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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13명에게 물어본 계엄 이후…바뀐 일상에 희망과 비관 오가
인상 깊은 건 ‘시민과 민주노총’…“약자 포용 사회돼야” 한목소리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메리퇴진 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주간경향] 강원도 강릉에 사는 대학생 임세경씨(21)는 최근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모든 일의 발단은 ‘계엄’이다. 대학 신문사 기자인 그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이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문사 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누군가는 아직 불법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고, 누군가는 정 하고 싶으면 혼자 붙이라고 했다.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되기 전이어서 두려움도 컸지만 임씨는 대자보를 썼다. 그러나 그때의 의견 대립은 이후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학내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대자보를 두고 “중국인이냐”, “북한 간첩이냐”라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 계엄이라는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이슈에 집중하면서 피로감도 쌓였다. 종종 무기력해졌고, 결국 치료를 받기로 했다. 임씨는 “일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주말에는 서울로 집회를 가고 제대로 쉬지를 못했어요. (계엄이 정당하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뉴스를 보는 게 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정적인 쪽으로 변했어요”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를 꼬박꼬박 집회로 이끈 건 어떤 의무감이다. 임씨는 “지역구 의원인 권성동 의원이 ‘얼굴을 두껍게 (하고) 다녀라’라는 얘기를 했다더라고요. 얼굴 두껍게 다녀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 사람들이 알아야 하니까 갔어요. 탄핵 반대 집회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라도 좀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라고 했다.

계엄은 대통령의 정적들만 위협한 게 아니다. 시민들의 일상을 위협했고, 풍경을 바꿔놨다. 계엄 이후 전국 곳곳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석한 시민 13명에게 지난 3개월여의 소감을 물었다. 모두 크고 작은 일상의 변화를 경험했고, 자기 성찰이 없는 대통령의 태도에 절망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함께 모인 광장에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이 담겨 있다. 또 이후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도 자리했다.

덕질 중단, 긴장의 나날들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남태령 일대에서 밤새 대치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2일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말과 달리, 시민들은 계엄 후 크고 작은 일상의 변화를 겪었다. ‘덕질(팬 활동)’ 등 일상에 쏟을 소중한 시간을 계엄 이후 정국을 살피는 데 보냈고, 뉴스를 전보다 많이 봤으며, 이따금 비관에 빠졌다.

30대 여성 제빵사 A씨는 지난 3월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자신이 만든 깃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깃발엔 “맘 편하게 덕질하게 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글자를 따라 LED 전구를 달아 저녁 시간에도 눈에 띄었다.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도 없고, 정치에도 무관심했던 그가 퇴근 후 평일 집회에도 참여할 만큼 계엄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덕질’ 때문이다. 계엄 당일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신의 최애 아티스트가 군 복무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잘못됐다가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랑 어딘가에서 대치할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라고 했다. 그 뒤로는 즐겨하던 게임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아티스트의 콘서트 올출(모두 출석) 대신 집회 올출을 하게 됐다. A씨는 지난 3월 8일 윤 대통령의 석방 소식에 경복궁역 인근에서 철야 농성을 했다. 그는 “해결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일상이 다시 돌아오겠죠. 제 깃발대로 맘 편하게 덕질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지난 3개월 동안 때때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답답함에 휩싸였다는 이도 많았다. 그 근원에는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도 반성하지 않는 윤 대통령이 있었다.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국민의힘과 정부, 그로부터 세력화한 탄핵 반대 목소리도 심란함의 원인이 됐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탄핵 집회에 참석한 50대 B씨는 “항상 마음을 졸이고 긴장하게 됐다. 어떻게 뒤바뀌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윤석열도 그렇고, 대통령실도 그렇고, 권한 대행들도 그렇고 수긍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라고 했다. 여러 차례 탄핵 집회에 참가했던 대학생 한사현씨(25)도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계엄에 대한 충격이 커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계엄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계엄이 정당했다는 얘기가 유튜브 등에 계속 나오니까 친구들 사이에도 탄핵을 두고 찬반 의견이 나누어지고 있다”고 했다.

궤변 쏟아낸 대통령

지난 3개월간 가장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 인물이나 단체에 관해 물었을 때 인터뷰에 응한 시민 대다수는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첫손에 꼽았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이 계엄 이후 내놓은 무수한 말 중에 몇 가지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대체로 계엄이라는 행위를 부정하거나 계엄을 정당화하는 말들이었다.

충북 청주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 이성지씨는 윤 대통령의 말 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굉장히 상처가 됐다. 화가 나거나 이런 게 아니었다. 저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고, 일상이 변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르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 밖에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 있습니까?”, “계엄의 형식을 빌려 위기 상황을 국민께 알리고 호소하는 비상조치”(이상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12일 담화) 등을 꼽는 시민이 많았다.

대통령이 앞장서 발화한 분열과 선동의 언어를 꼽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여성 C씨(21)는 올해 1월 1일 관저에 머물던 윤 대통령이 관저 앞에 운집한 지지층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신년사를 겸한 이날 편지에서 윤 대통령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나와 수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우리 더 힘을 냅시다”라고 했다. C씨는 “다 밝혀졌음에도 포기 안 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충격이었다”라고 했다. 대학원생 노경배씨(24)는 대통령이 입 밖에 꺼낸 부정선거 음모론을 꼽았다. 그는 “극우 유튜버들의 언행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일국의 대통령인데, 양쪽 말을 듣고 판단해도 모자란데 한쪽 말만 듣고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다. 피해망상에 찌들어서 본인의 죄는 돌아보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라고 했다.

시민들은 대통령 이외에도 부정적으로 기억하는 면면들이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 중에는 “(탄핵 반대해도)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라고 했던 윤상현 의원과 “(지역구에서) 얼굴을 두껍게 (하고) 다녀라”라고 했던 권성동 의원을 꼽는 목소리가 동등하게 높았다. “살인범 현행범이라도 법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 집행이 불법이라고 강변한 나경원 의원, 2030 청년들로 구성된 ‘백골단’을 국회에서 소개한 김민전 의원이 그 뒤를 이었다. 전광훈·손현보·전한길 등 극우 개신교 세력과 극우 유튜버들을 꼽는 시민도 다수 있었다. 대학생 C씨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 다닌다는 말을 원래도 못 했는데, 더 못 하겠다”고 했다.

계엄 이후 시민들에게 계엄에 버금가는 충격을 준 사건도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극우의 등장을 알렸다. 노경배씨는 “토론과 대화보다 폭력적인 방법을 썼다는 것 자체가 그들 주장을 합리화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폭력 사태 이후에도 내부에서 누군가 선동을 했다는 가짜뉴스를 보면서 국민 내에도 저렇게 서로에 대한 혐오감이 내장돼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와 검찰의 항고 포기를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는 목소리도 있었다. 계엄 당시에는 쿠팡 물류센터 등에서 일하다 지금은 기술교육원에서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있는 남형민씨(30)는 3월 8일 탄핵 집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는 “계엄 선포를 전혀 이해조차 할 수 없는데 화가 났다. 나중에 절차적 하자를 다투게 됐을 때 (검찰이)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서 항고를 포기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석방 결정 때문에 기세등등해진 극우 집회에서 혹시라도 폭력을 자행하러 오지 않을까 싶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고 했다. 이튿날 그는 경복궁역 인근에서 철야 농성을 했다.

남태령에서 본 것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한 지난 1월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인근에서 밤샘 농성을 한 시민들이 은박 담요를 몸에 덮은 채 앉아 있다. 성동훈 기자


계엄 이후 시민들이 사회를 비관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집회를 통해 관계를 확장했고,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남태령에서 있었던 일은 탄핵 집회의 판도를 질적으로 바꿔놨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행진을 경찰 차벽이 가로막자, 탄핵 집회 참가자들이 발이 묶인 농민들과 합류해 밤을 새웠다. 이튿날 오후 차벽이 열렸다.

인터뷰에 응한 시민 모두가 계엄 이후 희망을 본 사건으로 남태령 연대를 꼽았다. 대학생 홍예린씨는 남태령으로 달려간 시민 중 한 명이다. 그는 계엄 당일에는 국회 앞을 지키기도 했고, 계엄 이튿날에는 학내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홍씨는 “솔직히 살면서 한 번도 볼 거라고 생각지 못한 광경을 남태령에서 봤다. 여성, 소수자 문제와 농민의 문제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만남이 가능하고 가능해야 했다는 걸 남태령에서 직접적으로 느꼈다. 박근혜 퇴진 광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정말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감정이 전달됐다. 충북 청주에 사는 정누리씨(29)는 농사를 짓던 부모님과 어린 시절 집회에 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씨는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집회에 갔었는데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 농민들은 농민들끼리 집회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사람들은 농민 문제 관심 없구나’ 싶었다. ‘운동을 통해서 바꿨다’, ‘연대했다’ 이런 것은 제 세대에는 옛날이야기인데 남태령이 지금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계엄 이후 인상 깊었던 인물이나 단체를 물었을 때, 정당이나 정치인을 꼽는 경우는 소수에 그쳤고 대부분은 다른 시민들을 꼽았다. 부산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가했던 D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연단에 올라 스스로를 ‘노래방 도우미’라 소개하며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그는 “3개월간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이 너무 많다. 먼저 연락해주신 분도 많았고, 집회에 참석하는 분들도 슬슬 아는 얼굴이 됐다. 계엄 이후 긴장이 계속됐고 체력적으로 소진됐지만, 그때 용기 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남태령 이후 사람들이 급속 꿘화(급속도로 운동권화)됐다. 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앞으로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봤다”라고 했다.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현재는 일을 그만두고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정누리씨는 “광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시민들의 발언을 듣는 게 정말 좋았다. 지금 당장 윤석열이 파면돼도 세상이 엄청나게 좋아질 것 같지 않은데 좀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을 광장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힘이 됐다”고 했다.

‘시민들’ 다음으로 많이 나온 응답은 민주노총이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재취업을 준비하며 틈틈이 탄핵집회에 참가한 여성 E씨(24)는 “민주노총이라는 집단이 인상적이었다. 대통령 관저 앞 집회에 갔는데 경찰이 진입을 막았다. 그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먼저 길을 터줬다. 그 전엔 직업을 갖는다고 생각했지 노동조합에 가입한다고 생각을 못 했다. 노동조합이라는 연대도 우리 사회에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고 했다.

탄핵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을 때, 시민들은 저마다의 답변을 내놨다. 누군가는 ‘약자가 없는 세상’을 말했고, 누군가는 ‘약자의 자유로운 발언’을 말했으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불평등 해소’를 꼽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들 답변을 한데 묶는 열쇳말은 ‘약자를 포용하는 사회’일 것이다. C씨는 “좀더 포용적이고 열려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차별의 시선이 사라지고, 약자들이 권리를 찾으려는 집회 시위에 안 좋은 여론을 형성하는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D씨는 “소외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삶에 내몰려 죽음을 걱정하거나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왜 힘든지, 왜 극한 상황에 몰려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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