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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대통령과 술자리를 함께했던 의원들 상당수가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에서 계엄 얘기를 화풀이하듯 하곤 했다”고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에 적었다.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해 8월부터 “계엄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며 매뉴얼을 만들었다. 12·3 계엄 직후 군인들이 국회로 몰려오자 단전조치를 막기 위해 즉시 “전기실을 폐쇄하라”고 지시했다. 김 총장은 군인들이 착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자 앞장서서 본회의장 진입을 막았다. 정치권에 파다했던 계엄설을 언론은 주목하지 않았다. 부끄러울 뿐이다.

복수의 범죄 혐의, 지나친 권력욕…
대선 출마 시 중도·보수 공포 느껴
과도한 대통령 권한 줄이는 개헌
분열된 국가 통합의 출발점 될 것

계엄 직후부터 다음 날인 4일 새벽까지 경제 수장 4인의 거시경제, 금융 현안 간담회(F4 회의)가 열렸다. 이미 환율은 야간 외환시장에서 폭등했다. 주식시장을 개장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시장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닫아야 한다”는 주장과 “닫으면 외국인 투자자에게 위험신호가 된다”는 의견이 맞섰다. 결국 주식시장을 열었다. 외국 자본의 ‘코리아 엑시트’가 발생할 뻔했다. 12·3 이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여부는 이달 중순 결판난다. 정신나간 국가원수에 대한 단죄를 놓고 무의미한 내전을 벌이는 동안 세계는 폭주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맞서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3년간 함께 싸웠던 동맹 유럽에 일언반구도 없이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종전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힘이 빠진 유럽연합(EU)을 “미국을 뜯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조롱했다. 미합중국의 모태(母胎)인 유럽의 치욕이다. 백악관에서 만난 젤렌스키에게는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광풍 속에 독일은 하나로 뭉쳤다. 2월 총선의 승자인 기민당 메르츠 대표는 “미국이 이제 유럽의 운명에 무관심하다”고 일갈했다. 사민당 숄츠 총리와 손잡고 대연정 구성 협상에 들어갔고, 국가부채 한도와 방위비를 늘리는 중이다.

일본은 트럼프의 출마가 예상된 1년 전부터 아베 전 총리 시절의 외교 참모들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대비했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와의 첫 정상회담이라는 험로를 무사히 통과했다.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 관세 부과를 한 달 앞두고 산업의 중추인 자동차·반도체 업계가 초비상이다. 미국이 원하는 조선·방산 협력을 연결고리로 트럼프의 마음을 열어야 하지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도 하지 못하고 있다. 코리아 패싱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무협소설처럼 황당무계한 위헌·불법 계엄이 초래한 혹독한 비용이다.

술에 취한 광인(狂人)은 무대에서 퇴장했다. 적대적 공생관계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독무대다. 세간에선 이 대표가 권력욕이 지나치고 내 이익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이 3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그는 3월 26일의 선거법 2심 재판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오더라도 대선에 출마할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 84조 ‘현직 대통령 불소추’ 특권의 해석을 놓고 나라가 정확히 둘로 쪼개질 판이다.

당사자는 재판이 중단되는 것이 다수설이라고 하지만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다. 만일 대법원이 임기 중에 재판을 열어 유죄를 확정한다면 그는 즉시 물러나야 한다. 몇 달 간격으로 두 명의 대통령이 실격(失格)되는 한심한 나라를 남들이 어떻게 볼까. 영국 조사기관은 이미 한국을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격하시켰다. 이런 나라를 믿고 투자할 수 있을까. 대법원이 대통령 퇴임 후로 재판을 미룰 수도 있다. 그러면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불복 투쟁으로 국정은 엉망이 될 것이다.

가장 현명한 결정은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오면 이 대표가 대선 출마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옆도 안 보고 전력질주할 것이다. 복수의 범죄 혐의라는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그를 향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윤석열이 사라지면서 이재명의 약점과 위기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는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하는 것이다. 권력을 혼자서 휘두르지 않고 총리, 국회, 지방자치단체와 협치하자는 것이다. 중도·보수층의 공포가 한결 줄어들 것이다. ‘범법자의 과욕’이라는 부정적이고 수세적인 프레임을 ‘국가 100년을 좌우할 시스템 개혁’이라는 긍정적이고 공세적인 어젠다로 전환할 수 있다. 강력한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2030세대도 공감할 것이다. 찢긴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다른 주자들은 모두 대통령 권력분산 개헌을 약속했다.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제7공화국을 열겠다고도 했다. 이 엄중한 대세를 홀로 거부하면 “권력욕의 화신”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당선을 장담할 수도 없고, 대통령이 된들 제대로 힘 한 번 쓰지도 못할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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