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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채워 끌고 가는 것은 국격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여러분~.” 국민의힘 깃발 아래 정치인들이 이런 말을 할 때,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멧돼지는 ‘국격’이라고 씌어진 나무를 향해 돌진해 나무를 송두리째 부숴버린다.

1995년 경향신문에 4컷 만화 ‘장도리’ 연재를 시작한 이후 30년 동안 시사·풍자만화를 그려온 박순찬 작가가 카툰집 <내란본색>(비아북)을 냈다. 2021년 경향신문을 떠난 뒤로도 블로그와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만평과 극화를 연재해온 작가에게 출간이 유난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윤석열 시대’는 시사만화가에게 숨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이번 책은 <도리도리> <용산대형>에 이어 윤 대통령이 주인공인 그의 세번째 카툰집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만 3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해마다 한 권씩, 책을 통해 ‘윤석열 시대’를 기록해 온 셈이다.

최근 카툰집 <내란본색>을 출간한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이 1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계엄·내란 사태 등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3.11 /서성일 선임기자


만화에서 윤 대통령은 멧돼지의 얼굴로 자주 등장한다. “거부”를 쉴 새 없이 외치는 목발 짚은 오리, 물이 끓고 있는 솥 안에서 검사들과 술잔을 주고받는 개구리 등 다른 동물로도 변신한다.

쥐나 닭에 비유되곤 했던 전직 대통령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박 작가는 1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지 외모가 비슷하다거나 동물 이름과 유사한 발음이라고 해서 사람을 동물로 그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권력자의 정치적 행태가 특정 동물의 속성을 보여준다면 그때는 동물로 그리게 된다”며 “멧돼지 비유는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나 게시판이나 댓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대중들의 정서나 감정이 담겨 있다”고 했다. 여기저기 들이받는 좌충우돌 성향, 시도 때도 없이 민가에 쳐들어와서 사람이나 가축을 괴롭히는 행태 등 멧돼지의 이미지에는 대통령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 내지는 평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는 115년 전 경술국치 전후 신문에서도 기사만 봐서는 알기 어려운 민중들의 울분, 통한, 슬픔 같은 감정이 그때 그려졌던 삽화를 보면 느껴진다고 했다.





등장인물은 주로 여권 정치인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몸통이 물고기로 자주 그려진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OOO”을 외치는 ‘권성돔’이라는 캐릭터로 자주 그려진다. 보수진영 차기 대선후보로 오르내리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몸통이 순대다. 경기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를 걸어 관등성명을 요구한 ‘김문순대’ 사건이 배경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턱은 항상 위로 치켜세워져 있고 셀카를 찍기 위해 팔 근육 단련까지 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항상 입을 삐쭉 내민 가방 맨 초등학생으로 표현되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얼굴엔 여드름 자국이 빠지지 않는다.



말이나 글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없이 캐릭터에 전형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정치 고관여층’이 아니면 단박에 알아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는 “풍자라는 게 아주 대중성을 갖기 힘들긴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는 대중들의 정치적 관심이 계속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제 식민지부터 이후 남북대치 상황이 계속됐고 사회 내 각종 모순이 깊어지는 등 갈등이 그만큼 계속돼 왔던 사회여서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라고 했다.

신간 제목에는 ‘내란’이 들어간다. 작가는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최근 대통령 석방까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굉장히 큰 사건들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게 IMF 외환위기·구제금융 사태인데, 그 전까지 어떤 기관인지 알 필요도 없던 IMF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전 국민이 알게 되고 일종의 경제학 박사들이 돼 버렸습니다. 비상계엄은 물론 검사에서 내란 우두머리가 되기까지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이제 헌법과 법률, 검찰개혁 전문가들이 돼 가고 있습니다. 법 전문가라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에 의해 벌어진 일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법조엘리트의 존재란 무엇인가, 또 그 뿌리는 뭐냐 이런 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됐다고 봅니다.”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 그런 법조엘리트들이 착각 속에서 벌인 시대착오적인 일”이 이번 내란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를 예견한 듯한 만평에서는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난해 8월20일 작품인 ‘반국가 세력과의 전쟁’ 만평에서 윤 대통령은 군복을 입은 채 탄띠를 두르고 주먹을 앞세우며 “반국가세력과의 전쟁이다”를 외치고 있다(171쪽). 반국가세력 운운하던 당시 8·15 경축사와 그 무렵의 발언들은 돌이켜보니 계엄 선포를 위한 ‘빌드업’ 과정이었다. 30년 경력의 시사만화 작가는 그 발언에서 곧바로 ‘군 사령관 윤석열’을 떠올렸으리라. 이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려던 대통령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코앞에 두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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