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권도현 기자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종결한 뒤 매일 수시로 평의를 열고 있다. 최종 결정 전까지 재판관들이 치열하게 의견을 정리하는 자리인 만큼 관심이 집중된다. 중요 사안들이 논의되기 때문에 평의 절차와 내용은 극비에 부쳐진다. 전직 재판관들의 회고를 바탕으로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는 헌재 평의를 엿보았다.
평의가 열리는 날 재판관들은 평의실 책상에 둘러앉아 안건을 논의한다고 한다. 1기 헌재 재판부 때는 직사각형 책상이었으나 2기부터는 원탁으로 바뀌었다. 평의실에는 재판관을 제외하면 헌법연구관을 포함해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도·감청 방지 장치도 설치된다. 평의 도중 서류 등을 가져와야 하는 일이 생기면 평의를 중단하고 재판관이 직접 가져온다. 전직 헌법연구관은 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평의가 끝나고 연구관에게 추가 연구 지시가 내려지면 ‘이런 부분이 논의됐나 보다’라고 짐작은 할 수 있지만, 평의 과정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평의는 주심 재판관의 ‘쟁점 보고’로 시작한다. 주심이 쟁점에 대한 의견을 말한 뒤 재판관들이 무작위로 질문을 던지면 토론이 펼쳐진다. 의견을 주고받다 고성이 오가거나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일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용준 전 헌재소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처음에 왔을 땐 회의가 너무 산만했다”면서도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토론하는 가운데 1~2개 결론으로 압축해내니까 ‘아, 이게 민주주의구나’ 깨달았다”고 밝혔다.
평의가 여러 차례 열리는 동안 연구관들은 재판부가 요구하는 논점과 해외 입법례 등을 살펴본다. 윤 대통령 사건에는 10여명의 연구관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투입됐다. 재판부 의견이 어느 정도 모이면 연구관들은 인용과 기각으로 나눠 결정문 초안 작성을 돕는다. 평의가 진행될 때마다 초안은 꾸준히 보완된다. 연구관들은 매일 밤샘 작업을 하며 결정에 필요한 법리 등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식 전 재판관은 회고록에서 “재판관끼리 싸우는 대신 ‘연구를 더 시키자’고 하기도 해 연구관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 파면 여부는 최종평의에서 표결을 통해 결론 난다. 표결 전에는 가장 늦게 취임한 재판관부터 차례대로 자신의 ‘인용·기각’ 등 의견을 간략히 설명한다.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토론을 진행한다. 표결 때까지도 의견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으면 ‘소수의견’이 나오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참여했던 한 재판관은 “만장일치가 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 견해를 따로 표명하고 싶다’는 재판관이 나오면 보충의견을 적게 된다”고 말했다. 표결 결과에 따라 앞서 작성되고 있던 ‘인용’ 또는 ‘기각’ 결정문 중 하나가 채택되고, 재판관들의 소수·보충 의견을 추가한 뒤 최종 완성본이 나온다.
평의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헌재는 결정 선고일을 공지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헌재는 변론 종결 후 8차례 평의를 연 뒤 선고일을 알렸고, 이후에도 3차례 평의를 더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 때는 6차 평의에서 선고일을 지정하고, 이후 2차례 평의를 더 열어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 이후 6일까지 6차례 평의를 진행했다. 재판관들은 지난 3·1절 연휴에도 사건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