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청년 아르바이트를 경험으로만 치부하는 ‘워크돌’
|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K팝 아이돌 멤버가 아르바이트 체험을 하는 내용의 웹 예능 <워크돌>에 출연한 (여자)아이들 멤버 슈화(왼쪽)와 엔믹스 멤버 해원. 유튜브 채널 <워크맨> 갈무리
‘어린 여성’ 아이돌의 직업 체험
판매직인데 고객 코 풀어주고
PC방에선 삼겹살 구워 요리도
‘성실·싹싹’ 태도 강요받지만
사회가 노동력 착취·경시한 탓
몸 부서지게 일해도 ‘최저임금’
직장 내 괴롭힘·산재 처리 ‘사각’
“아이돌의 K-JOB 리뷰”인 <워크돌>은 방송인 장성규가 각종 직업을 체험해보는 웹 예능 <워크맨>에서 파생된 프로그램이다. 2023년 5월25일 첫 방송을 했으며, 시즌 1의 MC는 G-아이들의 슈화, 시즌 2와 3의 MC는 엔믹스의 해원이 맡았다. 2025년 2월27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시즌 3이 막을 내렸고, 현재 시즌 4를 예고하며 새로운 MC 모집 공고를 낸 상황이다. <워크돌>은 <워크맨>과 같은 포맷이자 후발 주자임에도 험난한 유튜브 생태계에서 꾸준히 높은 조회 수와 화제성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시즌 1의 슈화가 잘 다진 초석 위에 시즌 2, 3을 연임한 해원이 특유의 예능감과 매력, 성실함으로 엄청난 상승효과를 냈다. <워크돌>은 몰라도 “외모 췍~!”이라는 인터넷 밈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해원이 승무원 체험 도중 거울 앞에서 유니폼 차림을 확인하며 했던 말은 독특한 억양과 포즈로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워크돌>을 보고 있으면, 웃다가도 어느새 가슴 한편이 찡해지고 씁쓸해지기도 한다. 별 하나에 최저임금이, 별 하나에 청년 노동자들의 애환이,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오늘은 <워크돌>을 통해 MC들이 상징하는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의 에토스를 살펴보고자 한다.
<워크돌> 시즌 1의 첫 영상 제목은 ‘알바 시작 전부터 급여 협상해버리는 신입’이다. 일하기 전에 급여를 포함한 노동 조건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지만, 마치 신입의 이런 행동은 유난스럽고 특이하다는 듯한 제목이다. 제작진은 슈화에게 원하는 급여를 묻고, 슈화는 자신과 멤버들의 능력치를 언급하며 시급을 제시한다. 시즌 4의 워크돌 구인 광고를 보자. “자격요건: 아이돌. 근면성실. 유잼 머신 예능감 보유자. 퀸/킹 네버 크라이스러운 멘털. 국가대표 저리가라 체력. 우대사항: 외국어 가능.” 그야말로 지, 덕, 체를 다 겸비한 인재를 찾고 있다. 실제로 <워크돌>의 MC들은 차력쇼 수준의 수행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론은 대부분 최저임금 엔딩. 요구 사항은 많지만, 인건비는 가장 저렴하게 책정하는 현실 그 자체다. <워크맨>에서 진행했던 ‘전설의 알바생 찾기’처럼, 실제로 현장에는 1인분 이상을 해내는 숱한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있다. <워크돌>에서 일을 가르쳐주는 사수들도 대부분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사소해 보이지만 소비자 만족도와 직결되는 ‘한끗’은 현장에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짬’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숙련도나 기여도, 노동 강도는 고려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는 불안정 노동, 단기 근로 노동으로서 제도와 인식의 차원에서 한참 뒤처져 있는데, 아르바이트가 ‘청년들의 노동’으로 범주화된다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즉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인식이 여전히 청년 노동을 경험으로 환산하기에 아르바이트는 용돈 벌이나 인생 공부 이상으로 의미화되지 않는다. 이런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성폭력 예방 교육이나 직장 내 괴롭힘, 산재 처리 등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다.
동시에 아르바이트생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프로처럼, 실수 없이 일하기를 기대하는 모순이 존재한다. 뭐야, 사측이세요? <워크돌> 떡집 편에서 해원이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파지 떡이 나오자, 떡집에서는 그 책임을 해원에게 물린다. 해원은 일급 7만5000원 중 4만3000원을 파지 떡을 사는 데 쓰고 이는 ‘양심 값’이라는 이름으로 수습되었다. 해원이야 <워크돌> 출연료를 따로 받지만, 실제 아르바이트생이라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시즌 3의 마지막 영상은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상사들이 출연하여 일종의 동창회를 하는데, 거기에서 ‘요즘 알바생들은 주인의식이 없고 연대의식을 느끼기 힘들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장님이 지탄받았다. 주휴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주 15시간 미만으로 고용하는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주인의식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못해 기이하다. 최근 빅뱅의 대성이 지난달 2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집대성’에서 헤어 메이크업 담당자를 두고 “여기 있는 만큼 급여를 주고 다른 데 가 있으면 그 시간만큼 돈을 안 준다”고 한 발언이 논란이었다. 일명 ‘꺾기’라고 하여 업무 지시를 기다리거나 대기하는 시간 동안은 급여를 주지 않는 노동법 위반 사례인데, 대성은 이를 마치 ‘CEO의 기발한 전략’인 양 후배 가수에게 자랑한 것이다. 한편, 최근 업장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양화되면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지는데 아르바이트생들은 이 모든 것을 ‘까라면 까야’ 하는 문제도 있다. <워크맨>에서 ‘2+1 일거리 증정’이라고 섬네일을 뽑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대표적이다. 기업은 노동자에게 추가금을 지급하지 않고도 제공하는 품목과 서비스를 늘리며 이익을 취한다. <워크돌>에서 러쉬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슈화는 판매직이지만, 운영 방침에 따라 고객들의 발을 씻어주고 코를 풀어준다. 해원은 PC방 알바를 하러 갔다가 삼겹살을 굽고 닭을 튀기는가 하면, 호객하려고 자신의 춤과 노래를 동원한다.
이처럼 착취와 노동 경시가 빈번함에도 <워크돌>은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노동 에토스와 ‘여성 아이돌’ MC라는 특수성이 합쳐져 매회 감동의 드라마를 썼다. 에토스(Etho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제시된 개념인데, 이성으로서의 로고스와 심리 및 감정으로서의 파토스와 함께 중요한 설득의 기술이다. 에토스는 사회적 관습이나 개인의 성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말하는 자의 도덕성이나 진실성이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공동체로부터 신뢰와 공감을 받을 만한 성품과 태도, 즉 에토스는 집단과 공동체에서 추구하는 가치, 믿음, 감수성과도 밀접하다. 노동 에토스란 노동 현장에서의 이상적인 태도, 성품, 가치관을 의미하며 <워크돌>의 청년-여성-노동 에토스는 ‘성실과 싹싹’이라고 할 수 있다. 슈화와 해원은 <워크맨>의 장성규와 달리 언제나 YES를 외치고, ‘분위기’를 위해 발랄하고 친근하다. 시즌 1에서 슈화와 사전 미팅할 때 제작진은 “메이크업 이런 거 다 지워져도 상관없어요? 더 포기해야 될 것 같은데”라고 묻는다. 아이돌에게는 부담스러운 조건이지만, 일단 ‘하기로’ 한 이상 몸을 사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신흥 귀족이라는 비판을 들을 만큼 ‘쉽고 편하게 돈 번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연예인, 그중에서도 ‘어린 여성’이 감히 노동의 현장에서 불성실하다는 것은 곧 나락으로 가는 급행열차 탑승을 의미한다. 슈화는 종종 뺀질거리거나 꼼수를 부리지만, 어디까지나 예능의 차원이다. 대만인 아이돌로서, 오늘날 아르바이트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주민 아르바이트생을 상징하기도 하는 슈화는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해원 역시 마찬가지다. 해원은 시즌 2 첫 화에서 각목을 들고나와 씩씩하게 외친다. “모두들 요즘 MZ세대들 나약하다 뭐라 하는데, 강인한 정신력으로, 예? 그런 거 다 깨버릴 거예요, 예?” 그리고 3개의 송판을 격파하며 <워크돌>에 임하는 태도를 명시한다. 각 송판은 ‘낙인’을 상징한다는데, 그것이 ‘MZ세대’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여성 아이돌’을 향한 것인지 애매하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첫 번째 낙인은 ‘한계’, 두 번째는 ‘편견’, 세 번째는 ‘나약함’. 이를 깨부수어야 한국 사회가 선호하는 노동 에토스이자, 노동자인 여성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덕목에 도달할 수 있다. “너 지쳤니? 나약하다, 요즘 애들” 같은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밝힌 해원은 그야말로 몸이 부서져라 <워크돌>에 임했다. 해원은 특유의 예능감과 기력, 친화력, 순발력, 성실함이 돋보인다. 싸늘한 분위기를 살려내고, 억지스러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내던져 몰입하며, 편집된 분량에서도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낸다. 실수하면 생방송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기상 캐스터 아르바이트의 부담감이나 승무원 체험에서 기내 방송의 압박감도 이겨낸다. 반짝반짝한 해원은 <워크돌> 시청자에게 감동을 줬고, 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많은 댓글처럼 해원은 앞으로 더 잘될 수밖에 없는 노동 에토스의 소유자다. 이는 어린 나이에 걸그룹으로 데뷔한 해원 고유의 재능일 수도 있지만,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어린 여성 노동자의 생존 기술이기도 하다. 마냥 ‘대견하게만’ 봐서는 곤란하다.
<워크돌> 시즌 3 마지막 방송에서 함께 일했던 상사들의 방문에 해원은 울컥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방송을 망칠까봐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눈물을 그치려고 애쓴다. 기분을 잘 관리하여 노동에 차질 없도록 하는 것 또한 이 시대 노동자에게 은밀하고 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화는 감동과 함께 서늘한 현실을 환기한다.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