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과잉, 현대인의 대표 질환
어지간히 알려진 병 가운데 ‘당뇨병’이 어떤 경로로든 관련되지 않은 질환을 찾기는 어렵다. 눈 질환인 녹내장과 망막질환부터 각종 심뇌혈관질환, 폐렴·폐암 등 호흡기계질환, 심지어 우울증과 치매 등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다. 당뇨병은 혈액 안에 있는 포도당(혈당)이 정상치보다 높게 유지되는 질환이다보니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김은숙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당뇨병이 무서운 것은 그 자체보다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뇨병은 ‘영양 과잉’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질환이기도 하다. 빠르게 혈당을 높이는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다 보면 혈당을 세포에 흡수시키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하는 시점이 온다. 특히 ‘혈당 스파이크’라 부르는 현상이 반복되면 더욱 위험하다. 혈당 스파이크는 혈당이 급격히 올랐다가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는데, 주범은 대체로 고도로 정제·농축된 탄수화물이나 당분이다. 몸속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면 췌장은 그만큼 인슐린을 많이 분비해 혈당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그 결과 혈당은 식사 전보다 더 낮아져 상대적 저혈당이 유발되면서 인체가 받는 스트레스는 더욱 커진다.
이미 한국인 10명 중 1명은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당뇨병학회에서 발표한 ‘당뇨 팩트시트 2024’를 보면 국내 당뇨병 환자는 약 533만명에 달하며, 30대 이상 연령층의 당뇨병 유병률은 14.8%로 집계됐다. 게다가 당뇨병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2019년 약 321만명에서 2023년 약 383만명으로 19.2% 증가한 데서도 보듯 증가세도 매우 가파르다. 또 당뇨병을 보통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통계청의 2023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국내에서 7번째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라 간과하면 위험할 수 있다. 신동현 분당제생병원 내분비내과 주임과장은 “당뇨병의 원인은 유전과 환경적인 부분이 있는데 유전자의 이상을 찾을 수 있는 경우는 전체 당뇨병의 1% 미만에 불과하다”며 “최근 들어 당뇨병이 급증한 이유는 유전적인 원인보다는 과도한 음식물 섭취와 운동량 감소로 인한 비만증의 증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10명 중 1명이 앓고 있어
유전자가 원인인 경우는 1% 미만
영양 과다·운동 부족이 더 큰 이유
2형 당뇨 땐 갈증·피로감 등 증상
혈당 변동폭 줄이는 관리가 중요
음식 조금씩 여러번 나눠 먹어야
균형 식단…시원한 환경서 운동을
비록 현재의 혈당 조절능력이 당뇨병 진단을 받을 수준은 아니라 ‘경계성 당뇨’에만 해당하더라도 지속적인 주의는 필요하다. 경계성 당뇨는 당뇨병 전단계로 일반인보다는 혈당이 높고 당뇨병 환자보다는 조금 낮은 수치를 의미한다. 8시간 이상 금식 후 공복 상태의 혈장포도당이 126㎎/dℓ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하는데, 100㎎/dℓ 이상일 경우를 전당뇨로 본다. 75g의 포도당을 물에 녹여 5분 이내에 마시고 30분 간격으로 2시간 동안 혈당을 측정하는 당부하 검사에선 2시간 혈당이 200㎎/dℓ 이상이면 당뇨, 140~199㎎/dℓ면 당뇨병 전단계 중 내당능 장애로 본다. 당화혈색소 수치는 5.6% 이하가 정상, 5.7~6.4%까지가 전당뇨, 6.5%부터는 당뇨로 구분한다.
혈당이 높은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소변으로 넘쳐 나올 정도가 된다. 당뇨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아 당뇨병이 생기는 1형 당뇨병은 주로 어린 나이부터 발병하지만, 2형 당뇨병은 초기에 췌장에서 인슐린이 더 많이 나오다가도 점차 인슐린에 반응하지 않는 저항성이 생겨 혈당이 높아지는 질환이다. 혈당이 소변으로 배출되면 소변량도 늘면서 몸 안의 수분이 부족해져 갈증이 심해지고 섭취한 음식물은 에너지로 제대로 사용되지 않아 피로감을 쉽게 느끼고 체중이 감소할 수 있다.
정기검진에서 당뇨병 전단계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규칙적이고 균형을 맞춘 식단 섭취와 함께 운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1년에 1회 이상 정기적인 검사도 필수다. 당뇨병 고위험군은 운동과 식이조절을 통해 체중을 조절하면 당뇨병 발생을 예방할 수 있고 효과도 10년 이상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은숙 교수는 “우리가 안경을 쓴다고 시력 문제가 완치됐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당뇨병도 완치의 개념보다는 관리가 중요하다”며 “특히 초기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하면 이후 고혈당으로 인한 합병증 발생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당뇨병을 치료할 때는 하루 동안 최고 혈당과 최저 혈당의 차이인 혈당 변동폭을 확인하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조절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당이 급격하게 변할수록 혈관의 내피세포를 자극하고 동맥경화를 부르는 등 혈관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혈당이 병적으로 모자란 상태가 되는 저혈당증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혈당 변동폭 점검은 필수적이다. 당뇨병을 잘 다스리면 혈당 변동폭이 크지 않지만 조절이 안 되는 경우에는 약제의 작용 시간이나 복용량, 먹는 음식의 양, 운동 여부에 따라 혈당이 수시로 변해 변동폭이 커지므로 다각적인 치료를 통해 혈당 변동폭을 관리하게 된다.
혈당 조절이 필요한 환자는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혈당 수치가 과도하게 높아지기 때문에 음식을 조금씩 여러 번 나눠 먹는 식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탄수화물은 총열량의 50~60%, 지방과 단백질은 각각 20% 내외로 섭취하도록 권고한다. 다만 개인에 따라 현재 상태와 처해 있는 주변 상황, 목표치가 다르므로 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 공통된 목표는 무엇보다 혈당 조절능력을 향상시키고 당뇨 합병증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적정한 체중 조절을 위해 운동을 할 때도 유의할 점이 있다. 당뇨병의 대표적인 합병증인 당뇨발을 예방하기 위해 발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잘 보호하고 수시로 상태를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김진택 노원을지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혈당이 높을 때 운동을 하면 땀이 나면서 탈수가 생길 수 있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으므로 냉방시설을 갖춘 곳에서 해야 한다”며 “갈증이 날 땐 시원한 물이나 차를 마시는 것이 좋고, 장시간 운동을 할 땐 탈수나 저혈당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게 5~10% 미만의 당분이 함유된 스포츠음료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