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을 에너지 안보 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민감국가에 포함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는 다음달 15일 이에 따른 관련 조치가 실제 발효하기 전 한국을 제외하도록 대미 외교전에 나섰지만, 관련 기류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상당 시간을 흘려보낸 뒤라 설득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중앙일보의 관련 질의에 한국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ㆍSCL)에 포함돼 있다고 확인했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면서다.
동시에 에너지부는 “현재 한국과의 양자 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고, 에너지부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국적 과학자가 에너지부 산하 국책연구소 등과 공동 연구나 협력 과제 등을 진행할 때 보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물리적 접근이 막히는 것은 아니어도 일정 정도 제약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사전에 이런 기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데다 에너지부의 결정이 동맹을 중시한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걸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결정이 1월 초라면 이미 지난해 상당기간 검토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상당한데, 한·미 동맹이 강력하다고 수차례 강조하면서도 관련 낌새조차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각 부처 간에 온도 차도 감지된다. 에너지부의 카운터파트인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우리나라가 미국 국책연구소와 하는 과제들이 많지 않아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접근권 문제와 직결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당국자는 “에너지부도 확인했듯이 현재 진행 중인 과학기술 협력은 물론, 신규 사업에도 큰 차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취지로 보이지만, 두 달 넘게 민감국가로 분류된 사실조차 몰랐던 정부의 이런 반응은 안일한 것으로 비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KBS에 출연해 “미국 에너지부 산하에 있는 연구소와 우리나라의 연구소 간에 많은 글로벌 공동 연구가, 올 한 해 약 120억 규모의 공동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며 결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유 장관은 “공동연구 자체가 무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연구자가)45일 전에 미리 신고를 해야 하는 등 여러 불편한 점이 나오게 된다”며 신뢰 손상 등도 우려했다.
실제 대미 외교를 총괄하며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외교부는 사안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류다. 실질적 피해의 정도와 규모도 문제지만,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에 포함한 사실 자체가 동맹 전체에 미칠 부정적 여파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에너지부가 한국 언론 질의에 답하며 굳이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명확한 원인 파악조차 아직이라는 점이다. 한국을 민감국가에 올린 사유를 알아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 등을 토대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데, 아직은 추측만 무성한 상황이다. 미 측은 다양한 채널을 통한 한국 측의 관련 문의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한전)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대형 원전 원천 기술 침해 문제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 휘말린 게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의 독자 원전 수출이 미국의 원천기술 유출에 해당한다며 크게 반발해 왔다. 해당 분쟁은 지난 1월 17일 종결 합의를 봤는데,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건 그 직전이다.
한국에서 공공연히 자체 핵무장 논의가 나오는 게 미국의 핵확산 우려에 불을 붙였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6월 북·러가 사실상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국내에서 핵무장론이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정신에 어긋나는 한국 정치 지도자의 발언 하나하나가 지금의 상황에 영향을 미친 게 된다.
동시에 미국이 한국을 SCL 중에서도 최하위 범주에 넣은 건 거대 담론이나 사건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규정 위반 때문일 가능성도 상존한다.
관련 부처들은 내부적으로 원인 파악에 분주한 가운데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미 설득 포인트를 찾고 있다. 해당 결정이 한·미 간 에너지 협력 등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미래 지향적 측면에서 이를 재고해달라는 논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민감국가 지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보인 조선업 협력이나 한국의 알래스카 가스관 참여 등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동맹에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한 것은 맞지만, 오히려 미 측이 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할 여지를 줄 수 있는 만큼 우리가 지레 겁먹고 너무 피해를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며 “이제 막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와 어떤 분야에서 윈윈이 가능할지 미래 협력에 방점을 두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중앙일보의 관련 질의에 한국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ㆍSCL)에 포함돼 있다고 확인했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면서다.
미국 에너지부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동시에 에너지부는 “현재 한국과의 양자 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고, 에너지부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국적 과학자가 에너지부 산하 국책연구소 등과 공동 연구나 협력 과제 등을 진행할 때 보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물리적 접근이 막히는 것은 아니어도 일정 정도 제약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사전에 이런 기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데다 에너지부의 결정이 동맹을 중시한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걸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결정이 1월 초라면 이미 지난해 상당기간 검토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상당한데, 한·미 동맹이 강력하다고 수차례 강조하면서도 관련 낌새조차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각 부처 간에 온도 차도 감지된다. 에너지부의 카운터파트인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우리나라가 미국 국책연구소와 하는 과제들이 많지 않아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접근권 문제와 직결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당국자는 “에너지부도 확인했듯이 현재 진행 중인 과학기술 협력은 물론, 신규 사업에도 큰 차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취지로 보이지만, 두 달 넘게 민감국가로 분류된 사실조차 몰랐던 정부의 이런 반응은 안일한 것으로 비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KBS에 출연해 “미국 에너지부 산하에 있는 연구소와 우리나라의 연구소 간에 많은 글로벌 공동 연구가, 올 한 해 약 120억 규모의 공동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며 결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유 장관은 “공동연구 자체가 무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연구자가)45일 전에 미리 신고를 해야 하는 등 여러 불편한 점이 나오게 된다”며 신뢰 손상 등도 우려했다.
실제 대미 외교를 총괄하며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외교부는 사안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류다. 실질적 피해의 정도와 규모도 문제지만,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에 포함한 사실 자체가 동맹 전체에 미칠 부정적 여파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에너지부가 한국 언론 질의에 답하며 굳이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S&P 글로벌 에너지 컨퍼런스 ‘세라위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부는 일단 목록 발효 전 약 한 달 동안 각급에서 대미 설득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당장 안덕근 산자부 장관은 이번주 중 방미해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과 양자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전부터 추진되던 일정이지만, 민감국가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명확한 원인 파악조차 아직이라는 점이다. 한국을 민감국가에 올린 사유를 알아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 등을 토대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데, 아직은 추측만 무성한 상황이다. 미 측은 다양한 채널을 통한 한국 측의 관련 문의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한전)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대형 원전 원천 기술 침해 문제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 휘말린 게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의 독자 원전 수출이 미국의 원천기술 유출에 해당한다며 크게 반발해 왔다. 해당 분쟁은 지난 1월 17일 종결 합의를 봤는데,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건 그 직전이다.
한국에서 공공연히 자체 핵무장 논의가 나오는 게 미국의 핵확산 우려에 불을 붙였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6월 북·러가 사실상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국내에서 핵무장론이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정신에 어긋나는 한국 정치 지도자의 발언 하나하나가 지금의 상황에 영향을 미친 게 된다.
동시에 미국이 한국을 SCL 중에서도 최하위 범주에 넣은 건 거대 담론이나 사건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규정 위반 때문일 가능성도 상존한다.
관련 부처들은 내부적으로 원인 파악에 분주한 가운데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미 설득 포인트를 찾고 있다. 해당 결정이 한·미 간 에너지 협력 등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미래 지향적 측면에서 이를 재고해달라는 논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민감국가 지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보인 조선업 협력이나 한국의 알래스카 가스관 참여 등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동맹에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한 것은 맞지만, 오히려 미 측이 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할 여지를 줄 수 있는 만큼 우리가 지레 겁먹고 너무 피해를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며 “이제 막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와 어떤 분야에서 윈윈이 가능할지 미래 협력에 방점을 두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