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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선생님,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어린이집에서 급보가 도착했다. 예약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가게 문을 잠그고는 15분 만에 달려갔다. 39도 고열에 하도 울어 엉망이 된 그 작은 얼굴은 엄마를 보자 울음의 데시벨을 높였다. 둘러업고 달려간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나니 오후 5시. 남은 벌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민세희(31)씨는 22개월 아이의 엄마이자 속눈썹과 반영구 눈썹 미용숍 점주다. 아이가 생긴 건 인천 구월동의 첫 가게가 막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기쁨과 고민이 교차했다. 가족의 양육 지원이 어려웠던 그는 결국 월 500만원의 수익을 포기한 채 가게를 접었다.

1년간 전력을 다해 아이를 키운 그에게 새 고민이 시작됐다. 임대아파트 거주자인 그는 하루가 다르게 뛰는 집값을 보며 내 집 마련의 꿈이 무산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민씨는 결국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아이를 더 키우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육아휴직 급여도 받을 수 없는 자영업자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켜야” 피크타임 영업 못해…아이 아프면 문 닫아야
민세희씨는 22개월 된 아이의 주 양육자(왼쪽 사진)이자 눈썹 미용숍(오른쪽 사진)을 운영하는 ‘워킹맘’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첫 인터뷰 약속을 펑크낸 그에게서 ‘육아 자영업자’의 고된 삶이 엿보였다.
게다가 주 양육자는 여전히 그였다. 모든 것이 아이를 중심으로 고려돼야 했다. 옛 가게는 편도 35분 거리라는 이유로 배제됐다. 그는 옛 단골을 모두 포기한 채 15분이면 달려갈 수 있는 곳에 새 가게를 얻었다. 하원 시간인 오후 6시30분에 맞춰 오후 6시에는 문을 닫았기 때문에 피크타임(오후 6~8시)은 고스란히 포기해야 했다. 아이가 아프면 영업을 작파하고 황급히 달려가야 했다. 수족구병 등 장기 병치레라도 하면 가게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비싼 돈 들여서 한약까지 지어 먹였어요.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면 일에 지장을 덜 받으니까요.”

그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직장인은 쉬면 벌이가 0원이죠? 자영업자는 마이너스예요. 월세가 고스란히 나가요.”

민씨가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건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 때문이다.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인 임금근로자는 육아휴직을 하면 급여(최대 월 250만원)가 나오지만, 자영업자는 고용보험에 가입해도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없다.

김영옥 기자
상당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근로 형태를 따지지 않고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한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스웨덴 거주 부모는 누구든지 부모보험을 통해 부모휴가(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가족수당기금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하는 프랑스에서는 자영업자나 실업자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급여를 받는다. 독일도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부모시간(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일반조세를 재원으로 한 가족기금에서 부모수당을 지급한다.

한국도 지난 국회에서 모든 출산·양육자에게 출산·육아급여를 지급하는 내용의 부모보험법 제정안(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됐으나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도 자영업자 육아휴직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정부가 “‘사업자등록 유지 기간의 소득 중단’과 ‘휴직’ 개념 확인 및 성립이 곤란하고 재정 소요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라 입법화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육아정책연구소는 2023년 1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현행 육아휴직 제도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힘든 만큼 별도의 재원 마련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적어도 1인 자영업자까지는 출산·육아·돌봄 등에 필요한 헌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임금근로자의 50% 등 일정 비율로 제한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 유지와 미래 핵심 의제 대비를 위해 이 문제를 빨리 논의 선상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도 “현 제도로 지원이 어렵다면 대체 지원금 형태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편적 기본권 보장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남윤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자영업자는 쉬는 날도 드물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느라 삶의 질이 너무 낮다”며 “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복지 측면에서 자영업자의 현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사회 일각에서는 “돈을 많이 벌겠다고 스스로 자영업을 선택한 사람들을 왜 세금으로 지원해 줘야 하느냐”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취재에 응한 한 자영업자는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우리가 자영업을 ‘선택’했다고요? 아닙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하는 거예요. 월급 300만원만 받을 수 있으면 자영업 당장 때려치울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는데 국가가 차별을 당연시하는 건 문제 아닙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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