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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H열 15번
영화 ‘아노라’ 스틸컷. 배급사 제공

남성중심 시스템 비판에 큰 차이 없어

여성 욕망 왜곡 현실 그린 ‘아노라’

애니의 발버둥은 비명과 소음일 뿐

202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에게로 가리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오스카의 주인공은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이었다. 이 결과는 뜨거운 논란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아카데미가 여성의 ‘어떤 이야기’와 ‘어떤 몸’에 주목하는지 토론하고, 그 이면에 깔린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지적했다. 두 작품이 어떻게 다르기 때문일까?

‘서브스턴스’는 한때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던 엘리자베스(데미 무어)가 ‘퇴물’ 취급을 당하자 젊음을 되찾기 위해 위험한 약물 ‘서브스턴스’에 손을 대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여성의 몸을 둘러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남성적 시선과 여성 상품화의 문제를 비판한다. 등장과 함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 미녀’로 칭송받았지만 이후 전신 성형 의혹 등 각종 가십에 시달려온 데미 무어의 삶은 영화에 깊이와 현실감을 더하는 무시할 수 없는 레이어다.

반면 클럽에서 일하는 폴댄서인 애니(마이키 매디슨)의 한바탕 소동을 따라가는 ‘아노라’는 그 주제의식에 있어 ‘서브스턴스’만큼 선명해 보이진 않는다.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건지, 아니면 영화 자체가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판매하면서 그 사회의 일부가 되어버리는지,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카데미가 노련한 무어를 외면하고 젊은 매디슨에게 상을 준 것이 ‘서브스턴스’ 서사의 완성”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건 매디슨의 수상 소감이었다. “나는 성노동자 커뮤니티를 지지한다. 나는 여러분의 앨라이(연대자)다”라는 발언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성노동이 구조적인 억압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임을 간과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판자들은 그의 발언이 성노동을 미화하고 가부장제에 부역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브스턴스’와 ‘아노라’가 그렇게 완벽하게 다른가? 나에겐 두 작품 사이의 거리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고, 여성의 욕망에 침을 뱉으며, 그 신체를 남성 중심적 시스템의 비료로 삼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브스턴스’와 ‘아노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룬다. 전자는 여성을 그저 잘 익은 새우와도 같은 ‘먹음직한 살덩어리’ 취급하는 비열한 쇼비즈니스를 하비(데니스 퀘이드)라는 중년 남성의 신체로 이미지화한다. 그곳에서 젊음과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벗어난 여성은 더 이상 주목을 받을 수도, 스스로를 판매할 수도 없다.

이는 단순히 ‘나이 듦’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가치는 대체로 타자의 시선, 특히 남성의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며, 그 과정에서 남성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여성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힘을 상실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자신을 갉아먹는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올라탈 때에만 유사-권력을 누릴 수 있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배급사 제공

‘아노라’는 여성의 몸이 거래되는 시장에서 그의 욕망이 계속 뒤틀리고 미끄러지는 현실을 그린다. 아노라는 자신에게 기꺼이 거액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러시아 갑부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마르크 예이델시테인))을 만나 신분상승을 꿈꾼다. 하지만 그건 동화 속에서나 이뤄지는 판타지다. 영화는 여성의 몸이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처분 가능한 것으로 산화되는 현실과, 그 안에서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몸을 교환가치로 환원하게 되는지에 대한 블랙코미디다.

실제 성노동자들은 ‘아노라’가 성노동자를 대상화할 뿐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생기를 포착하지 못할뿐더러 현실적인 변화도 촉구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정당한 비판일지도 모른다. ‘아노라’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성노동자들의 개성이나 생활, 혹은 그 삶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아니다. 그보다는 성노동이 존재하는 시스템에서 여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가 이 영화의 카메라가 향하는 주제다.

영화의 성착취 시스템 비판과 주연 배우의 성노동자 지지 선언은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 성노동이 구조적인 문제라면, 그 시스템 속의 개인을 짓밟고 모욕함으로써 그 구조가 극복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작품 모두에서 여성의 행위자성이 당면한 곤란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일상과 경력을 관리하려는 엘리자베스의 시도는 결국 실패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는 가부장제의 시선을 얼리는 ‘메두사’가 되지만, 그건 그가 죽고 나서야 가능해지는 일이다.

애니 역시 남성 중심 사회가 쳐놓은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덫에 갇혀서 발버둥 친다. 그는 자신의 생각, 욕망, 계획 등에 대해 분명히 말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건 그저 비명과 발악, 소음으로 드러날 뿐이다. 애니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끝나버린 중반부 이후 ‘아노라’의 사운드가 그토록 시끄러워지는 이유다.

영화의 엔딩은 애니를 연민하며 그의 구원자가 되기를 꿈꾸는 이고르(유리 보리소프)의 ‘프린스 차밍’ 판타지를 벌거벗긴다. 관객은 애니에게 ‘러시아 갑부의 철없는 아들’이 해방구가 아니었듯 ‘진국처럼 보이는 사나이’ 역시 답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애니가 비명 속에서 끝없이 외쳤던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손희정 영화평론가

손희정 영화평론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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