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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 국립중앙의료원 흉부외상외과 교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위해 외상외과 선택
내전 중 남수단에서 혼자서 24시간 수술
외상센터에서도 전쟁터처럼 고군분투 중

김영웅 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 흉부외상외과 교수는 19일 조선비즈와 만나 “당장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 외상센터이지만, 언젠가 서울 외상센터가 더 커지고 안정화돼서 흉부 외상 전문의도 많아진다면 다시 분쟁 지역으로 가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염현아 기자


전방과 후방 구분이 없는 내전 현장.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총상이나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몰려든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팔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환자와 당장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 임신부가 뒤섞여 있다. 모두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이 아닌 현실이다.

15년 차 흉부외과 의사인 김영웅(41) 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 흉부외상외과 교수는 드라마 주인공인 백강혁의 현실판으로 불린다. 그는 2021년 10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아프리카 남수단에 파견돼 3개월간 흉부외과뿐 아니라 산부인과, 정형외과, 소아외과까지 모든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했다.

현장은 드라마보다 더 열악했다. 김 교수가 파견된 곳은 수단과 남수단의 국경이 맞닿은 한 마을인 아곡(Agok)이었다.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은 종교·부족 간 갈등으로 수년간 내전이 이어지면서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했다. 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설도 국경없는의사회가 아곡에 지은 병원이 유일하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서울권역외상센터에서 만난 김 교수는 “국경 분쟁이나 부족 간 내전이 끊이지 않으면서 무장 강도들도 많은 곳”이라며 “아이들이 최고 재산인 소를 지키려다 온몸에 총상을 입기도 한다”고 말했다. 총상 환자는 총탄을 제거하며 복원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료 자원이 부족해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김 교수는 남수단 아곡에 파견된 유일한 외과의사였다. 상태를 계속 살펴야 하는 입원 환자들과 신규 내원 환자,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 등을 합치면 하루에 혼자 보는 환자만 100여명에 달했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다반사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진 건강을 고려해 외과 계열을 비롯한 일부 과에 대해 파견 기간을 3개월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남수단 아곡 지역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내원한 어린 소녀 환자와 김영웅 활동가(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 흉부외상외과 교수)./국경없는의사회

다른 곳에선 치료하기 쉬운 상처가 그곳에서는 큰 병으로 이어져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근처에 병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원에 오면 이미 절단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괴사가 심하다”며 “한국에서는 대부분 쉽게 회복할 수 있는데, 병원도 먼 데다 혈액이나 의료 자원이 부족해 손도 못 쓰고 숨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화나고 무력감을 느꼈지만, 자신이 아니면 아예 무방비라는 생각에 힘을 냈다.

김 교수는 울산대 의대 재학 시절 우연히 접한 국경없는의사회 관련 책을 읽고 진로 방향을 결정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71년 설립된 인도주의 의료단체로, 4만7000명이 넘는 구호 활동가가 무력 분쟁, 자연재해 등으로 피해를 입은 70국 500여 현장에서 의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려고 외과를 선택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흉부외과 전임의(펠로우)까지 10년 가까이 수련하고, 분쟁·재난 지역에서 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2년 세부 전공 수련을 더 거쳐 외상 전문의가 됐다. 의대 졸업 직후 남극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의 전담 의료진으로 뽑혀 400여일간 극지 의료 경험도 쌓았다.

김 교수는 펠로우를 마친 뒤 2019년 국내 흉부외상 1세대인 조현민 교수(현 한라의료재단 지역의료선진화추진본부장)가 재직 중인 부산대병원 외상센터로 적을 옮겼다. 외상 전문의가 되고 남수단을 다녀온 뒤 2023년 5월 서울에 처음 문을 연 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에 합류했다.

그렇다고 김 교수의 활동 영역이 서울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는 해외긴급구호대(KDRT)와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재난·분쟁 등 격오지에 파견되는 의료인을 위한 교육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해 KDRT 소속으로 한 달간 캐나다 산불 현장에 파견돼 한국 소방대원들을 진료했다. 매달 남극에 있는 국내 대원들과 화상 진료도 진행한다.

사실 김 교수는 서울권역외상센터에서도 국경없는의사회의 해외 진료 활동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지난해 예기치 않은 현실에 잠시 계획을 중단하고 국내 진료만 집중하기로 했다. 의정 갈등 영향으로 인력이 줄면서 특히 그처럼 흉부외상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이 이송된 중증외상환자를 수술하고 있다./국립중앙의료원 유튜브 캡쳐

서울권역외상센터는 전국 17곳 권역외상센터 중 지난해 개소한 경남권역외상센터 다음으로 가장 경력이 짧다. 현재 외과 6명, 흉부외과 2명, 정형외과 1명, 신경외과 1명으로 총 10명의 전문의와 외상외과 전담 진료 지원(PA) 간호사를 비롯한 수십명의 의료진이 1000만 인구의 서울을 지키고 있다.

그는 “올해로 만 2년이 된 신생 서울권역외상센터는 다른 외상센터들이 10년 전 겪었던 문제들을 지금 체험하고 있다”며 “현재 안팎으로 힘든 상황은 맞지만, 잘 살아남아 5년 뒤에는 잘하는 외상센터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는 김 교수가 이곳 서울권역외상센터의 유일한 흉부외상 전문의였다. 한국도 분쟁지역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다행히 올해 한 명이 더 합류하면서 근무 강도는 전보다 나아졌다고 했다. 다음 달에는 외상 전담 마취과 전문의도 합류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신생 서울권역외상센터는 다른 외상센터들이 10년 전 겪었던 문제들을 지금 체험하고 있다”며 “현재 안팎으로 힘든 상황은 맞지만, 잘 살아남아 5년 뒤에는 잘하는 외상센터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외상센터에 있지만 남수단의 열악한 의료 현장과 국경없는의사회를 잊지 않았다. 그는 “당장 있어야 할 곳은 외상센터이지만, 언젠가 이곳이 더 커지고 흉부 외상 전문의도 많아진다면 다시 분쟁 지역으로 가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 모습./염현아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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