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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특별연장근로 특례’ 발표 직후 잇단 비판
연구개발 인력들 “뭐 하러 이렇게 일하나” 격앙
생산 인력도 포함…“모두가 장시간 노동에 매몰”
“주52시간 제도를 시행한 이후 연구개발 성과가 줄어든 게 아닙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을 포기하고 인건비 위주의 재무 경영을 한 이후부터 경쟁력이 약화됐습니다.”

정부가 반도체 연구개발(R&D) 노동자들이 6개월간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제도 특례를 발표한 다음날인 13일 삼성전자 회사 홈페이지에는 직원들이 답답함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특례에 영향받는 삼성전자 연구개발 직군은 최소 2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의 직원들은 “삼성의 경영 실패를 왜 노동시간 제도를 바꾸면서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삼성전자 연구개발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A씨와 김영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K하이닉스기술사무직지회 부지회장을 인터뷰했다.

정부는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자, 아예 특례를 신설해 노동시간 상한을 풀었다. 정부 발표에 연구개발에 관련된 생산 인력이 ‘불가피시 포함’된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에도 기업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우려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다음주 초쯤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지침’을 공개할 예정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경기 성남시 판교 동진쎄미켐 R&D센터에서 열린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시간 개선 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은 지금도 ‘초과근로’ 천국”
“정부 발표는 기본 전제가 잘못돼 있어”

삼성전자 연구개발 직군에서 일하는 A씨는 12일 밤 11시 퇴근 후 13일 오전 6시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수면 시간은 4~5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는 초과근로 천국”이라며 “한 달에 초과근로 120시간 이상을 한 동료도 있다”고 했다. 그도 일하다 막차를 놓치면 회사에서 밤을 새운 적이 여러 번이다. “한 동료가 ‘저 죽을 것 같아요’라고 말해도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A씨는 정부 발표 이후 연구개발 인력들 사이에선 “뭐 하러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격앙된 분위기라고 했다. 노동부는 대한상공회의소 자료를 예시로 들어 “500여개 기업 대상 조사 결과 기업 연구 부서의 75.8%가 주 52시간제 시행 후 연구개발 성과가 줄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한 직원은 게시판에 “기술 기초 역량이 낮다면 교육 등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늘어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요? 역량이 뒤처져 있는데 근무시간만 갈아 넣는다고 성과가 나오는 건가요?”라고 적었다.

그는 “인력이 필요하면 더 뽑아서 일을 나누면 되는데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기본 전제가 잘못된 정책”이라고 했다. 2023년부터 지난해 10월 말까지 노동부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은 건수는 총 23건이었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가 22건, LX세미콘이 1건이었고 SK하이닉스는 0건이었다.

삼성전자 2024년 4분기 및 연간 실적을 발표한 1월 3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문재원 기자


그가 보기에도 현장에서 ‘몰아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있다. 그는 입사 이후 일을 몰아서 하는 ‘피크 타임’이 없었던 해는 없었다고 했다. 고객들은 설계도 변경을 요청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일정에 맞추다 보면 개발자들은 늘 과도하게 일정에 쫓기게 된다. 그럴 때 회사는 ‘일정을 단축하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더 뽑아야 해결되는 문제지만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부 직원들에게 특별연장근로에 관한 설명회를 진행하고 ‘동의서’를 받았다. 그는 “회사는 이미 정부에서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심이 든다”면서 “연구개발은 인적 투자를 하는 게 순리인데 경영진의 실패를 노동자들의 과로로 막아보겠다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SK하이닉스 노조 “삼성 경영진의 실패를
왜 노동자들 과로로 해결하려 하나요”

“그렇게 사람이 1년간 어떻게 삽니까.”

정부 발표대로라면 3개월간 주 64시간 일하고 또 3개월간 주 60시간 일한 뒤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김영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K하이닉스기술사무직지회 부지회장은 “오전 8시30분 출근해 밤 11시30분 퇴근하는 삶을 1년간 살라는 뜻”이라며 “많이 일한 대신 건강검진을 의무화해주겠다는 기만”이라고 했다. 김 부지회장은 정부 발표 전 논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했다. 실제 노동부 발표에 등장하는 ‘현장 목소리’에는 ‘기업’과 ‘경제단체’ 뿐이다.

그는 연구개발을 직접 지원하는 생산 인력이 포함된다는 것도 우려했다. 종합반도체 산업 업무는 서로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쪽에서 ‘크런치 모드’로 일하면 공정을 검증하는 쪽에도 달라붙어 있을 가능성이 커요. 또 장비 관련 외부업체들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모든 사람을 장시간 노동에 매몰되게 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요.”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는 가운데 딜링룸 디스플레이를 통해 외신이 SK하이닉스 실적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간 재계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도입하자고 요구해왔다. 미국에서 시행 중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연봉 1억5000만원이 넘는 고소득 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대신 성과를 보상하는 제도다. 김 부지회장은 “미국에서는 많이 일하고 나면 재택근무하는 등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고 노동자의 건강 기준도 엄격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다. 그는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제도 변화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회사 실적이 좋아서 삼성과 다르죠. 회사가 특별연장근로 연장을 요청하면 노조 대표자들 동의를 얻어야 할 텐데 아마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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