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타깃은 누구?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는 동안 J D 밴스 부통령과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왼쪽부터)이 박수를 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AP연합뉴스
TSMC 1천억달러 투자 발표
“관세정책 덕분” 자화자찬
폐지 땐 삼성·SK 보조금 위태
‘정부·기업 계약 유효’ 분석도
전문가 “일방적 철회 어려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반도체법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에 따른 보조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발언의 속내는 한국 기업들에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 초당적 지지를 받아 제정됐다.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과 연구·개발(R&D)에 5년간 총 527억달러를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반도체 보조금은 너무 나쁘다”며 보조금을 지급할 게 아니라 관세 부과를 통해 미국에 생산시설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취임 이후에는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전날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의 미국 내 1000억달러 추가 투자를 두고도 “관세정책 덕분”이라고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첨단 파운드리 공장 건설 등에 370억달러를 투자하고, 47억45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미 상무부와 계약했다. SK하이닉스가 38억7000만달러를 들여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하고 확정된 보조금은 4억5800만달러다. 삼성전자는 일부 시설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삽을 뜨지 않았다.
반도체법을 폐지하기 위해선 의회의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법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합의하에 나온 법인데, 대통령이 ‘반도체법 폐지하고 부채나 줄이자’고 한다 해서 말대로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하는 지역 중에는 공화당 텃밭인 곳도 있다”고 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법이 상하 양원의 공론을 결집한 법이고, 상무장관도 최대한 법안 취지를 살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보다 많은 투자를 요구하는 차원에서 폐지를 언급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 폐지를 언급한 데는 TSMC의 추가 투자 발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고 했다.
설령 반도체법이 폐지되더라도 정부와 기업 간 계약은 유효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계약 파기는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발생시키는 일이라서 보조금을 일방적으로 철회하는 사태로 전개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