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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 바이러스’.

“당파적 정치 조작에 전념하지 않는 뇌의 모든 부분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란 뜻입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정치인이나 컨설턴트는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면 무슨 짓이라도 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2000년대 초 많이 등장한 용어지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칼 로브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는 2001년 9·11 테러의 공포조차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특기는 갈라치기. 2004년 부시의 재선 가능성이 떨어지자 로브는 느닷없는 공약을 들고 나옵니다. 동성애자 결혼 금지를 위한 헌법 개정. 실현 불가능한 허위공약이었습니다. 민주당이 반대할 게 뻔했습니다. 개헌 정족수(상·하원 3분의 2)를 채우지 못할 게 분명했지만 밀어붙였습니다. 선거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공약은 기독교 우파를 결집했고 부시는 백악관에 입성했습니다. 당선 후 부시는 공약을 이행했을까. 전혀 아닙니다. 부시는 집권 기간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단 한 번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로브 바이러스의 핵심 요소는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국민을 갈라치기 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요즘 국내 정치권 돌아가는 것을 보며 로브 바이러스를 떠올렸습니다. 로브 바이러스는 전략이라는 것을 동반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특정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정치인들에게는 전략조차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우선 오세훈 서울시장. 한국에서 부동산, 구체적으로 아파트는 정권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아파트 공화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이런 아파트 시장에 최근 오세훈 시장이 불을 질렀습니다. 잠실 등 일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정책을 철회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스로 철회했다기보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놀란 정부가 나서 진화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아파트 가격 상승이 예상됨에도 갑자기 허가구역을 해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행보라고 해석합니다. ‘규제와 싸우는 선도자’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상했습니다. 자신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어준 가장 강력한 지지 지역인 강남·서초·송파의 모든 아파트, 그리고 원래는 해당 사항이 없던 용산구 주민들까지 피해가 불가피해졌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재지정하면서 대상 지역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시장은 당분간 혼돈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민생의 혼돈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여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는 의료대란입니다. 의대 입학생 2000명 증원은 총선용 공약이었습니다.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의도 없었습니다. 2000명이란 숫자의 근거는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엄청난 비용이 건강보험재정에서 지출됐고 의사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이 사안에 또 한 명의 정치인이 끼어들었습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입니다. 그는 복귀하지 않은 의사들을 향해 “의사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그들 빈자리는 의사 역할 제대로 해보겠다는 새로운 사람들과 다른 의료 직역에 있는 분들이 채우면 된다”고 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대해 전문가도 아닌 정치인이 너무 쉽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직역이란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을 말합니다. 의사들의 빈자리를 이들이 채운다는 말입니다. 한 명의 의사가 교육을 받아서 수술하고 자리를 잡기까지 10여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원 전 장관에게 자신과 자기 가족의 수술을 다른 직역에서 건너온 분들에게 맡기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생각해 보면 답은 너무 뻔한 것 아닐까 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중도보수론도 기형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민주당의 정책을 유럽 같은 나라에 갖다 놓으면 중도보수일 수 있습니다. 여기는 한국입니다. 아마도 중도층 민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수사였을 것입니다. 즉각 당내 반발이 튀어나온 것만 봐도 이상한 행보였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요즘 정치는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은 상실했습니다. 대신 정치 자체가 나라의 문제가 된 듯합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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