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라며 안으로 굽은 팔은 서로 봐주고 대 주고 몰아주고 밀어주다가, ‘니들이 남이야’라며 내리친 주먹으로 뺏고 끊고 잘라 내고 밀어낸다. 그러다 뭔가가 꼬인다. 꼬인 몸통이 드러날 즈음 누군가 죽는다. 죽은 자가 꼬리다. 몸통은 이제 다른 꼬리를 만들 것이다. 특정의 정치적 사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 두루 널린 한 단면을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 민음사
시인 정끝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입말 중 하나를 복기해본다.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이다.” 육남매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해주신 말이다. 특정 사안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최근 권력 수뇌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시인은 첫 산문집을 내며 아버지의 이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책에는 아버지 외에도 어머니, 어린 자녀들과 함께했던 시간 속 그의 상념이 녹아 있다. 어린 시절 팥칼국수를 만들던 날은 “잔칫날”이었다. 형제들과 조를 나눠 면을 반죽하고 끓이던 기억은 자신의 아이들이 자라 삐뚤빼뚤 한글을 쓰는 날로 이어진다. 시인은 말한다. “가족의 발견, 거기서 비롯되는 생활의 발견, 행복의 발견, 사랑의 발견이 시의 마음과 멀지 않다. (시는) 우리가 세상을 마주하고 들이마셨던 ‘그 누구’ 혹은 ‘그 무엇’의 영혼 속에 있는 지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