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 있는 슈퍼휴먼센터에서 만난 바실(48). 2023년 6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대반격 전투에 참여했던 그는 같은해 10월 드론 공격을 받고 두 다리와 손가락을 잃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email protected]
2023년 6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대반격 전투에 참여했던 바실(48)은 같은해 10월 자포리자 전투에서 러시아의 드론 공격으로 두 다리와 손가락을 잃었다. 우크라이나 군의 대반격 작전의 주요 통로였던 자포리자 로보티네 지역에서 싸웠던 그는 부상을 당하기 전 이미 5명의 동료를 잃은 상태였다. 바실은 “6개월 가량 복무했지만,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바실은 현재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 있는 부상자 전문 재활센터인 ‘슈퍼휴먼센터’에서 의수를 제공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평화 협상은 한치 앞 전망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비비시(BBC)는 바실처럼 사지를 잃은 군인과 민간인 수는 적어도 5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리 등을 절단하는 치료를 하는 것은 전장에서 대피 및 환자 후송이 지연된 탓이기도 하다. 포격을 피해 부상병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바실 또한 부상 직후 밤새 구조를 기다린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슈퍼휴먼센터에서 전문 의료진의 도움으로 재활 훈련을 받고 있는 병사들. 사진 장예지 특파원
가까스로 죽음을 피해 살아남은 병사들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겨레가 지난달 11일 찾은 슈퍼휴먼센터에선 15명 가량이 전문 의료진과 함께 재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슈퍼휴먼센터는 250명의 의료진과 직원이 병사들에게 최신형 의수를 제공하고, 여기에 적응해 걷고 움직일 수 있는 훈련을 진행한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아들 하워드 버핏이 운영하는 미국 하워드 지 버핏 재단의 지원을 받아 2023년 4월 문을 연 이곳은 해마다 3000명의 부상병을 받고 있다. 센터에서 한 달 넘게 재활 중인 바실은 군 입대 전만 해도 산림관리를 직업으로 삼았지만, 제대 후엔 참전 군인을 위한 정부 지원 정책 설계 일을 해보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바실처럼 슈퍼휴먼센터에서 무료 지원을 받는 건 운이 좋은 경우다. 그도 이곳에 오기 전엔 우크라이나 서남부 빈니차에 있는 병원에서 3개월간 침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 한국인 이병훈(58)씨도 지난해 7월 드론 공격을 받아 왼쪽 팔을 잃었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키이우와 르비우 등에서 병원 네 곳을 전전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서야 슈퍼휴먼센터에 올 수 있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프랑스와 우크라이나 보건 당국의 지원으로 동부 지역 전장과 보다 가까운 남부 오데사 등 5개 지역에 슈퍼휴먼센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씨는 한겨레에 “부상병은 너무 많고, 의료진과 병상의 숫자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슈퍼휴먼센터 지원을 신청한 뒤 대기자가 너무 많아 오래 기다려야 했다. 키이우 및 슈퍼휴먼센터 옆 군병원에서 입원했을 때도 병상이 부족해 소아과, 산부인과 병동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슈퍼휴먼센터에서 전문 의료진의 도움으로 재활 훈련을 받고 있는 병사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신체 부위를 잃는 큰 부상을 입고도 다시 싸우길 원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슈퍼휴먼센터 관계자는 “퇴원하는 병사의 30%는 다시 군으로 가길 원한다. 이들은 드론 조종을 하거나 병사 훈련을 맡는 등 비전투 보직도 생각한다”며 “내가 아는 병사는 발목을 잃었지만 여전히 군에 있고, 최근엔 파편을 맞아 다시 치료를 받으러 왔었다”고 전했다. 미콜라이우 출신의 안드리(37)도 비슷한 생각이다. 헤르손 지역에서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고 슈퍼휴먼센터 치료를 받게 된 그는 군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안드리는 “전투에 투입되기 전 영국과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군으로부터 군사 기술 관련 훈련을 받았다. 여기에 감사한 마음이 크고, 이들에게 얻은 지식을 공유하고 싶다”며 “적(러시아)이 여전히 그곳(전장)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슈퍼휴먼센터에서 만난 미콜라이우 출신의 안드리Andriy(37). 그는 퇴원한 뒤에도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안드리는 “전투에 투입되기 전 영국과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군으로부터 군사 기술 관련 훈련을 받았다. 여기에 감사한 마음이 크고, 이들에게 얻은 지식을 공유하고 싶다”며 “적(러시아)이 여전히 그곳(전장)에 있다”고 말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안드리가 다시 싸우려는 건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도 연결돼 있다. 안드리의 가족은 미콜라이우주에 살고 있는데, 그는 러시아가 마을을 점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미콜라이우 일부는 실제 러시아가 점령한 뒤 현재는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상태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안드리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병사에 대한 정보나 기록 등을 찾으려고 한다”며 “나는 러시아의 적이기 때문에, 만약 마을이 점령되면 러시아는 우리 가족을 죽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휴먼센터에 전시된 각종 의수 모형. 사진 장예지 특파원
르비우/장예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