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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복지 사각지대 미등록 경로당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 초고령사회다. 지난해 12월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의 20%에 달한다.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셈이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대표적 시설인 경로당을 향한 관심은 낮은 편이다. 특히 ‘미등록 경로당’으로 불리는 시설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거의 방치돼 있다. 안전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곳도 많다. 하지만 이들 공간도 엄연히 경로당이다. ‘경로당’이라는 현판을 내걸고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이 돼주고 있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미등록 경로당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는 일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등록 경로당의 규모는 현재 어느 정도일까. 어떤 지역에 각각 얼마나 흩어져 있으며 어떠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을까.

경북 미등록 경로당 가장 많은 까닭?

경로당 지원과 관리의 법적 근거는 ‘노인복지법’과 ‘대한노인회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이들 법령이 정한 기준을 충족한 경로당만 지자체에 등록할 수 있는데 이용 인원은 20명 이상(섬 또는 읍·면 지역은 10명 이상)이어야 하고, 남녀 분리된 화장실을 갖춰야 한다. 거실 또는 휴게실, 전기 시설도 필요하다. 경로당 등록을 위한 최소 면적 기준은 20㎡(약 6평)다. 미등록 경로당은 이런 기준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곳이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미등록 경로당은 1513개이며 이용자는 총 1만6430명에 달한다.


이들 경로당이 ‘등록’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등록 경로당의 41.5%는 불법 및 무허가 건축물에 있었다. 지자체 등록을 위한 다양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거나(35.6%) 화장실 등 시설 관련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21.7%)도 많았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경로당이 있는 건물 자체가 위법 시설인 경우가 많다”며 “모든 미등록 경로당을 허가 건물로 옮기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등록 경로당이 가장 많은 지자체는 경북이다. 이 지역 미등록 경로당은 463곳이나 된다. 전국 미등록 경로당의 30.6%가 경북에 있는 셈이다. 이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면적이 넓고 산지가 많은 경북의 지리적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북엔 20~30가구씩 모여 사는 촌락마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돼주는 곳이 많지만 저마다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미등록’인 경우가 많다.

미등록 경로당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밖에 없다. 미등록 경로당 가운데 26.7%는 냉난방비 양곡비 부식비 운영비 등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중 29.8%에는 미등록 경로당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나 규칙이 없는 실정이다. 반면 등록 경로당 6만8000곳은 냉난방비와 양곡비를 지원받고 있다.

관리 소홀 문제도 꾸준히 제기된다. 소방 점검, 전열기구 점검 등에서 제외돼 각종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곳이 미등록 경로당이다. 무허가 건축물에 있는 만큼 건물 자체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될 때도 있다. 미등록 경로당 중 33.4%는 조립식 컨테이너 구조다. 17.1%는 벽돌 등만을 쌓아 벽을 만든 조적조(組積造) 양식의 건물에 위치해 있으며, 조립식 패널이나 슬레이트 등으로 지어진 곳도 16.0%에 달한다. 도어록 같은 잠금장치가 없어 치안 문제가 우려되는 곳도 많다.

미등록 경로당 양성화, 가능할까


미등록 경로당 문제를 풀기란 쉽지 않다. 익숙한 공간을 선호하는 고령 인구의 특성 탓에 이들 공간을 없애려면 큰 반발에 직면해야 한다. 노인들은 동네에 각종 여가 프로그램과 신식 시설 등을 갖춘 ‘등록 경로당’이 들어서도 자주 방문하던 미등록 경로당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새로운 경로당에서 경험할 수 있는 ‘텃세’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 미등록 경로당이 더 가깝다면 굳이 등록 경로당을 찾아갈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어르신이 많다. 등록 경로당보다 멀리 있는 미등록 경로당을 계속 고집하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복지부는 미등록 경로당 양성화를 통해 경로당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관리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경로당의 등록 조건을 낮춰 양성화를 위한 ‘기준’을 제시할 예정인데, 경로당 간 거리나 이용 현황 등이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규제 심사 검토를 국무조정실에 요청했다. 다른 법률과의 충돌이 있는지 검토하는 과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지자체의 미등록 경로당 양성화를 독려할 계획”이라며 “상반기 중 시행규칙 개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미등록 경로당 양성화 과정에서 정부 예산이 사조직에 투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원 기준 등이 완화되면 자칫 소규모 친목 모임에 무분별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어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적 모임으로 운영되는 것인지, 여가 시설이 없어서 보완책으로 생겨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며 “인근의 등록 경로당 여부, 경로당의 활동 프로그램 등을 고려해 재정 지원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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