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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실무편람이 뭐길래


지난해 12월 3일 저녁,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 사태에 군조차 당황했습니다. 훈련이 아닌 실전에서 비상계엄을 경험한 현직 군인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긴급히 꾸려진 계엄사령부에서 가장 먼저 찾은 책은 '계엄실무편람'이었습니다. 계엄실무편람은 계엄 시행의 구체적인 매뉴얼입니다. 계엄법과 계엄 선포 사례, 계엄사령부의 역할, 질의응답, 해외 사례까지 총망라돼 있습니다.


12월 4일 새벽 1시,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통과되자, 권영환 당시 합참 계엄과장이 "계엄을 즉시 해제해야 한다"며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조언하면서 보여준 책도 이 편람이었습니다. (당시 박 사령관은 이처럼 원칙을 설명하는 권 과장에게 "일머리 없다"고 타박했습니다.)


[부승찬/더불어민주당 의원(12월 5일 국회 국방위)]
"이것(편람) 왜 만들어요? 이렇게 버려버리지 왜 만들어요? 답변해보세요."

내란 직후 열린 지난해 12월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이 흔들어 보였던 책도 이 편람이었습니다. 부 의원은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계엄실무편람의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계엄선포 절차 대폭 수정‥무엇이 바뀌었나 봤더니


그런데 MBC 취재 결과 계엄실무편람이 2023년 6월 대폭 수정된 점이 확인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실이 제공한 도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뀐 점이 보이시나요? 우선 합참의 역할이 사라졌습니다. 2021년에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면 합동참모본부에는 위기조치체계가 가동된다. 합참의 군사지휘본부는 계엄 선포를 위한 국방부의 검토내용을 확인한다"고 돼 있습니다. MBC가 확인한 2016년 편람에서도 합참의 역할이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바뀐 2023년 편람에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국방부(비상대책회의)는 계엄선포요건을 검토해 군사상 필요하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건의한다"고 돼 있습니다.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선포됩니다. 전시체제로 전환되는 시기에 작전을 수행하는 곳은 합참입니다.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곳도, 부대를 지휘하는 곳도 합참입니다. 그렇기에 합참이 우선 검토하게 해놓은 것일 텐데, 이를 삭제해버린 것입니다.

같은 도표에서 경찰청과 행정안전부의 역할도 사라졌습니다. 국가비상사태를 경찰청에서도 판단해 행정안전부를 거쳐 국무총리에게 건의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이 역시 사라진 것입니다. 결국 상황을 판단하고, 계엄 요건을 검토하는 유일한 기관은 국방부가 됐습니다.




총리 역할 축소‥NSC·국무회의도 형식 절차로


총리의 역할은 대폭 축소됐습니다. 2021년 도표에서는 총리가 국방부나 행정안전부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국가안전보장회의 NSC와 국무회의 심의가 열리는 것으로 표시돼 있지만, 바뀐 2023년 도표에서는 국방부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건의한다고 돼 있습니다. 대통령은 이후 NSC와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계엄 선포 건의가 대통령에게 도달하는 절차가 간소해졌고, NSC와 국무회의 심의는 사후적인 절차가 된 셈입니다. 군인권센터는 이에 대해 오늘 성명을 내고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끔 절차를 대폭 축소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비상계엄을 방송을 보고 알았다"는 군 서열 1위 김명수 합참의장의 말도,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에서 면담하다 계엄 계획을 알게됐다"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말도 편람을 보면 언뜻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합참에 물었습니다. "합참은 계엄을 수행하는 곳이지 검토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합참 역할이 삭제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계엄과가 있는 곳이자 계엄실무편람을 펴내는 곳은 합참인데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하고 포기한 셈입니다.

또 합참은 "개정 주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법규의 변경이 있거나 새로운 해석이 있을 때 3년~5년마다 개정한다"고 말했습니다. 계엄법은 2017년 개정이 마지막이고, 이후 개정된 적은 없습니다. 어떤 새로운 해석이 있었는지, 그 해석을 누가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TV 방송으로 계엄 선포? 통고 vs 통보


이뿐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계엄선포를 승인한 이후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통고'한다는 표현은 '통보'로 바뀌었습니다. 헌법과 계엄법은 모두 통고라는 용어를 씁니다. 무슨 차이냐고 하겠지만, 통고는 상대의 법적 행위가 기대될 때 쓸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더라도 국회에는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통고는 국회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것인지 묻는 절차입니다. 하지만 통보는 사실상 알림에 그치는 행위입니다. 군 법무관 출신인 김경호 변호사는 통고는 국회에 문서 형식으로 접수하는 것을 말하고, 통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TV에서 계엄을 선포한 행위와 같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상 큰 차이는 없다고 하는 전문가들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알린다는 본질은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람에 통보라고 써도 그 상위법인 계엄법과 헌법에는 통고라고 명확히 돼 있기 때문에 통고라는 형식 자체를 벗어날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법률상 큰 차이가 없더라도 한자어 사용에 민감한 군이 수십 년 동안 사용한 통고라는 용어를 통보로 바꾼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합참은 이에 대해 실무자의 오기, 단순 실수라고 말했습니다.

통고든 통보든 정부는 계엄 선포 승인 사실을 국회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무회의에는 절차적 흠결이 있었고, NSC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간소화되고 바뀐 계엄실무편람조차 12.3 비상계엄 당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실 제공



41년 만에 비공개‥왜?


계엄실무편람은 계엄 한 달 전인 11월 4일에 비공개 처리됐습니다. 계엄 업무와 관련된 31개 부대에 합참은 비공개 지시를 내렸습니다. 표지 맨 앞에 부대별 사본번호까지 매기고, 일과 이후 서류함에 잠금 보관하라며 보안에 극도로 유의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뀌기 전의 매뉴얼은 파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비공개 및 파기 조치는 계엄 닷새 전인 11월 28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전에도 계엄실무편람은 대중이 쉽게 볼 수 있는 문서는 아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기무사 계엄 문건 파문이 일었던 2018년, 당시 2016년 버전의 편람이 군인권센터를 통해 공개된 적은 있었습니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공개됐지만 비공개 문서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취재 결과 계엄실무편람이 비공개 처리되고 이전 버전 파기 지시가 내려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83년도부터 작성해왔으니 41년 만이었습니다.

합참은 내부 규정에 지난 2005년부터 비공개 문서로 관리해왔기 때문에, 지난해 바뀐 것은 단순히 표지에 '비공개' 표시를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비공개 문서였기 때문에 형식만 바꿨다는 뜻입니다. 비공개 문서로 지정되면 이전 버전은 파기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했습니다. 훈련에 혼선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군인권센터는 비공개 지시가 11월 4일에 내려간 점을 주목했습니다. 2023년 개정할 당시 비공개 처리하지 않은 편람을 돌연 계엄 선포에 임박해 비공개 처리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센터는 "12.3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문제점을 사전이나 사후에 인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애초에 계엄실무편람은 훈련 상황에서 군뿐 아니라 지자체나 부처도 공유하는 매뉴얼인 만큼 이를 비공개 처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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