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연합뉴스 제공
국내 식품업계가 원산지 허위 표기 문제로 신뢰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국민 식재료 전도사’ 백종원의 더본코리아가 원산지 표시 위반 혐의로 형사 입건된 데 이어,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며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외식업체 더본코리아는 연이은 원산지표기법 위반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경기지원 서울사무소는 지난 12일 더본코리아가 간장과 된장, 농림가공품 등 3개 품목의 원산지를 거짓 표기한 사실을 적발하고, 원산지 표시 삭제 및 변경을 명령했다. 더본코리아는 제품 용기에는 원산지를 정확히 표기했지만, 온라인 쇼핑몰 판매 페이지에서는 외국산 재료를 국산으로 둔갑시켰다.
논란이 커지자 백종원 대표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모든 제품의 상세 페이지를 재검수하고, 동일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소비자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전국적으로 원산지 조작 사례가 지속적으로 적발되면서 원산지 표기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날 중국산 콩나물과 김치의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허위 표기한 전북 김제의 50대 점주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A씨는 2018년 9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전북자치도 김제시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속인 중국산 김치와 콩나물로 조리한 찌개를 판매해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콩나물은 중국산 콩을 국내에서 키웠기 때문에 국내산”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수입산 농산물로 제조해 논란이 된 한글빵. 세종시 제공
원산지 조작 사례는 개인 음식점을 넘어 지자체가 지원한 지역 특산품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세종시에서는 지역산 식재료를 사용한 빵이라고 홍보한 업체가 원산지 표시 위반 혐의로 적발됐다. 해당 업체는 그리스·중국산 복숭아와 외국산·국산 쌀을 혼합해 사용하면서도 이를 ‘세종시산’으로 표기했다.
더욱이 해당 업체는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다고 허위 신청서를 제출해 세종시와 농업기술센터로부터 2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업체의 제품은 한글을 활용한 기념품 빵으로 제작돼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만큼, 이번 사건이 세종시의 한글문화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부 전통시장에서는 수입 농산물의 원산지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거나, 소비자가 알아보기 어렵게 표기하는 방식이 만연해 있다. 중국산 배추는 종이에 싸서 진열해 국산 배추와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소비자들이 국산 가격을 지불하고도 중국산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배달앱에서도 원산지 허위 표기 사례가 급증했다. 지난해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 및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배달 어플리케이션 농축수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8월까지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주요 배달앱에서 적발된 원산지 위반 건수는 총 2881건에 달했다. 2023년에는 804건이 적발돼 2019년(105건) 대비 7.7배 증가했다.
농관원 측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원산지 표시 관리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소비자가 원산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유통업체와 시장의 원산지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