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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류 중 다수가 프리·원사이즈 제품
"55까지만 착용 가능한 제품이 대부분"
S 사이즈만 겨냥한 브랜드 국내 입점하기도
뿔난 소비자들···"이 정도면 강아지옷 아니냐"
‘마른 체형 강박’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제기
온라인 의류 플랫폼에서 판매되고 있는 프리사이즈 의류들에 '개말라' 등의 설명이 붙어 있다. 정유나 견습기자

[서울경제]

“프리사이즈라는 말 이제 안 믿기로 했어요. 차라리 스몰사이즈라고 대놓고 알려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최예린(26) 씨는 지난해 초부터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구매하지 않고 있다. 상품에 프리사이즈라고 적혀 있어 구매했으나 직접 입어보면 터무니없이 작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프리사이즈의 기준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며 “사이즈가 명확하게 표시된 옷만 구매하기로 했다”고 한숨 쉬었다.

최근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성 의류 중 프리사이즈·원사이즈 제품의 비중이 늘어나는 동시에 실질적인 평균 치수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
이에 ‘다양한 체형이 폭넓게 입을 수 있도록’하는 취지로 탄생한 원사이즈 제품이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과도한 다이어트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 중 하나인 ‘Z’ 애플리케이션에서 판매되는 여성 의류 가운데 대부분은 프리사이즈로 분류돼 있다. 대표적으로 상의 제품의 경우 전체 130만 6055개 중 절반이 넘는 67만 9573개(52%)가 프리사이즈였다. 라지(L)~엑스트라 라지(XL) 사이즈 제품은 20만 2220개(15.48%)에 그쳤다.

다만 소비자들의 구매 후기를 살펴보면 ‘프리사이즈’ 의류 중 실제로 모두에게 ‘프리’한 의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프리사이즈 상품을 판매하는 동시에 ‘개말라 몸매보정’, ‘-3kg’ 등 옷의 품이 크지 않다는 홍보문구를 붙이는 쇼핑몰도 여럿이었다. 소비자들은 해당 의류에 “너무 딱 달라붙어서 내복같다”, “이렇게 작게 만들 거면 프리사이즈라고 하지 말라” 등 비판적 후기를 게시하기도 했다.

판매자들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 여성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조 모씨는 “옷 종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여성 옷들은 55까지 착용 가능한 제품이 대부분”이라며 “판매 상품 가운데 체형이 드러나는 슬림핏 상품이 다수”라고 시인했다.

서울 중구의 한 도매상가 모습. 정유나 견습기자


오프라인 의류가게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날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중구의 의류 도매가게 15곳의 직원들은 입을 모아 “최근 판매되는 옷들 중 상의는 대부분 프리사이즈”라면서 실제 사이즈는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의류 도매업에 20년 간 종사했다는 김 모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10~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옷이 작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5년 전까진 프리사이즈를 66까지 입을 수 있었다면, 최근엔 55 이상의 여성들은 입기 힘든 옷이 더 많다”
고 말했다.

프리사이즈 의류는 생산자가 재고를 최소화하면서 다양한 체형의 소비자에게 옷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비용 경제성을 고려해 원사이즈 산업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하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사이즈가 나뉘어져 있지 않더라도 소재와 디자인으로 많은 체형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 원사이즈 의류의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프리사이즈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점점 그 기준이 박해지며 결국 특정 체형의 소비자만 옷을 입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학생 박 모씨는 “친구들끼리 (여성 의류를 보며) 이 정도면 강아지 옷 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너무 짧고 작은 옷이 많아서 대체 누가 입냐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달 초 서울 성동구 '브랜디 멜빌' 매장 앞에서 소비자들이 줄을 서고 있는 모습. 이날 사람들이 몰리며 매장에 입장하기까지만 30여분이 걸렸다. 정유나 견습기자


이런 가운데 원사이즈(One Size Fits Most) 정책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엑스트라 스몰(XS)~스몰(S) 사이즈만 판매하는 의류 브랜드까지 등장했다. 올해 1월 서울 성수동에 첫 매장을 연 이탈리아 여성복 브랜드 ‘브랜디 멜빌’은 오직 마른 체형의 여성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 전략을 선택해 20대 여성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원사이즈 전략이 자칫 마른 체형에 대한 강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소비층인 10~20대 여성들에게 ‘작고 예쁜 옷을 입으려면 체형을 옷에 맞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10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브랜디 멜빌 제품을 입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하는 것이 마름의 척도로 여겨지며 한 차례 ‘몸무게 강박 조장' 논란이 일었다. 최근 국내 SNS에도 ‘브랜디 멜빌 옷 나한테 안 맞을까 봐 너무 떨린다’, ‘뼈마름 브랜드다’와 같은 유사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성 패션 브랜드는 광고를 구상할 때 흔히 ‘꿈을 판다’고 표현한다”며 “여성들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옷을 통해 간접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교수는
“작은 사이즈를 타겟팅해서 판매하는 순간 이상적인, 마른 이미지와 희소성이 결합해 소비자들이 트렌디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 여성들의 ‘다이어트 강박’ 문제는 꾸준히 사회적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저체중 또는 정상체중인 19~29세 여성 가운데 체중감량을 시도한 비율은 46%
로 절반에 육박했다. 이에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의류가 특정 사이즈에 치우치면 판매하는 것 자체만으로 사회적인 메시지가 된다”며 “여성들이 체형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사회 전반적으로 몸무게에 대한 포용적인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면서 “결국 다양한 사이즈의 의류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해야 의류회사도 이에 맞는 상품을 팔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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