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디 멜빌' 서울 성수동 국내 첫 매장
S사이즈만 판매하는 '원 사이즈 마케팅'
"체형 강박 주입" VS "소비자 선택권"
S사이즈만 판매하는 '원 사이즈 마케팅'
"체형 강박 주입" VS "소비자 선택권"
지난 18일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의류 브랜드 브랜디 멜빌 매장의 모습. 김민지 인턴기자
"스몰(S) 사이즈만 판다고 해서 몸에 맞는지 궁금해서 와 봤어요."
지난달 18일 서울 성수동의 '브랜디 멜빌' 매장 앞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22)씨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이탈리아 여성복 브랜드인 '브랜디 멜빌'은 일부 제품을 제외하곤 하나의 사이즈만 판매한다. 마른 체형의 여성을 위한 엑스트라 스몰(XS), S 사이즈만 있다. 지난 1월 3일 국내에 첫 매장이 생긴 후 반응은 폭발적이다. 평일인 이날도 매장은 10~20대 여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S 사이즈만 파는 '브랜디 멜빌' 국내 첫 매장
브랜디 멜빌의 제품을 착용한 블랙핑크의 로제와 제니의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브랜디 멜빌은 기존 패션 마케팅 전략을 뒤집는다. 고객의 체형에 맞는 옷을 파는 게 아니라 옷에 고객의 체형을 맞추는 전략을 취한다. 'one size fits most'(대부분에 맞는 원 사이즈)'를 주장하지만,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브랜디 멜빌은 '날씬한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브랜드' 혹은 '44사이즈 브랜드'로 불린다.
'원 사이즈' 전략은 시장에서 통했다. 200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첫 미국 매장을 연 뒤 10여 년 만에 전 세계 100여 곳으로 확대했다. 특히 2만~6만 원대의 가격대에 하이틴 영화 여주인공이 입을 법한 빈티지한 감성의 디자인을 선보여 젠지(Gen-Z·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한때 미국에서는 10대들이 브랜디 멜빌 옷을 입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브랜디 멜빌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블랙핑크의 제니, 로제 등이 착용해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날 매장을 찾은 20대 여성 김모씨는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 제품이 많아 사이즈만 맞으면 사고 싶다"며 "이 브랜드의 옷을 입으려면 S 사이즈 체형이 예쁠 것 같다"고 말했다.
원 사이즈 전략이 젊은 층의 구매 방식을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허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매장에서 점원이 구매를 강요하거나, 감시당하는 느낌을 꺼려 하는 점을 간파했다"며 "원 사이즈이기 때문에 사이즈를 찾아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날씬함' 강요 우려도
식욕억제제의 부작용과 오남용 실태를 추적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SBS 캡처
문제는 원 사이즈 전략이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강요하며 체형 강박을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특히 주 소비층인 10~20대 여성들에게 '예쁜 옷을 입으려면 살을 빼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정연보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원 사이즈 마케팅은 특정한 몸을 표준 혹은 이상적이라고 규정하고, 그 외의 다양한 체형을 배제하고 혐오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며 "패션을 통해 다양한 몸이나 정체성을 긍정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브랜디 멜빌 인스타그램 캡처.
소비자 반응도 엇갈린다. 매장에서 만난 이원영(27)씨는 "원 사이즈는 평균이나 마른 체형이 아닌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폭력적인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하지민(22)씨도 "소녀들의 우상이 되는 패션 브랜드가 원 사이즈 마케팅만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반면 남궁린(23)씨는 "브랜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양한 사이즈가 있는 다른 브랜드에서 옷을 사면 된다"며 "소비자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예지(23)씨도 "상업적인 브랜드가 공익성을 따져 모든 사이즈를 제작할 의무는 없다"며 "큰 옷만 파는 브랜드가 있듯 원 사이즈 마케팅은 특정 브랜드의 판매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