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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5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에 승선해 갑판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 대통령실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에 포함한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 주요 정치인들의 자체 핵무장론을 탓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아직 구체적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 에너지부가 자국 안보나 핵 비확산 관련 관리가 필요한 나라를 SCL로 지정한다는 게 공세의 근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년 안에 핵무장할 수 있다는 허장성세, 현실성 없는 핵무장론 등이 민감국가 지정으로 나타났다”며 “완벽한 외교 참사이자 정부 실패”라고 성토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으로 자체 핵무장을 언급한 건 2023년 1월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였다.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우리 기술로는 이른 시일 내에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비공개회의 발언이었지만, 대통령실이 언론에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그러나 늘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의 핵우산을 현실적 대안이라 전제했다. 그럼에도 한국 현직 대통령이 핵무장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 찬반 양론이 분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이후 미국 백악관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원칙”이란 부정적 반응이 나오자, 윤 대통령은 발언 열흘 뒤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시스템을 매우 존중한다”며 물러섰다. 전직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가정적 상황에 대한 언급인데 예상보다 논란이 커져 진화가 필요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핵을 보유하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하지만, 국내 여론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2023년 4월 하버드대 연설)”“자체 핵무장론은 비현실적 얘기(2024년 2월 KBS 신년대담)”라는 등 핵무장론 진화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6월 북·러 정상회담 뒤 여당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들끓을 때도, 윤 대통령은 부산에 정박 중인 미 루스벨트 항공모함을 찾아 “한·미 동맹은 그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다”며 미국 핵우산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보다는 김기현·나경원·오세훈·한동훈·홍준표 등 여권의 차기 주자로 분류되는 주요 정치인들이 핵무장론에 더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 뒤 커진 안보 불안이 기폭제였다. 독자적 핵무장을 내세우는 김기현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가장 강경파라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핵 보유는 아닐지라도 핵 잠재력은 확보까지는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야당 내에서도 핵연료 재처리 시설 등 핵 잠재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했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 등이 주장했고 지난달 20일 민주당 주도로 열린 ‘국회한반도평화포럼’ 토론회에서도 핵 잠재력 확보 방안이 논의됐다.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이 전제를 달긴 했지만, 미국에선 핵 보유를 언급하는 것 자체도 금기시한다. 현직 대통령의 발언을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라며 “정치인들의 강경 발언이 미국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7월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다만 정부는 섣부른 추측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핵무장론 외에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전기술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 등이 영향을 줬다는 시각도 있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방미를 시작으로 정부는 다음 달 15일 SCL 관련 조치가 실제 발효하기 전 한국을 제외하도록 외교 총력전에 나설 예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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