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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사 재판서 무죄 확정『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
미국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박 교수는 “긴 재판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에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박유하]
“‘위안부 문제’의 복잡한 구조를 해부하고, 동아시아의 건전한 미래를 향해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데 대한 묵직한 고민을 담고 있다.”

2013년 8월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을 때 주요 언론들이 낸 서평 중 일부다. ‘치밀한 탐색’ ‘묵직한 고민’ 등 호평이 이어졌다. 평판이 뒤집힌 건 10개월 뒤. 2014년 6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던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이 자신들을 매춘부, 일본군 협력자 등으로 매도했다며 법원에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한편 박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서다. 박 교수는 ‘위안부를 팔아먹은 마녀’가 됐다.

10여 년의 긴 재판 끝에 박 교수는 2024년 4월과 지난달 18일 민·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1심 무죄, 2심 유죄, 3심 파기환송 및 무죄 확정의 과정은 이 사안이 가진 복잡한 배경을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학문의 자유를 국가 기관이 법으로 단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재판을 마친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월부터 미국 시카고에 머무는 박 교수는 5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너무나 당연한 ‘독해’를 얻는 데 10년이 걸렸다”며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의 책임을 묻고자 했던 책”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법 “강제연행 부인한 거로 보이지 않아”

Q : 10여년간 끌어온 재판들이 마무리됐다.

A :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은 내가 살아갈 공동체인 한국 사회, 법조계 등을 보면서 희망을 갖게 됐다.”

Q :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A :
“원래 일본에서 근대 문호 나츠메 소세키에 대해 공부했다. 그를 통해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연구하면서 한·일 관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1991년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서 집회를 가졌는데, 무료로 동시통역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렇게 할머니들을 만났고, 이후 관심을 계속 갖게 됐다.”

Q : 『제국의 위안부』는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A :
“이 책의 부제목이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이다. 과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전신) 측은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전쟁 범죄라고 했지만, 나는 식민 지배의 문제라고 봤다. 틀을 바꾸고 싶었던 거다. 전쟁 범죄로 하면 임팩트가 있고 배상을 받는 데도 낫다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군의 강제 동원 여부를 놓고 일본 측과 사실 공방도 벌어졌다. 나는 일본 측도 명백히 인정하는 팩트에서 출발해 이 문제를 제대로 따져보자는 것이다. 식민 지배를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 일본의 책임을 설득력 있게 물을 수 있다.”

Q : 그렇더라도 일본 군인과 위안부를 ‘동지적 관계’ 등으로 묘사한 것이 과도했다는 비판이 있다.

A :
“당시 중국 위안부나 네덜란드 위안부도 있었다. 똑같은 인권 침해였지만, 조선인과는 처지가 미묘하게 달랐다. 조선은 식민지로서 군인이 동원됐고 일본군 안에는 조선 병사도 있었다. 요즘 ‘당시 한국인 국적이 어디였나’를 놓고 논쟁이 있지 않나. 당시 조선에서 동원된 위안부의 상황을 설명한 건데 단어만 딱 잘라내서 공격받았다.”

Q : ‘조선인 포주’도 불편한 대목이었다.

A :
“19세기 후반 일본이 해외 진출하면서 규슈 지역의 가난한 여성들이 알선업자들에 의해 매춘부(‘가라유키’)로 많이 팔려나갔다. 이후 조선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인 알선업자도 있었다. 당시 일본이 제국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하부에서 여성들이 동원된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Q : 포주가 조선인, 강제도 아니라면 일본의 책임을 요구할 수 있나.

A :
“극한의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면 결국 몸도 팔고 피도 팔게 된다. 그러니 강제로 끌려갔든 아니든 모두가 일본이 만든 제국의 피해자였다.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겠나. 우리가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는 문제 자체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과거 정대협처럼 ‘강제 연행’만 주장하면 많은 일본인은 이 문제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이른바 양심적인 사람들 10%가 받아들이고 좋게 생각했다고 치자. 나머지 70~80%가 석연치 않은 감정을 가졌다면, 과연 제대로 책임을 지운 것이고,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Q : 일각에선 뉴라이트나 『반일종족주의』의 시각이라고 한다.

A :
“나는 ‘제3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정대협 같은 진보 쪽과도, 이영훈 교수 등 뉴라이트와도 거리가 있다. 양쪽 모두 굉장히 정치적이다. 이 교수의 경우 학문적으로는 평가하지만, 조선에 대해 자기비하를 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런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다.”
1월 23일 서울고법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후 박유하 교수(왼쪽 셋째)와 정종주 뿌리와 이파리 대표(왼쪽 첫째). 재판부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사진 박유하]
2024년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피고(박 교수)는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이 분명하고, 위안부가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고 했다.

무죄 났지만 완전한 명예회복은 불가능

Q : 지난 10년간 가장 쓰렸던 비난은 뭔가.

A :
“‘위안부를 비난했다’는 거다. 여성 인권에 관심 많은 페미니스트로서 책을 낸 건데, 내 의도와 정반대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고 하니 가슴이 아팠다.”

Q : ‘나눔의 집’에서 배춘희 할머니와 꾸준히 소통했다.

A :
“책을 내면서 일본의 사죄와 보상에 대한 할머니들의 생각을 듣고자 ‘나눔의 집’을 찾아가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어느 날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게 됐다. 배 할머니는 일본어를 잘하셨는데, ‘일본을 용서하고 싶은데, 여기선 말할 수가 없다’ ‘너무 고독하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당시엔 너무 놀라워서 허락을 구한 뒤 자주 전화도 드리고 찾아가기도 하면서 녹음이나 녹화도 했다. 배 할머니 외에 다른 분들의 말씀도 들었는데, 비슷하게 말하셨고 정대협 등 지원단체에서 거부한 일본 측 보상금을 받고 싶어하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과연 이들(나눔의 집)이 누구를 대변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더 크게 갖게 됐고, 나눔의 집 측에서는 나를 경계하며 적대시하는 게 노골화됐다.”

Q : 책을 낸 걸 후회한 적 없나.

A :
“단 한 번도 없다. 조선인 포주 등 내 책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10년 전 고발 당할 당시엔 아예 금기시됐는데, 2~3년 전부터는 접점이 비슷한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 또,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일본 학자들을 부르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좀 빨랐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다. 학자로서 50대 중반부터 10여년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쪽에 시간을 쓰게 됐다.”

Q : 이번 일을 겪으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A :
“소송 과정에서 정신적·신체적·경제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무죄 판결을 받았어도 완전한 명예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가 정치화돼 비난도 계속되지 않겠나. 지인들도 많이 잃었다. 다만 얻은 것도 있다. 면식 없던 이들 중에 이 사태를 제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내가 고발을 당했을 때는 한국 학계와 지식인들이 출판금지 가처분에 대한 항의 성명을 냈다. 기소됐을 때와 형사재판 2심 패소 때도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김규항 등 한·미·일 지식인들이 성명을 내줬다. 또 소통 창구가 페이스북뿐이었는데, 이를 통해서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Q : 향후 계획은?

A :
“일단 당분간은 좀 쉬고 싶다. 이후엔 그동안 중단했던 다른 연구를 하고 싶다. 그중엔 해방 후 조선에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에 대한 연구도 있다.”
『제국의 위안부』를 낸 출판사 ‘뿌리와 이파리’ 측은 2015년 법원이 34군데 삭제를 결정하자 이의 신청을 냈다. 그러면서 “정말 이 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한 건지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며 삭제판을 온라인에서 무료 배포했다. 정종주 뿌리와 이파리 대표는 11일 통화에서 “팩트와 주장이 있으면 공론장에서 논쟁하고 반박하면서 풀어야 한다. 헌법에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나”며 “무삭제판을 꼭 내고 싶다”고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 판결문에서 “학문적 연구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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