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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17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현지시간) 에콰도르 키토에서 각종 손팻말을 든 여성들이 행진하고 있다. 키토=AP 뉴시스


지난 8일은 제117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2025 세계 여성의 날, 사진으로 본 전 세계 여성들의 저항'에서도 설명했듯, 1908년 미국 뉴욕시의 의류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그 기원이 올라가는 이날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며 젠더 평등을 향한 변화를 촉구하는 날이다.

당시 1만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시를 행진하며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참정권을 요구했고, 이들의 투쟁은 여성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됐다. 그로부터 100년 하고도 17년이 더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고한 자본주의 가부장제 경제하에서 당시 여성들이 요구하던 권리는 아직 온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에 따르면, 이
지구상에 젠더 평등이 완전히 이뤄진 국가는 아직 없다.
총 4개 영역(①경제적 참여와 기회 ②교육적 성취 ③건강과 생존 ④정치적 권한)에서 젠더 격차를 수치화해 각국 순위를 매기는데, 가장 최근인 지난해에도
지금까지의 속도라면 지구상에서 완전한 젠더 평등이 이뤄지는 데 134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될 정도다.


'대한남국'이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어떤가? 국민을 의미하는 '민'(民)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삶의 현주소는 어떤가? 젠더 격차 지수는 0점에서 1점까지 점수를 매기는데 1점에 가까울수록 젠더 평등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즉 0점은 완전 불평등, 1점은 완전 평등이다.

'대한민국'은 0.696점으로 146개국 가운데 94위를 기록했다.
평등으로의 길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걸 명확히 보여주는 한편,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21세기 초반에도 여전히 여성 국민은 삭제된, 그래서 '대한남국'(大韓男國)이라고 표현해야만 하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하게 만든다.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수많은 공약 가운데서도 유독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던 후보가 당선된 것, 그리고 그렇게 당선된 대통령이 느닷없는 비상계엄으로 탄핵 심판의 법정에 서게 된 것. 이는 어쩌면 대한남국(大韓男國)으로서의 우리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젠더의 렌즈를 통해 우리의 삶의 공간인 대한민국의 다양한 공간들, 즉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 공간에서 젠더의 현주소가 어떤지 살펴보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젠더의 현주소: 정치 공간에서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422회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정치 행위가 펼쳐지는 장소로서의 정치 공간에서 '이끄는 자'로서의 '정치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건 오늘날도 여전히 주로 '남성 정치인'이다. 필자가 '젠더, 공간, 권력'(2020)에서 강조했듯, 대통령이나 총리 관저, 장관실과 국회의사당 같은 공간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남성 정치인의 '과다 대표화'와 여성 정치인의 '과소 대표화' 현상
이다.

정치 공간에서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남성인 것은 물론이고 총리나 장관, 국회의원이나 시장 혹은 도지사도 거의 예외 없이 남성에 의해 독점돼 있다. 곧 탄핵 여부가 결정될 남성 대통령을 그 정점으로, 정치 공간은 그야말로 틈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젠더 격차가 아주 크다.

지난해 2월 이후로 신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아 공석으로 있는 여가부를 제외하고, 기획재정부에서 국가보훈부에 이르는 나머지 18개 부처의 장관에서 여성이 장관인 곳은 농림축산식품부, 중소벤처기업부, 국가보훈부로 총 3곳뿐이다. 즉
남성 장관은 83.3%이고 여성 장관은 16.7%에 불과하다.


영남 출신의 60대 남성이 중심이라는 점도 물론 덧붙여야 한다. 또 국회의원은 300명 중 남성이 240명으로 그 비율이 80%에 달한다. 17개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 전원이 남성으로, 비율은 그야말로 100%다.

젠더의 현주소: 경제 공간에서

직장갑질119 젠더특위,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젠더팀 관계자들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젠더임금격차는 경제 공간에서 젠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다. 지난 5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 따르면,
대한남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28위를 기록했고, 젠더임금격차는 29.3%로 가장 컸다.
회원국 평균 젠더임금격차가 11.4%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큰 격차가 아닐 수 없다.

대한남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후로 젠더임금격차 1위라는 사실에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이는 대한남국의 여성들이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가장 심각한 소득 불평등에 노출돼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 시장에서의 소득 불평등은 은퇴한 이후에는 젠더연금격차로 이어진다. 지난 11일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2024년 11월 기준 국민연금 통계'에 따르면,
월 200만 원 이상의 국민연금 수급자는 남성이 4만8,489명으로 98.2%를 차지한 반면 여성은 겨우 885명으로 1.8%에 머물렀다.


이 모든 우울한 현주소의 이면에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노동 분업, 즉 남성은 유급 노동 - 여성은 무급 노동이라는 전통적인 젠더 노동 분업이 자리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경제 공간에서의 젠더 격차를 줄이기는 앞으로도 어렵다.

젠더의 현주소: 사회문화 공간에서

서울 강남구 신사역 주변의 한 건물에 성형외과 및 피부과 병원 간판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홍인기 기자


이처럼 느리기만 한 정치·경제 공간에서의 젠더 평등의 속도는 사회문화 공간에서의 '여성 만들기'와도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여성의 몸에 대한 집요한 개입으로, 한편으로는
초저출생에 직면해 여성에 대한 '어머니 만들기'가 재시도되고 있는 현상
을 들 수 있다. 견고한 젠더 노동 분업에 기반한 구조적 불평등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없이 여성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어머니가 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육체로서의 여성' 혹은 '외모로서의 여성'으로 환원
하며 다이어트·화장품 및 성형 산업을 통해 여성이 자기 몸과 전쟁을 벌이도록 강제하고 있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젊은 여성일수록 '사회적 시선' 때문에 다이어트 시작해" "20대 여성 6, 7명 중 1명은 저체중… 비만 아닌데도 46%가 다이어트"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 최근 5년간 10대 여성 거식증 환자 2배" "성형대국 한국 '1,000명당 8.9명' 수술 받아… 세계 1위" "19~29세 여성 25% 성형수술 경험" 같은 기사 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젠더 평등한 공간의 생산을 향해

대전 지역 여성단체들로 구성된 3·8 세계 여성의 날 대전공동행동(공동행동)이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4일 오전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동행동 제공


이런 대한남국의 젠더 현주소는 구조적인 성차별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젠더 평등한 공간의 생산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캐나다의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레슬리 컨(Leslie Kern)은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2022)에서 "도시는 콘크리트로 쓴 가부장제"라고 비판한다. 독일 작가 레베카 엔들러(Rebekka Endler)는 '사물의 가부장제'(2023)에서
"남자는 만물의 척도다.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의 기준이다"라며 "이는 인구의 최소 5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뜻"
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각각의 공간에 담긴 '남성 중심성'을 드러내는 것
, 즉 젠더에 기초한 사회적 권력 관계의 물질적 응축으로서 '사회적 공간'에 담긴 '남성의 얼굴'을 가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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