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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상속세 부과 방식을 ‘금액’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기로 했다. 물려준 유산 총액에 매기던 것에서 각 상속인이 받은 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75년간 이어온 과세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상속세 부담은 대체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상속세 부과 대상 중 실제 상속세를 내는 비중도 절반으로 줄고, 전체 상속세수 또한 연간 2조원 정도 감소한다.
정정훈(가운데)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12일 유산취득세 도입을 골자로 한 상속세 과세 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현행 상속세는 상속받는 사람이 몇 명이든 사망자의 전체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과세 금액을 결정하는 유산세 방식이다. 자녀 1명이 10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은 가구와 자녀 5명이 50억원을 10억원씩 나눠 받는 가구가 있다면 후자가 훨씬 많은 상속세를 내는 구조다.

개편안의 핵심은 유산을 받는 사람에게 각각 세금을 매기는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세금도 받은 만큼만 내는 게 형평에 맞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으로 상속세를 내는 사람이 급증한 현실도 반영했다. 2000년 0.48%였던 국세 수입 중 상속세수 비중은 2023년 2.48%로 약 5배로 증가했다. 국제적 흐름에 맞춘 측면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를 내는 나라는 24개국이다. 이중 한국·미국∙영국∙덴마크 4개국만 유산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박경민 기자
물려받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만큼 기존에 적용하던 공제 방식도 손 본다. 그간 공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일괄공제는 폐지한다. 대신 인적공제를 확대한다. 눈에 띄는 건 자녀 공제를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다. 현재 상속세는 ▶기초공제(2억원)와 자녀 공제 등을 합한 금액 ▶일괄공제(5억원) 둘 중 큰 금액을 공제한다. 자녀가 무려 6명이어야 일괄공제와 금액이 같아진다. 사실상 자녀 공제의 실효성이 없었다는 의미다.

자녀 공제 5억원은 기존 일괄공제 한도와 같다. 자녀가 2명만 돼도 공제 한도가 두 배로 늘고, 자녀가 많을수록 상속세를 더욱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배우자 공제는 최대한도(30억원)는 그대로 두고 미세 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금은 유산을 자녀가 받아도 배우자가 생존해 있으면 배우자 최소공제(5억원)를 적용하는데 일단 이는 폐지한다. 대신 배우자가 상속을 받는 경우 10억원까지는 전액 공제하기로 했다. 10억원을 초과분은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상속받은 경우에 최대 30억원까지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신재민 기자
자녀 공제와 배우자 공제 개편안만 반영해도 상당한 절세 효과가 있다. 상속재산이 20억원, 자녀 둘과 배우자가 있는 경우 법정 상속비율(배우자 1.5 : 자녀 1)대로 물려받으면 배우자 공제와 일괄공제를 제외한 6억4286억원이 과세표준이다. 대략 1억3000만원가량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개편안을 적용하면 배우자공제 10억원, 자녀 공제 각각 5억원씩으로 과세표준이 0원이 된다. 당연히 내야 할 세금도 없다.

제도 개편에 따른 공제 공백을 메워주는 장치도 마련했다. 현재 배우자와 자녀 1명이 있을 때, 배우자 공제와 일괄 공제를 합해 10억원까지는 공제를 받는다. 개편안에 따르면 이에 못 미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만약 10억원을 배우자가 3억원, 자녀가 7억원 상속받는 경우 배우자 공제는 3억원, 자녀 공제는 5억원이 한도다. 합해도 8억원만 공제받는 셈이다. 현재 10억원이 최소한의 면세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이런 경우 10억원까지는 추가 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사전증여재산 규정도 손 본다. 현행 규정은 사망일로부터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은 상속재산에 합산하게 돼 있다. 그런데 기부처럼 제삼자에 한 증여도 포함하는 게 문제였다. 받지도 않은 재산에 상속인이 세금을 내야 했다는 뜻이다. 받은 만큼만 내는 유산취득세 도입에 따라 앞으로 제삼자 증여분은 과세하지 않는다.

정부가 일단 아껴뒀던 유산취득세 카드를 꺼냈지만 그대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들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상속세 개편 논의가 활발한데 사안별로 이견이 적지 않다. 배우자 공제만 해도 정부안은 미세 조정이지만 여야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공감하고 있다. 이혼하며 재산을 분할할 땐 경제공동체로 봐서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데, 상속세를 배우자에게 내라고 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시각이다.

그런데 배우자 상속세만 폐지하면 세대 이전을 회피하려는 수요만 자극할 수 있다. 일단 세금을 피하려 배우자가 받은 뒤 차차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다. 결국 자녀 공제 한도 상향과 함께 가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 공제를 5억원으로 높이는 건 정부가 지난해 세법 개정안에도 담았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 개편안에 최고세율 인하(50%→40%)는 포함되지 않았다.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 합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최고세율 인하는 별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상속세 대상이 된 ‘중산층’의 세 부담을 완화해줄 수 있을 거란 게 많은 전문가의 평가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재산 10억~20억원 구간에 들어가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상속받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 세금을 매기는 것도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세제 개편으로 인한 세수 감소는 부담 요인이다. 기재부는 개편안으로 인해 연평균 2조원가량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6.8% 수준인 상속세 과세자 비율도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오는 5월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2028년부터 유산취득세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배정식 법무법인 화우 자산관리센터 전무는 “상속과 증여를 동일한 방식으로 과세하는 건 맞는 방향이지만 상속인별로 각자 신고를 하게 되면서 행정 수요가 급증할 거란 점은 우려된다"며 “연대납세의무를 기존과 어떻게 다르게 적용하느냐 등 실전에선 꽤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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