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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AFP=연합뉴스
" “모든 것은 트럼프의 설정(setup)이었습니다.” " 동북아 외교에 정통한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정책·동아시아학 교수는 2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8일 ‘노딜 파국’으로 끝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공개 설전에 대해 “우크라이나를 포기하고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과 거래할 방법을 찾고 있던 트럼프가 충돌을 도발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TV 카메라 앞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공개적 모욕을 준 것은 미국 도움없이는 홀로서기 어려운 우크라이나의 초라한 현실을 드러내고 미·러가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합리화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된 ‘쇼’였다는 의미다. 스나이더 교수는 그러면서 “지난달 28일은 미국 외교사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고립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라고 규정하며 “대통령 취임 후 지난 40여일간 우리가 목격한 것은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미국 민주주의가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트럼프는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다”며 “트럼프의 진정한 동맹은 러시아·중국·북한 등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1974~1978년 주한 미대사를 지낸 리차드 스나이더를 부친으로 두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스나이더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이 더는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나이더 교수 인터뷰는 최근 두 차례 서면으로 진행됐다.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정책ㆍ동아시아학 교수.


“푸틴과의 계획 정당화 위해 도발”

Q : 트럼프ㆍ젤렌스키 회담을 어떻게 봤나.

A :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포기하고 푸틴과 거래할 방법을 찾고 있었고, 그들(트럼프 행정부)은 트럼프가 이미 푸틴과 계획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충돌을 도발한 것이다.”

Q : 일각에선 젤렌스키 옷차림이 빌미가 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A :
“넌센스다. 그날 벌어진 모든 것은 트럼프의 설정이었다. 트럼프와 JD 밴스 부통령의 터무니 없는 행동에 당연히 분노한 젤렌스키는 생존과 자유,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한 나라의 용기 있는 대통령으로서 명예롭게 행동했다.”


“한국도 더는 미국 믿을 수 없어”

Q : 힘의 논리 앞에 무력한 약소국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는데.

A :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이 더는 조약·공약을 지키는,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난달 28일 회담 직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젤렌스키가 트럼프와 밴스가 놓은 덫에 걸려 사태가 악화됐다고 보도했다. 잭 리드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도 NBC 방송 인터뷰에서 “백악관 집무실에서 벌어진 광경은 계산된 정치적 매복(ambush)이자 미국 리더십의 부끄러운 실패”라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진정한 동맹은 러·중·북”

Q :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A :
“트럼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돼 온 동맹 체제와 세계 정부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트럼프의 진정한 동맹은 ‘다자주의’란 이름으로 전후(戰後) 질서를 파괴하려는 러시아·중국·북한·이란 등 동료 권위주의 정권이다.”

Q : 미·러 밀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다.

A :
“트럼프는 히틀러(독일)·스탈린(구소련) 조약과 비슷한 방식으로 러시아 푸틴과 협상하고 있다. 이는 유럽을 러시아의 손아귀에 맡기는 위험한 상황을 부를 수 있다. 트럼프는 중국과도 비슷한 협상을 할 것이다. 저는 한국, 일본과의 동맹도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본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2018년 7월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에 이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고립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

Q : 그린란드와 캐나다 병합 욕심을 숨김없이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이 팽창주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 :
“트럼프는 고립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이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는 서반구 전체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주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유럽은 푸틴에게, 동아시아는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에게 제국주의적 통제권을 비슷하게 양보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논리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트럼프는 취임 후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A :
“우리가 목격한 것은 미국 민주주의가 남북전쟁 이후 가장 큰 위기라는 것이다. 내부로부터 헌법 질서를 전복하고 공화국을 형성한 근본적 가치와 이념을, 그에 반대되는 권위주의 정권으로 대체하려는 분명하고 의식적인 시도가 있다. 저는 트럼프와 밴스, 그리고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를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주의자들이 미국 민주주의뿐 아니라 전 세계 민주 정부에 위협이 되는 네오파시스트라고 믿는다.”

Q :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비교적 안정적인데.

A :
“저는 내년 중간선거의 실시 여부조차 의심스럽다고 본다. 네오파시스트들은 1933년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테러 사건 등을 조작해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지 않는 구실을 찾으려 할 것이다.”
독일 나치 정권은 1933년 2월 27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발생하자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독일 헌법의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언론·집회·표현의 자유를 금지했다. 독일 총선은 같은 해 3월 5일 예정대로 치러졌지만 공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나치 정권이 독재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나이더 교수는 이 대목에서 “너무 어둡게만 말해서 미안한데 제가 보기에는 그렇다”며 “민주주의에 관한 한 한국은 미국인들이 따라야 할 빛나는 모델”이라고 했다.



“푸틴에 양보 후 대북 협상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Q : 트럼프가 대북 정상외교 재개 의지를 밝혔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A :
“트럼프는 분명히 김정은과 다시 만나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추구했던 협상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협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고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정은이 더는 트럼프와의 대담한 협상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협상은 주한미군 철수 대가로 핵무기를 동결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협상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푸틴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뒤 이뤄질 수 있다.”

Q : 트럼프 정부 ‘관세전쟁’ 대비를 위해 한국에 조언한다면.

A :
“자동차 관세를 포함해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에 매우 직접적인 타격을 줄 광범위한 관세가 부과될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 특히 일본, 유럽연합(EU)과 분명한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 대응은 국제 무역 시스템에서 기능이 가능한 부분을 살리고 이들 국가 간 무역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동아시아사 학사 학위를,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스탠퍼드대에서 국제정책 및 동아시아학을 가르치며 한미경제연구소(KEI) 비상근 석좌연구원으로 있다. 미국의 아시아 외교안보 정책과 한ㆍ일 외교정책 등을 연구했고, 1985~1990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한·일 외교 관계 등을 취재했다. 공저로 펴낸 책 『두 개의 코리아』, 『분열된 기억』 등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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