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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광화문 농성장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도보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요즘은 다시 활동가가 된 기분이에요.”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헌법재판소가 있는 종로구 재동으로 가는 길 위에서 시민사회 출신의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말했습니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파면 결정을 촉구하며 첫 도보 행진에 나선 날이었습니다. 민주당은 18일 현재 7일째 도보 행진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100여명의 의원들이 모여 매일 도보 행진에 나서는 것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인데요. 윤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나올 때까지 매일 행진에 나서겠다고 한 상황에서 선고 일정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도보 행진 역시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도보 행진을 바라보는 민주당 의원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당내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중진 의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젊은 피’ 의원들은 굳이 도보 행진이라는 형식을 선택해야 했는지 의문을 가지는 눈치입니다. 170명의 다양한 군상이 모인 거대 야당에서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한 장면입니다.

민주당은 어쩌다 도보 행진까지 이르게 됐나

민주당이 전면적인 거리 투쟁에 나서기 시작한 건 지난 7일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과 이어진 검찰의 석방 지휘 때문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인 데다, 헌재 선고를 앞두고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결집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어 혹여나 윤 대통령 파면 절차에 차질이 생길까 불안함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아졌죠. 시민사회는 바로 이날 저녁부터 광화문에서 긴급 규탄대회를 열었습니다.

민주당 역시,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이 나오자마자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윤 대통령 석방 지휘를 주도한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 등의 의견이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추진하기 어려웠고, 그 밖에는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오지 않았죠. 민주당은 우선 매일 비상 의총을 열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뒤 밤 12시까지 릴레이 발언을 이어가는 철야농성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10일부터는 행동 거점을 국회에서 광화문으로 옮기기로 하고, 국회에서 하던 의총과 릴레이 발언을 광화문에서 이어가기로 했고요.

국민들의 불안은 커져갔지만,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자 ‘뭐든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11일 탄핵촉구의원연대 소속의 김준혁·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단식을 시작했고, 같은 날 오후 김문수·박홍배·전진숙 민주당 의원이 삭발식을 했습니다. 이날 진행된 의총에서 민주당은 윤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날 때까지 매일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도보 행진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12일부터 매일 8.7km의 도보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고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 시민들이 지난 12일 오후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윤석열 파면 촉구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의원들의 엇갈린 평가

도보 행진을 주도적으로 제안한 건 4선 의원들(김민석·남인순·민홍철·박범계·박홍근·서영교·윤후덕·이개호·이춘석·이학영·정청래·진선미·한정애)입니다. 이들 중에는 운동권 출신이거나 노동운동 경험이 있는 의원들이 많습니다. 도보 행진과 같은 ‘거리 정치’에 익숙한 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죠.

실제로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는 신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라도 행진에 참여하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행진을 시작한 첫날에도 김태년 의원은 다리가 불편한 상황에서 주변 의원들의 만류에도 끝까지 완주했고, 1953년생으로 올해 72살인 정동영 의원은 완주 후 다리가 풀려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4선 의원은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게 맞다”며 “지난 토요일 집회에 시민이 100만명이나 모이게 된 것도 의원들이 먼저 앞장선 결과 아니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선 굳이 이런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변호사 등의 전문직이나, 국회 또는 청와대에서 경력을 쌓은 보좌진 출신의 초·재선 의원들은 중진들에 비해 거리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데요.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의총에 집회 참석, 철야농성까지 하고 나면 하루가 다 간다. 당 일정을 따라가는 것 말고 일을 할 시간이 없다”며 “이렇게 개인이 소진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습니다. “오히려 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고민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겁니다. 다른 수도권 재선 의원도 “지난주 금요일(14일) 파면 선고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으니 이런 일정을 짰지, 파면 선고가 장기화될 줄 알았다면 이런 방식을 택하진 않지 않았겠냐”며 “소속 의원 170명이라는 당의 크기를 고려해야 하는데, 의사 결정이 충분히 신중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 파면은 ‘예정된 수순’인데, 헌재에 이 결정을 빨리 해 달라고 당력을 쏟아붓는 게 맞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당장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의원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가 맞지만, 탄핵소추나 국정조사, 상임위를 통한 내란 수습 등 국회가 할 수 있는 몫을 다 한 상황에서 당 차원의 집단행동을 장기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결국 윤석열은 파면될 것인데, 파면 결정을 촉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힘을 쏟으니 민주당이 조급해 보이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고경주 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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