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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탄핵정국에 갈라진 LA 르포
토요일마다 탄핵촉구·반대 집회
모임 와해… ‘정치발언 금지’ 규칙도
동포사회 공동체 균열 우려 목소리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의 한 음식점에 설치된 TV에서 지난 12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음식점 주인 백모씨는 “손님들이 뉴스 틀어놓고 밥 먹기를 원해 다른 채널은 틀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 내 웨스턴 거리.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60대 여성 이모씨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씨는 “오랫동안 이어오던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는데 요즘엔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며 “계엄과 탄핵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투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단골손님은 물론 택시기사님과도 부딪치게 되니 일절 관련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한국 사회의 분열상은 66만명 이상 교민이 사는 미국 LA까지 영향을 미쳤다. 수년간 인연을 이어온 지인과의 대화가 끊기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게 교민들 설명이었다. 갈등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금지하는 교민사회 규칙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인타운의 또 다른 음식점 TV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관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있던 한국인 손님 3명은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중간중간 TV 화면을 응시했다. 음식점 주인 백모씨는 “손님들이 뉴스를 보면서 밥 먹기를 원해 다른 채널은 틀어놓지 않는다”고 전했다. 근처 세탁소 주인 이모씨도 휴대전화로 뉴스를 틀어놓은 채 수선 작업을 하고 있었고 바로 옆 미용실에서도 한 미용사가 보수 유튜브 채널을 보고 있었다.

교민들은 탄핵 찬반을 두고 의견 충돌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LA에 정착한 지 45년째라는 정모(69)씨는 “나는 한국에서 군사정권 계엄을, 미국에서 폭동사태를 경험한 산증인”이라며 “수십년에 한 번 겪을 만한 일을 짧은 시간에 다시 경험하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정씨는 “비상계엄과 서부지법 폭력사태를 옹호하는 지인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예 정치 이야기를 조심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지고 있다. LA에서 색소폰 동아리 모임 회장을 맡은 박모씨는 “동아리 회원 사이에서도 (비상계엄 사태 관련) 의견이 갈리고 있다”며 “서로 얼굴 붉히기 싫어 관련 주제를 꺼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동아리 회원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면서 “괜히 말 꺼냈다가 동아리가 와해되는 건 한순간”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현지 한인회 관계자는 “토요일마다 영사관 앞에서 탄핵 찬성 교민들이 탄핵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며 “탄핵 반대 집회도 LA 지역과 외곽에서 수시로 열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교민사회로까지 갈등이 번지는 등 계엄 사태로 인한 사회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18일 “충격을 넘어 해외 동포사회 공동체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현 상황이 안타깝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외적인 시선을 고려할 때 (지금의 갈등이) 하루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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