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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영 기자


“부모님이 몸에 마비가 와서 응급실에 갔더니 전원에 동의하면 의사를 만나게 해주겠대요. 병실이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눈앞이 깜깜했어요.”(60대 뇌출혈 환자 가족)

“자궁근종이 있어서 임신 후 대형병원 산부인과를 다녔어요. 그런데 인력(마취과 의사)이 없어 밤에 분만하면 무통주사를 맞을 수가 없대요.”(출산을 앞둔 30대 임산부)


의과대학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이 지났다. 집단 사직한 전공의 대다수는 여전히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고 의대생도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2026년 의대 입학 정원 원복이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의대생 복귀’라는 조건부 방침에 반발이 거세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의 고통은 커져가고 있다. 남은 의료인력으로 간신히 버티던 진료현장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교통사고·추락 등 환자를 치료하는 권역외상센터 일부에서 야간이나 휴일 응급수술을 중단했다. 인력 부족에 마취과 전문의들의 피로도가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세종충남대병원, 강원대병원 등 지방 병원도 응급실 운영을 일부 제한했고 빅5에 속하는 서울성모병원은 지난 2월 초응급환자를 제외한 심혈관계 응급환자 진료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상황이 이대로라면 의료 공백은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

◆수술은 줄고 사망자는 늘고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추진한 의료개혁은 매년 2000명씩 5년간 총 1만 명을 늘리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의료 공백은 '터무니없는 규모'의 증원안에 반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지난해 2월 의료 현장을 이탈하면서 시작됐다.

암환자들의 수술 대기 기간은 의료 공백이 심화할수록 늘어났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암 수술 소요 일수 자료를 보면 상급종합병원에서 폐암 환자의 마지막 진료 후 평균 수술 대기 기간은 지난해 2월 17.9일에서 10월 29.6일로 길어졌다. 이 기간 평균 대기 기간은 27.5일로 전년 동기(19.6일)보다 40.3% 늘었다. 자궁경부암, 유방암 등도 수술 대기 기간이 열흘 이상 길어졌다.

암 환자 수술은 마지막 검사 이후 환자 상태가 바뀔 수 있어 가급적 2주 안에 수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상황이지만 수술 일정이 잡힌 환자는 그나마 운 좋은 경우다. 수술을 앞두고 일정이 미뤄졌다는 연락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다. 전국 상급병원의 중증 암 질환 수술 건수(건강보험 산정특례 기준)는 지난해 2~10월 10만1569건으로 전년 동기(12만1102건)보다 16.1% 감소했다.

지난해 2~7월 수혈 건수(13만7645건)는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2만2200건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과 치료가 감소하면서 수혈 건수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이 기간 초과 사망자 수는 3136명으로 나타났다. 초과 사망은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넘어선 수치를 말한다. 2015∼2023년 9년간 각 해의 2∼7월 전국 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 수는 총 4193만5183명이었고 이 중 사망한 환자는 34만1458명으로 사망률은 0.81%였다. 그러나 지난해 2∼7월 입원한 환자 수는 467만4148명, 사망한 환자 수는 4만7270명으로 사망률이 1.01%로 뛰었다.

의료계에선 김 의원의 주장에 반박하는 연구가 나오며 논쟁이 되기도 했다.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예방의학과 전문의)는 ‘2024년 전공의 파업이 사망률에 미친 영향’이란 논문을 통해 “지난해 3~12월 사망률(10만 명당 577.4명)과 연령 표준화 사망률(10만 명당 여성 650명·남성 750명)이 의정 갈등 이전과 비교했을 때 증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지난해 사망자가 예상보다 1만2101~3만3084명 적었다고 부연했다. 의료 대란 피해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과잉 의료가 멈추면서 생존율이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 발표는 고령화 추세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분석이라고도 지적했다.

초과 사망 논쟁을 떠나 지난해 사망자 수 자체는 확실히 늘었다(통계청). 사망자 수는 2022년(37만2900명) 전년 대비 17.4% 급증했고 2023년(35만2500명) 5.5% 감소했으나 지난해 다시 1.7% 늘면서 35만8400명으로 집계됐다.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후 역대 2위 기록이다. 1위는 코로나19 감염병 영향을 크게 받았던 2022년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를 제외하면 지난해가 사실상 역대 최고치다.

인구 1000명당 사망자를 뜻하는 조(粗)사망률은 지난해 7.0명으로 조사됐다. 전년보다 0.1명 증가한 수치다. 2000년 이후 조사망률이 7명대를 넘어선 것은 2022년(7.3명)과 지난해 총 두 번이다.

◆의료 공백에 재정 3.3조원 투입

지난 1년간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3조3000억원 이상 재정이 투입됐다(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대부분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에서 끌어다 쓴 것으로 분석됐다. 의정 갈등이 심화한 지난해 5월부터 응급환자 신속 전원, 중증환자 신속 배정, 응급실 진찰료 지원, 추석 연휴 비상진료 지원 등 명목으로 매달 평균 1760억원이 지출됐다.

의료 수입이 급감한 수련병원의 경영난을 지원하기 위해 메르스나 코로나19 등 비상 상황에서만 이뤄졌던 국민건강보험 선지급(1조4844억원)도 실행됐다. 지난해 건강보험료 수지(보험료 수입-보험 급여비)는 11조3010억원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 중 의료 공백으로 인해 지출된 재정이 수지 적자의 25.6%를 차지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의대생 복귀할까

의대 증원 정책의 수혜를 입어 입학한 2025년 신입생들도 대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3월 말까지 의대생 전원 복귀를 조건으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3058명)으로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의대들도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집단 휴학을 옹호했던 의대 학장들이 직접 기숙사를 찾아가는 등 복귀를 독려했다. 연세대 의대를 시작으로 서울대와 고려대 의대 등 주요 대학 학장들은 미등록 휴학 신청 학생에 대한 제적 조치까지 시사했다. 대부분의 의대는 학칙에 따라 출석 일수의 4분의 1 이상 수업을 듣지 않으면 F학점 처리 및 유급된다. 출석 일수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시한이 바로 3월 말이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정부가 내건 조건부 수용이 협박처럼 해석된다”, “필수의료 패키지를 백지화하면 복귀를 고려할 생각인데 정부는 언급조차 없다” 등의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제안이 2026년도 정원에 한해서만 동결이란 점도 복귀를 할 수 없는 이유로 거론됐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입장문에서 “학생들이 안 돌아오면 5058명을 뽑겠다고 협박한 것”이라며 “24·25학번은 언젠가 동시에 임상과 실습을 해야 하는데 학교에 교육 여건이 마련돼 있느냐. 결국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름 백기를 든 정부 모습에 의대생 등이 복귀하지 않으면 의료계도 신뢰를 잃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각 의대 학장과 총장들이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2026년 의대 모집 인원을 원복 요구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한 만큼 미복귀 시 여론 악화의 책임이 의대생에게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와 대화에 나선 학장단을 비판했다. 그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후배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물려줘야 할 텐데 학장이라는 자는 오히려 정부 권력에 편승해 제자들을 시궁창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내부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올해 늘린 만큼 내년 의대 신입생을 줄이거나 아예 뽑지 말라는 강경 의견이 있는 반면 지역의사회원들을 중심으로 현실적인 협상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대한의사협회는 전공의 지지를 받은 강경파 김택우 회장이 지난 1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고 박단 위원장이 부회장 역할을 맡고 있다.


새 학기 수업을 시작한 서울의 한 대학 의대 강의실이 텅 비어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임형택 기자

◆2027년 정원 두고 다시 갈등?

이번에 합의점을 찾는다 해도 2027년도의 입학 정원을 두고 다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대 증원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고 2027년부터는 추계위원회를 통해 필요한 만큼 증원될 것”이라고 밝혔다(3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앞서 의대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2월 24일 이주호 부총리와의 간담회에서 2026학년도 모집인원 동결에 이어 2027년 이후의 의대 정원은 의료계와 합의해 구성하는 추계위에서 결정하자고 제시했다. 의대 운영 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의대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도 3월 5일 온라인 회의를 열고 이런 학장들 제안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추계위 출범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26학년도부터의 의대 정원을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의료인력 추계위에서 심의하도록 하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협은 추계위가 의대 정원에 대한 ‘심의’를 넘어 ‘의결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개정안은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추계위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을 최종 결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전공의 복귀는 첩첩산중

정부의 이번 조처에도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는 낮게 점쳐진다. 당초 전공의들은 복직 조건으로 7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필수의료패키지 및 의대증원 계획 백지화 △의사 수 추계 기구 설치 △전문의 채용 확대 △의료진의 법적 부담 완화 △수련환경 개선 △부당 명령 철회 △업무개시명령 폐지 등 내용이다. 이들 요구안을 정부가 ‘모두’ 수용해야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의정 갈등이 1년이 넘자 복귀 계획을 접은 전공의도 늘었다. 개원가에 취업하거나 해외 이직을 준비하며 새 진로를 찾은 것이다. 이들은 “돌아간 전공의들이 오히려 더 많이 욕을 먹고 있다”며 “정부는 모든 것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슴 졸이는 수험생

수험생과 학부모는 의대 모집인원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부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수험생들이 각종 정치적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내년 수험생 수는 2000년 들어 최대치로 예상된다. 황금돼지띠(2007년생)로 불리는 올해 고3 학생은 작년(2006년생)보다 10% 많은 45만 명이다. N수생 규모는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난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정부의 증원 계획 발표에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까지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의대 열풍’이 불면서다.

2026년 의대 정원이 증원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의대 합격선은 상승하고 N수생은 늘어날 수 있다. 상위권 대학 합격선도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초등학교, 중학교 단계부터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과 부모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의대 입시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서울에서 지방으로 자녀들을 내려보낸 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의대 정원이 사실상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입시 전략도 갈피를 잡기 힘들다.

앞서 지난해 정부는 지방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차원으로 지방 의대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렸다. 수시모집에서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60% 이상으로 확대했는데 이 전형은 의대가 있는 지역 내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다닌 수험생만 지원할 수 있다. 서울에서 지방 초·중학교로 전학하는 ‘지방 유학’ 수요가 급증한 배경이다.

증원 규모가 큰 충청권에 수요가 가장 많이 몰렸다. 지난해 충남에선 466명의 초등학생이 전학을 왔다(한국교육개발원). 1년 전 400명 정도의 학생이 학교를 떠났던 것과 대비된다.


서울 소재 재수학원 홍보 배너. 사진=한국경제신문 최혁 기자


김태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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