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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전세를 끼고 강남구에 있는 아파트를 계약한 직장인 A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기존에 살던 집을 처분할 수 없어 후순위 대출을 받아 오는 6월 잔금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A씨는 "집 계약부터 잔금 치르는 데까지 몇 개월은 걸린다. 대출 규제 강화로 돈을 당초계획만큼 빌리지 못할까 걱정"이라며 "불과 한 달 만에 정부가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 실수요자들은 일상이 흔들릴 만큼 불안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아파트에 전세를 사는 B씨는 온종일 포털 검색에 매달렸다. 19일 발표된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확대 지정 소식을 듣고서다. 그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있어 대출을 받아 자가 매입을 고민 중이었는데 서울시가 토허제를 푸는 바람에 집값이 뛰면서 포기했다”며 “그런데 또 지정을 한다니 ‘장난하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했다.



혼란에 빠진 시장…"누가 정책을 신뢰하겠나"
19일 정부와 서울시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전체를 토허제 구역으로 확대 지정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번에 토허제에 묶인 곳은 약 2200개 단지, 40만 가구에 달한다. 특정 구역이나 단지, 행정동이 아닌 자치구 전체가 토허제에 묶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강남 3구나 용산구 내에도 집값이 내리고 안 팔리는 구축 아파트 등이 있는데, 그들이 이번 대책을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더욱이 이들 4개 자치구는 현재도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등 규제를 받는 조정대상지역에 묶여 있다.

당장 시장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에 토허제로 묶인 지역에서 전세를 낀 매매계약을 진행 중이던 매도·매수자들은 토허제 시행일인 이달 24일 전까진 계약을 마쳐야 한다. 지정 후엔 갭투자가 불가능해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봄 이사철을 앞두고 거래를 취소하거나 계약 시점을 앞당기는 등 혼선이 극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19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전체를 토허제 구역으로 확대 지정한 19일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주변 아파트 단지 모습. 전민규 기자
이번에 새로 지정된 서초구와 용산구의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왜 집값이 오른 마포와 성동, 영등포, 강동구는 빠졌느냐" "6개월 후엔 또 해제되는 거냐" 등 불만 글이 올라오고 있다. 반면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소규모 아파트에 사는 C씨는 "어차피 실수요로 사서 팔 생각도 없지만 정부가 이렇게 비싼 동네로 인정해 주니 확실히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내년 5월까지 유예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고려해 매도 시점을 조율하던 다주택자들도 혼란에 빠졌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어떤 규제가 또 불쑥 튀어나와 집을 못 팔게 될까 걱정하는 다주택자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한마디로 코미디”라는 등 격한 반응이 많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이 하향 안정되던 시기에 서울시가 정책 당국과 조율되지 않은 토허제 해제를 불쑥 들고나온 것부터 정책 실패”라며 “누가 정부 정책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마포·성동·강동구 풍선효과 우려도
풍선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장소희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부동산팀 수석연구원은 “정책 변동성이 커지면서 더 강력한 규제 전에 집을 사자는 ‘막차 심리’가 인근 마포, 성동, 강동구 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랩장 역시 “토허제에 묶이지 않은 영등포, 동작, 강동, 서대문구 등으로 갭투자 수요가 우회하는 풍선 효과 가능성이 열렸다고 본다”고 했다.

시장 불안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향후 강남 3구와 용산구는 갭투자나 포모(FOMO, 나만 투자하지 않아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두려움) 수요가 줄고 거래도 주춤할 순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지난 2월 토허제 해제 이전에도 집값이 하락하지 않고 되려 올랐던 곳이다. 장소희 수석연구원은 "강남3구와 용산구는 거래량은 다소 줄겠지만 가격 상승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소위 똘똘한 한 채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토허제 지정과 무관하게 수요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히려 정책 혼선으로 집단 불안 심리가 퍼지면서 시장이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김효선 위원은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7월)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극대화하면서 관망세였던 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최상위 입지 아파트 소유자들은 기다렸다가 더 높은 가격에 팔아야겠다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5~8월처럼 고강도 DSR 규제 전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무주택자나 전세 거주자 수요가 일시에 몰릴 수도 있다. 반대로 대출 규제가 더해지면 매수 수요가 임대차 시장에 머물면서 전월세 시장 불안을 증폭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오 시장,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 사진 뉴스1
부동산 시장은 잘못된 대책보단 잦은 정책 변동에 더 민감하다. 오락가락 정책이 시장 안정화는커녕 내성만 키우는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과거 정부 역시 단기 과열 상황에 ‘투기 잡겠다’는 단선적 정책으로 일관했다. 토허제와 조정대상지역, 투기 지역 등이 수요를 억제한다며 묶고 풀기를 반복하다 실패를 본 대표적 규제다. 특정 지역을 규제로 묶으면 오히려 ‘돈이 되는 곳이니 규제한다’ 식으로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특히 그린벨트나 재개발 등 개발 예정지에 적용하던 토허제가 집값 잡는, 아니 잡지도 못하는 규제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토허제는 반시장적(오세훈 시장)"이라면서 반시장적 대책을 확대했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렵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토허제 해제가 시장 불안을 야기한 것은 맞지만 최근 서울 부동산 시장 흐름은 금리 인하와 대출 확대, 상급지 수요 등 복합적 요인 때문"이라며 "보다 일관되고 정교하고 조율된 정부 대책이 요구된다"고 꼬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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