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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사회부장
지금 대한민국은 ‘실패한 계몽 군주’에 대한 단죄를 앞두고 있다. 계몽 군주란 표현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국민에게 반국가 종북세력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려던 것”이란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12·3 비상계엄 해명에서 따온 것이지만, 반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이란 평가도 담겼다. 문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단죄의 방식이다. ‘적법 절차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다.

내란 재판 시작 전 ‘적법 절차’ 논란
헌재 ‘최장기 숙의’ 선고일 못 정해
“가장 나쁜 결정은 시간만 끄는 것

우리 헌법 12조는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체포·구속·압수·수색·심문과 처벌·보안처분·강제노역 등 수사와 재판 전 과정을 포함한다. 적법 절차는 모든 국민이 언제나 동등하게 적용받아야 할 헌법의 대원칙이지만, 이번은 내란죄로 구속기소된 대통령이라서 더 주목받았다.

윤 대통령 내란죄 본안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 7일 7쪽짜리 구속취소 결정문에서 검찰의 1월 26일 구속기소는 10일간 구속기간 만료 이후에 이뤄져 구속은 적법하지 않아 석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에서 제외하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법원에 수사 서류를 보낸 기간(1월 17일 17시46분~1월 19일 2시53분)을 ‘날’(일수, 윤 대통령의 경우 3일)로 계산한 종전 해석을 뒤집고 정확한 시간(33시간7분)으로 산정해야 한다면서다. 날로 계산할 경우 구속기간이 늘어나는 불합리가 발생하며,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 제도로 인해 오히려 신체의 자유가 더 장기간 제약되는 모순이 생긴다는 게 이유다.

재판부는 검찰의 ‘구속기간 계산법’만 문제삼는 데 그치지 않고 애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죄 수사권에 대해서도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현행 공수처법이 윤 대통령 직권남용권리행사죄의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인지 절차 및 직접 관련성, 공수처와 검찰 간 구속기간의 배분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대법원의 최종적 해석과 판단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다. 결국 윤 대통령 형사재판을 시작도 하기 전에 1심 재판부가 윤 대통령 내란죄 수사와 기소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 하자가 있다고 본 셈이다.

다만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단죄는 형사소추 외에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라는 별도의 트랙으로도 진행되고 있다. 헌재 역시 당초 예상과 달리 지난달 25일 변론을 종결한 지 보름이 넘도록 평의를 열고 있다. 8명의 재판관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14일 기록을 깨고 최장기 숙의를 거듭했지만, 선고일도 정하지 못했다.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 탄핵 결정은 그만큼 엄중하다는 방증이다.

인류는 고대 민주주의 시절부터 수많은 결정 방식을 고안해 왔다. 하지만 단순 양자택일이 아니라 3개 이상 선택지가 있을 경우, 모두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투표 방식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케네스 애로의 ‘불가능성의 정리’). 개인마다 욕망하는 대안의 선호 순서가 다르고, 서로 순환하기 때문에 어떤 투표 방식으로도 집단이 만족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을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당수는 자신과 집단에 해로운 비합리적 결정도 서슴지 않는다는 게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탄핵심판도 윤 대통령 파면 여부라는 단순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4개월간 끌어 온 국가적 불확실성의 해소, 두 달 뒤 조기 대선 실시란 선택지와 결부돼 있다. 헌법이 이 무거운 결정을 일반 국민투표가 아니라 평생 법관 경력을 가진 현자들에게 맡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결정은 아무 결정도 하지 않고 시간만 끄는 일이다. 결론에 앞서 선고 기일부터 먼저 지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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