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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중에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도 계시다. 스트레스가 심각해 완치됐던 암이 재발한 사례도 있다. 매달 내야 할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지식산업센터 사기분양 전국 비상대책위원회 이용재 부위원장이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원수에게 추천하라”고 알려진 몇 가지 상품이 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고위험 투자처는 “저렴하게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며 조합원을 모집하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에서,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며 점차 “은행 이자보다 나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분양 상가, 분양형 호텔 등 일명 ‘수익형 부동산’으로 옮아갔다.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가 정점에 달했던 2020~2021년에 대거 분양했던 지식산업센터의 문제가 심각하다. 한때 서울, 수도권은 물론 전국에서 분양이 성황을 이뤘던 만큼 피해자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 단지의 입주 시기가 다가오며 투자자 다수는 거품이 빠진 ‘공실 투성이’에 직면한 상태다.

지식산업센터114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건축허가를 받은 전국 지식산업센터 수는 315곳으로 단지당 100호실 규모만 돼도 3만 호실이 넘는다. 이에 따라 피해 수분양자가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중장년층이나 은퇴자들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피해자 연령층도 20대 초반부터 70~8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일각에선 “그저 웃돈을 받으려던 투기 세력들이 손실을 입은 것뿐”이라며 비난하는 여론도 높지만, 현실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례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식산업센터도 불완전 판매, 또는 사기분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저 오피스텔인 줄 알고 계약서에 사인을 한 수분양자들은 심각한 자금 압박과 심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에 합리적인 가격에 사업장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허가됐던 지식산업센터가 임대사업장으로 변질됐지만 정부도 정치권도 함부로 손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가 꺾인 상태에서 창업시장까지 얼어붙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000호실 공급 폭탄에 임대료↓
서울 금천구 소재 대형 지식산업센터 단지 '가산 퍼블릭' 전경. 사진=이승재 기자

2월 말 찾은 가산디지털단지는 점심시간이 지나 대체로 한산했다. 1호선, 7호선 더블역세권인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에는 롯데펙토리아울렛 등 기성복 할인매장과 ‘대륭포스트타워6차’같이 준공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식산업센터, 그리고 신축 지식산업센터 및 오피스 빌딩이 뒤섞여 있었다.

1만에 육박한다는 입주기업 수가 무색하게 가산디지털단지 역세권 지식산업센터 내부에는 군데군데 공실이 눈에 띄었다. 넓은 주차공간과 휴게시설을 갖춘 대형 지식산업센터가 속속 입주하면서 ‘고객’을 뺏겼기 때문이다.

최근 가산디지털단지 수요를 빨아들인 장본인은 2023년 12월 준공된 ‘가산 퍼블릭’이다. 옛 삼성물산 물류센터 부지에 조성된 서울 최대 규모 지식산업센터 가산 퍼블릭은 대지면적 3만180㎡(약 9130평), 연면적 25만8868㎡(약 7만8000평)에 업무시설 1183호실이 2개동, 기숙사 1개동(567호실)과 상업시설인 퍼블릭몰로 구성됐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입주 1년여를 넘긴 가산퍼블릭 내 오피스 공실은 20~30%로 추정된다. 그나마 수분양자들이 임대료를 많이 내려 사무실이 차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임대료는 3.3㎡당 2만5000원에서 3만원 수준이다. 공실이 오래됐거나 지하철과 거리가 먼 호실 임대료는 이보다 저렴하다. 대출 비중이 80%까지 높은 지식산업센터 특성상 임대인이 은행 이자를 내기도 버거운 형편이다.

'가산 퍼블릭' 인근 한 지식산업센터 내 사무실이 공실인 채 닫혀 있는 모습. 사진=민보름 기자

해당 단지는 2019년 3.3㎡당 1000만원가량에 분양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당시에는 웃돈도 붙었다. 지금은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보다 가격이 더 떨어진 상태)조차 의미가 없는 상태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많이 낮춘 결과 가산 내에서는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임차 수요가 퍼블릭으로 이동했다”며 “매매는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산 퍼블릭 물량으로 인해 주변 경쟁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 빌딩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기존 임차인이 없는 신규 입주 단지들은 고전하는 중이다. 길 건너편 ‘아스크타워’는 지난해 8월 준공한 상태로 여전히 공실률이 절반을 넘는다. 일부 층에선 복도 한쪽 면 전체가 공실인 경우도 있다. 올여름 입주를 앞두고 한창 공사 중인 ‘가산3차 SK V1’도 미분양이 난 상태다. 서울은 공실이 적다고 하지만 그만큼 공급 가격이 높다는 점에서 수분양자들의 자금 부담은 더 크다는 분석이다.
성수가 기침하면 남양주는 ‘몸살’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대형 지식산업센터 인근에 새로운 지식산업센터가 공사 중인 모습. 사진=이승재 기자

성수동은 이보다 상황이 낫다. 가산 퍼블릭 같은 대형 지식산업센터 공실은 거의 ‘제로’ 상태다.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뜬 데다 강남 등 서울 주요 업무지구 접근성이 좋아 오피스 수요가 많다. 기업들 입장에선 ‘성수동’이라는 지역 이미지가 회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사원들의 선호도 또한 높아 최근 이 지역 입주 수요가 늘고 있다. 성수동 일대 공인중개사무소에선 지식산업센터와 꼬마빌딩 등 지역 내 부동산에 대해 상대적 ‘안전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상상부동산공인중개사 오흥춘 이사는 “얼마 전 남양주 다산신도시 지식산업센터에 있던 기업도 성수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며 “아무래도 기존 사무실이 있던 단지에 공실이 너무 많아 거래처 손님들을 맞을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무장길로 뜬 성수동2가에는 2020년 ‘생각공장데시앙플렉스’, ‘성수SK V1 센터’가 나란히 지어졌다. 뚝섬역 인근에는 성수AK밸리가 입주했다. 이들 단지는 부동산 상승기 초입에 3.3㎡당 1000만원대에 분양했으나 최고 3000만원까지 시세가 올랐다. 최근 전반적인 수익형 부동산의 인기가 꺾이면서 성수동 일대 지식산업센터 매매 호가도 3.3㎡당 2500만원 내외로 조정됐다.

생각공장데시앙플렉스는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진행 중인 태영건설이 본격적으로 성수동 일대에 오피스 사업을 다수 추진하도록 했던 성공사례다. 저금리 시대에 각광 받았던 비(非)주택 사업을 확대했던 태영건설은 기준금리 인상 후 성수동 지식산업센터의 브리지론 리파이낸싱에 실패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여대생까지 마구잡이 영업
경기도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지식산업센터 분양 및 거래를 홍보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승재 기자

지식산업센터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애물단지’였던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지식산업센터가 우후죽순 공급된 데는 이처럼 성수동, 가산동, 문정동을 비롯해 서울을 중심으로 투자 성공사례가 부각됐던 배경이 있었다. “초기 투자자들만 돈을 벌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물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지금은 대부분 공실인 광명 KTX 역세권의 한 지식산업센터도 분양 당시에는 계약이 완료되며 웃돈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지식산업센터 공급이 쏟아지면서 일부 시행사나 분양대행사는 사업계획서 등을 생략하고 아무나 계약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입주가 다가올 시점에 수분양자들로 하여금 입주 가능 업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게 하는 방법으로 잔금을 받았다. 수분양자들은 이미 중도금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잔금을 낼 때가 돼서야 지식산업센터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지식산업센터는 중소, 벤처기업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장이나 사무실을 분양받게 한다는 취지에서 허가를 받는다. 즉 본래 취지에 따르면 사업자가 아닌 일반인이 임대목적으로 지식산업센터를 분양받아서는 안 된다. 이용재 부위원장은 “분양 사무실에서 서류를 내밀며 사업자등록을 하라기에 거부했더니 분양 받은 호실을 압류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단지는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에 분양홍보관을 차리고선 길거리 호객 행위를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영업을 하기도 했다. 경기 북부 소재 한 지식산업센터를 분양받은 A 씨도 성남시 분당 야탑역 인근에서 영업을 당했다.

A 씨는 “처음에 일반적인 임대상품으로 알았고 분양홍보관에서 나중에 대출이 90% 나온다는 말을 듣고 계약했다”며 “그런데 지난해 6월 잔금 대출을 받으러 간 사무실에 나온 은행 직원들에게서 그냥 임대사업자로는 대출이 안 되고 그나마 잔금 대출도 50%밖에 안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최근 지식산업센터 문제가 불거지고 연체율이 높아지자 관련 대출 한도를 대폭 줄였다.

A 씨는 약 2억8000만원짜리 지식산업센터를 계약해 분양대금의 10%인 2800만원가량을 계약금으로 내고 중도금 1억4000만원을 대출받아 납부했다. 현재는 잔금 대출 실행 및 잔금 납부를 거부하고 분양 취소 소송을 제기 중인 상태에서 중도금 대출 상환, 이자 납부에 대한 독촉장을 받고 있다.

A 씨는 “피해자 중에서는 20대 초반 여성들도 있는데 부모님께도 알리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며 “계약금과 이자비용을 포기할 테니 분양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해도 시행사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자도 못 갚는 ‘애물단지’ 경매로
이렇게 경기도 신도시와 지방 산업단지에 공급된 지식산업센터는 공실이 태반이다. 손동숙 고양시의원이 공개한 2023~2024년 입주를 시작한 고양특례시 지식산업센터 입주율은 지난해 말 기준 5~47%에 불과하다. 전체 호실의 절반을 채운 지식산업센터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고양시에선 알레르망이 본사를 서울 강남으로, 의료기기 제조업체 에이스메디칼이 서울 고덕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남양주, 구리, 부천, 하남 미사 등에도 절반 이상이 공실인 지식산업센터 단지들이 다수이다. 단지 내에 근로자가 없으니 상가 역시 공실이다. 남양주에선 공실이 심각한 지식산업센터 내 상가주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공실이 심한데도 관리업체가 관리비를 높게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지는 공실에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한 수분양자들의 삶은 파괴되고 있다.

공급에 비해 ‘엔드유저(End User)’인 입주기업은 한정적이다. 경기 불황에 외려 창업자 수는 줄고 있다. 자금조달이 어려운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식산업센터의 주 고객인 정보통신업, 과학기술 서비스업 창업 기업 수는 2022년을 기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결국 관리비는커녕 은행 이자도 내기 힘든 임대인들은 담보대출을 연체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식산업센터 대출 연체율은 2020년 0.09%에서 2023년 말 0.20%로 급등했다.


그러면서 지식산업센터는 속속 경매법원에 등장하고 있다. 지지옥션 집계 결과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매각 건수는 매년 늘어 지난해 드디어 1000건을 돌파한 1370건을 기록했다. 낙찰률은 28.20%에 불과해 경매 물건은 계속 쌓이는 중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수석연구원은 “지식산업센터는 주택과 달리 대출규제가 없다는 점 때문에 주목 받았지만 결국 입주 시점에는 잔금 납부를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입주 후에도 공실이 지속되거나 임대료가 턱없이 낮아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경매에 나오는 물건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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