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 쇼핑 거리. 연합뉴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1% 남짓 늘어 약 3만6600달러를 기록했다. 2년 연속 일본과 대만에 앞서면서 주요국 중 6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갈수록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원화가치 하락세가 겹치면서 11년째 3만 달러대에 머물렀다는 점은 한계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6624달러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4995만5000원으로 1년 전보다 5.7% 늘었다.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 증가율이 훨씬 낮은 이유는 지난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4.3% 낮아져서다(환율 상승). 1인당 GNI는 국내총생산(GDP)에 국민의 해외 소득을 더하고 외국인의 국내 소득을 뺀 값을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해 달러로도 환산해 표시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1인당 GNI는 2014년(3만798달러) 처음 3만 달러에 진입한 뒤 꾸준히 늘어 2021년 3만7898달러로 고점을 찍었다. 2022년 급격한 원화 절하에 3만5000달러대로 주저앉았다가 2년 연속 반등했지만, 여전히 3만6000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다만 한국의 1인당 GNI는 2년 연속 일본과 대만을 제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창구 한은 국민소득부장은 “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1인당 GNI는 3만5188달러이고, 일본의 경우 공개된 전체 GNI에 환율ㆍ인구수를 넣어 계산해보니 3만4500달러를 조금 상회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한국은 인구 5000만 명 이상 주요국 중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6위 수준이다.
한국이 일본을 앞선 건 2023년이 처음이다. 대만은 2022년 기준으로 20년 만에 역전당했다가 이듬해 재역전했다. 이번에 일본을 앞지른 데는 원화보다 엔화가치가 더 많이 하락(달러 대비)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ㆍ일본ㆍ대만 통화(원ㆍ엔ㆍ대만달러)의 지난해 절하율(가치하락률)은 각 4.3%, 7.4%, 3.0%다.
1인당 GNI 4만 달러 달성 시점을 좌우할 핵심 변수도 현재로썬 환율이다. 강 부장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1인당 GNI가) 2027년 4만10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이후 환율 변동성이 커진 사실 등을 고려하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이현영 지출국민소득팀장(왼쪽부터), 강창구 국민소득부장, 박창현 국민소득총괄팀장, 김건 국민소득총괄팀 과장이 참석한 가운데 2024년 4/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문제는 앞으로다. 기존의 산업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수출 주도의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최근 미국발 ‘관세 전쟁’ 등 통상 환경마저 악화하고 있다. 저출생ㆍ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는데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동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이런 점 때문에 한은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1.5%, 1.8%로 전망했다. 한은이 추산한 2025~2029년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1.8% 수준이다. 지난 4일 씨티그룹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4%에서 1.2%로 수정했다. 교착 상태에 빠진 국내 정치와 미국의 무역정책 불확실성, 제한적인 재정 부양책 등을 성장 하방 요인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4만 달러 달성 시점보다 그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이 잘 살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등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며 “한국 경제가 강해져야 원화가치 하락도 막을 수 있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했을 때 실질적인 국민의 생활 수준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