 대체투자에도 본격적으로 나서던 상황이었다. 2015년 여름 홈플러스 인수에는 MBK 파트너스와 함께,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과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자본시장의 대통령'인 국민연금이 특정 M&A에서 사모펀드와 함께 공개적으로 컨소시엄을 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5년 홈플러스 인수 때는 테스코의 최종 결정이 나기 전부터 국민연금이 MBK 파트너스와 그야말로 파트너가 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큰 화제가 됐다. 국민연금이 투자확약서를 써줬다는 건데, 전무후무한 이런 행보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기업사냥을 한다는 사모펀드와의 협력, 대량 해고에 대한 홈플러스 노조의 우려, 글로벌 기업의 먹튀 논란 속에서 국민연금은 2015년 여름, 6천억 원을 MBK 파트너스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 결정은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가 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기관을 이끌던 사람이 바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문형표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홍완선 기금운용본부 본부장이었다. 국민연금이 MBK 파트너스의 손을 들어주자 2015년 9월 테스코는 홈플러스를 MBK 파트너스에 팔았다. 인수가격 7조 2천억 원 사상 최대의 M&A는 그렇게 결정됐다.
홈플러스 노조, MBK 규탄 집회 2025.3.6
2015년 7월, 국내에는 또 하나의 초대형 회사 합병이 성사됐다. 바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었다. 당시 국민연금은 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확보에 백기사가 돼주었고, 국민연금은 스스로에게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 국민연금 자신이 손해 볼 합병 찬반투표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던 이 사건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문형표 당시 기금운용위원장(보건복지부 장관)이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과 함께 합병을 찬성하도록 압력 또는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 기금 투자의 최종 결정권자 두 명이 함께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은 국민연금의 가장 치욕적인 역사로 남았다.
■ 2,000조 원 연기금 시대, '돈 넣고 돈 먹기' 식 투자 계속하나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보험료 13%에 소득대체율 43%이다. 이렇게 바뀌게 되면 연기금 고갈이 약 10년 정도 늦춰진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기금운용수익률 5.5%로 계산할 때 연기금이 최대로 쌓이는 규모는 대략 2052년 2,000조 원(경상가 기준 3,500조 원/ 5차 재정추계는 2040년 1,775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연기금의 투자 원칙을 밝히고 있다. ' 수익성-안정성-공공성-유동성-지속가능성-운용독립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이나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수익성만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국민이 맡긴 돈이니 최대한 벌어서 돌려 드리는 게' 최선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터지는 국민연금 투자의 실패는 대부분 연기금을 운용하는 지배구조의 문제에서 불거지고 있다. 국민들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정권이나 정치권의 압력, 기금운용 조직의 불투명한 의사결정에 의해서 벌어졌다. 연기금의 투자원칙을 무너트리는 건 주로 기금위원회 스스로였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원칙 (기금운용위원회 홈페이지 발췌)
지난해 국민연금은 160조 원을 벌었다. 사상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올해 들어 수익률은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높다. 1분기 미국 S&P 500 지수의 하락률로 볼 때 해외주식에 가장 큰돈을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수익률 역시 영향을 받았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더 변동성이 큰 주식 편입 비율을 높였다. 채권에만 투자하던 과거와 달리 국민연금은 가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할 일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연기금의 수익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수익률에만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거대 연기금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신 금융 상식은 ESG 투자 방식 같은, 즉 지속 가능한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를 추구하는 투자가 장기적으로 더 좋은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2천조 원을 바라보는 국민연금 기금이 언제까지 '돈 넣고 돈 먹기'식 투자를 계속할 것인가. <끝>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연금 개혁 논의는 18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노인 빈곤과 미래 세대 부담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이를 함께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연금 개혁] 청년과 노인이 함께 신나는 국민연금 ① 국고 GDP 1% 쓰면 기금 고갈 없이 45% 소득대체율 가능 ② 청년이 더 유리하다! 사각지대 없애는 416 개혁안 ③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④ 대한민국의 '대왕고래'는 동해가 아닌 국민연금에 있다? ⑤ MBK식 '돈 넣고 돈 먹기'가 국민연금의 투자 원칙인가 ⑥ 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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