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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 시상식. 박태환(좌) 야니크 아넬(중) 쑨양(우)

■"박태환을 제치고…" 올림픽 금 가져갔다

2012년 여름, 런던 올림픽 열기로 달아올랐던 대한민국은 이 경기에 또 한 번 숨죽였습니다. 박태환 선수의 자유형 200m 결승전! 2008년 베이징에서 대한민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뒤, 부침 끝에 올림픽 2연패 도전에 나선 우리의 '마린보이'를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막판 레이스에서 역주를 편 박태환은 '라이벌' 중국 쑨양과 소수점 끝자리까지 같은 기록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초반부터 압도적인 선두였던 이 선수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무서운 샛별' 이었지만 '박태환과 쑨양의 적수는 못 될' 걸로 평가됐던 프랑스의 야니크 아넬이었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200m 결과 (KBS 중계 화면 캡쳐)

"프랑스 수영 '황금시대' 주역"… '스포츠 스타' 아넬

야니크 아넬은 18살의 나이에 2010년 유럽 수영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내며 국제무대에 등장했습니다.

무서운 성장세를 보인 아넬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 2개, 은 1개를 따냈고 특히 박태환과의 레이스 전날, 자유형 팀 계영에서 막판 폭풍 스퍼트로 프랑스의 금메달을 견인했습니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의 미국팀을 꺾자, 프랑스 언론들은 '프랑스 수영 사상 가장 놀라운 성과'라며 '황금시대의 주인공'이라고 그를 칭했습니다.


런던올림픽 프랑스 수영 국대팀과 야니크 아넬 (우)

이후 저조한 성적을 보이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예선 탈락한 아넬은 24살에 은퇴를 선언합니다.

조기 은퇴 뒤 화려한 '셀럽의 삶'

선수로서의 영광은 짧았지만, 스타로서의 삶은 화려했습니다. 유려한 말솜씨에 지적인 풍모로 방송인으로 변신한 아넬은 세계적인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특별 초청 인사 등 각종 스포츠 행사의 단골 '셀럽'이 됐습니다.

2019년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아넬 (출처: SUD RADIO 홈페이지)

2019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야니크 아넬.

프랑스 공영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수영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면서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해설을 맡은 그는 당시 우리나라의 황선우 선수에 대해 '폼이 좋다'며 칭찬했습니다. 특히 E-스포츠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게임 강국' 한국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피해자 당시 나이 13살"

2021년 겨울, 프랑스는 갑작스런 속보에 발칵 뒤집힙니다. '스포츠 스타' 야니크 아넬이 미성년자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전격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야니크 아넬이 전 코치의 딸 N 씨를 상대로 수 차례 성폭행,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데 그때 피해자 나이가 불과 13살. 당시 24살이던 아넬과 11살 차이가 나는 미성년자였다는 겁니다.

2016년 프랑스 수영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아넬.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수영이었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아넬은 프랑스 동부 알사스 지방 뮐루즈의 올림픽 수영 클럽에서 유명 코치인 호르테로부터 훈련을 받습니다.

코치 가족이 운영하던 해당 클럽에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수영팀의 해외 전지훈련 등에도 N 씨가 동행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넬을 체포해 조사한 프랑스 검찰은 두 사람의 성관계가 여러 차례, 뮐루즈의 양측 집과 해외 전지훈련지인 태국 등에서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강압성 없었다" 주장…프랑스 형법 처벌은?

아넬은 성관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강압성이 없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 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단호했습니다.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형법상 처벌 대상' 이라는 겁니다.

2021년 초, 프랑스 의회는 '성인이 15살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을 경우 이를 모두 성폭행(강간)으로 규정'하고 최고 징역 20년 형에 처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했습니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을지라도 '상대방이 동의했다'라는 이유를 들며 처벌을 피하는 악용 사례를 막고, 아동성범죄로부터 미성년자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더해 교사나 코치, 부모 등 '권력관계'에서 성관계가 이뤄졌을 경우엔 피해자 연령을 18살 미만까지 확대해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권력관계 속에서 미성년자들이 성관계에 대한 동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며 근친상간과 위력에 의한 아동·청소년 성폭행 처벌을 강화한 겁니다.

2016년 프랑스 수영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아넬.

돈 문제·폭로 시점·주변인들…진흙탕 싸움

충격적인 속보 이후 후속 보도가 잇따르면서 야니크 아넬 사건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먼저 '돈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넬과 그의 전 코치, 그러니까 피해자의 아버지 간 채무 관계로 소송전이 벌어졌단 겁니다.

아넬이 훈련을 받았던 뮐루즈 올림픽 수영 클럽은 호르테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해 온 지역 유명 스포츠 거점이자 수영 국가대표팀을 키워낸 산실입니다. 그러나 2020년 광범위한 재정 비리가 적발되면서 감사 대상이 됐지만, 이를 정치권을 통해 무마하려 했단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2014년 아넬과 호르테 코치의 모습 (출처: AFP)

아넬에게도 지급해야 할 수당 6만 유로 (약 9천5백만 원)을 주지 않아 지방법원이 지급 명령을 내렸지만, 결국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갈등 상황을 무마하려 아넬과 코치 딸의 관계 폭로, 성폭행 고소가 이뤄졌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런 주장은 '고소 시점'에 대한 의구심과 맞물려 확산됐습니다.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은 건 2016년인데 '왜 5년이 지난 시점에 ' 성폭행 고소를 했냐는 겁니다.

여기에 '주변 사람들도 아는 사이'였다는 보도도 잇따랐습니다. 2021년 당시 프랑스 공영 '라디오 프랑스' 는 아넬과 코치의 13살 딸 N 씨의 '친밀한 관계'가 주변 수영 선수들 사이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이였다는 선수들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코치를 비롯한 가족들도 이 관계를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법적 쟁점도 복잡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아동성범죄 관련 프랑스 형법 개정이 2021년 4월 이뤄졌고 그해 말인 12월, 아넬 사건이 폭로됐는데 범행이 이뤄진 시기는 2016년으로 법 적용 시기도 논란이 됐습니다.

개정 전 형법이 적용돼야 하지만 피해자 나이가 13살로 아넬과 나이 차이가 11살에 달한다는 점, 유명 '셀렙' 에 의한 미성년자 성범죄라는 점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검찰의 1차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6년 프랑스 수영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아넬.

5년 만에 1차 결과…"올림픽 챔피언 지위 악용"

현지 시각 8일, 프랑스 뮐루즈 검찰청은 야니크 아넬을 성폭행(강간)과 성추행 혐의로 예심에 넘겼다고 발표했습니다. 프랑스 사법 체계상 아동성범죄처럼 강력 범죄는 반드시 수사판사의 예심을 거쳐야 하는 만큼, 수사판사가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아넬은 피해자에게 강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 특히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그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 있다" 고 강조했습니다.

본격적인 재판 절차는 이제 시작된 셈인 만큼 아직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든 활동이 완전히 중단됐던 지난 5년처럼, 최소 최종심이 내려지기까지 화려했던 스타로서 아넬의 삶 역시 멈춰서리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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