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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대행 육사 졸업식 축사 눈길
상관 명령 맹목적으로 따른단 비판 커지자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충성과 용기 강조
지난 정부에서도 소신파로 평가
계엄 종료 후엔 2차 계엄 없을 거라 선언해
"군인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헌법적 사명에 근거한 올바른 충성과 용기, 책임이 내재화 됐을 때 부하들로부터 존경받고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육군은 지난달 27일, 김선호 국방부장관 직무대행 주관으로 서울 노원구 소재 육군사관학교에서 '제81기 졸업 및 임관식'을 실시했다. 이날 총 231명의 사관생도(외국군 위탁생도 8명 포함)가 정예 육군 장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은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축사하는 모습. 육군 제공


지난달 27일 열린 81기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및 임관식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축사가 나왔습니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군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초임 장교들에게 "헌법적 사명에 근거한 충성과 용기를 가져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김 대행은 "'충성'과 '용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장교가 되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군인에게 '충성'이란 헌법이 규정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을 말하며 '용기'란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바름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며 "어떠한 순간에도 국가와 국민만 생각하며 올바른 '충성'과 '용기'를 실천하는 장교가 되어 달라"고 설명했습니다.

축사에 '헌법'이란 단어가 4차레, '올바름'이라는 단어도 4차례 등장했습니다.
상관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상명하복'이 아니라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올바른 충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상관이 헌법에 위배되는 명령을 내린다면 어렵지만 따르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도 암시합니다.

그동안 '헌법'과 '올바름'을 강조한 사관학교 축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전 국방장관들은 주로 '대적필승'의 정신이나 투철한 안보의식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은 2024년 육사 졸업식 축사에서 "육사는 지난 78년간 북 세습왕조의 적화야욕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정예 장교를 양성해왔다"며 "생도 1기·2기 선배님들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임관도 하기 전에 전선으로 달려갔다"고 강조하면서 북한과 싸웠던 선배들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이종섭 전 장관 역시 2023년 육사 졸업식에서 "6·25전쟁, 베트남전에서 목숨 바쳐 싸우던 선배들의 정신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강조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김 대행이 이번 육사 졸업식을 앞두고 어떤 메시지를 낼 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처음으로 열린 육사 졸업식인데다 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한 주요 지휘관들이 육사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휘관들은 국회 봉쇄 및 국회의원 체포 등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군 통수권자와 수뇌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수행해 비판이 커졌습니다.

군에서는 영화 '서울의 봄' 이태신 역의 실제 주인공이자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일당에 맞섰던 장태완 장군을 거론하며 "왜 이번에는 장태완 장군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김 대행은 이번 육사 졸업식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육사가 어떤 행동이 헌법에 부합하고 올바른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군인, 국가와 국민에만 충성하는 군인을 길러내야만 계엄이란 불행한 사태가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차 계엄 불씨 꺼트린 '원칙주의자'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2024년 12월 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2차 계엄 의혹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군 안팎에서는 이번 축사를 비롯해 계엄 이후 김 대행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이 '김선호'라는 인물을 잘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정무적인 판단보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소신파로 평가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중장으로 진급해 수방사령관을 지내던 그를 청와대가 주로 준장·소장급이 가던 국방비서관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건강상 이유'를 들며 전역신청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방비서관을 지내게 된다면 대장 진급도 어렵지 않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준장급 자리에 중장을 임명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봤습니다.
정부가 군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신 전 장관 당시 차관으로 임명된 그는 비상계엄으로 김용현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에도 장관 직무대행을 맡고 있습니다.
김 대행은 지난해 12월 6일 계엄이 종료된 지 사흘 만에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만약 (2차) 계엄발령에 대한 요구가 있더라도 국방부와 합참은 이를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으로 계엄 종료 직후 기자들 사이에서 2차 계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원칙'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당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전으로 권력의 힘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입니다. 헌법에 맞지 않는 지시라면 군 통수권자의 지시도 따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국민들은 2차 계엄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었습니다.


그가 또 한 번 소신을 드러냈던 것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때였습니다. 당시 대통령 경호처는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에도 응하지 않으며 물리력을 동원해 공수처 수사관 및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했습니다. 특히 인간띠를 만들어 수사관들의 진입을 막았는데 이때 경호처에 배속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55경비단 장병들을 동원해 논란이 커졌습니다. 의무복무 장병들을 영장 집행 저지라는 불법적인 현장 일선에 투입시킨 것입니다.

당시 국방부 주간 기자 간담회에서도 55경비단의 투입에 대해 "우리 장병들이 위법한 행동을 하게 내버려둘 것이냐"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실무자들이 김 대행에게 이런 의견들을 전달하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고 합니다. 김 대행이 이미 경호처장, 경호차장에게 장병들을 투입하지 말라고 전했고 55경비단장에게도 체포 영장 집행 저지에 나서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55경비단은 대통령 경호처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부대이고 윤 대통령 측과 여당에서는 법원의 영장을 위법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면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못하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부하인 55경비단장과 장병들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습니다.


55경비단에 나서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드러나자 여권 측에서는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의 일부 군 선배들도 김 대행이 대통령을 보호하지 않는 것 아니냐면서 비판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군 출신인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은 내란 국조특위에서 이 같은 지시를 한 이유를 묻자 김 대행은
"법 집행 과정에서 군 병력을 투입해서 물리적 행위를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부여된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이에 임 의원이 "대통령 측에서는 (체포) 영장 자체가 위법하다고 얘기하는 것을 모르느냐"고 따지자, 김 대행은 "그것이 위법하다고 규정이 난 것도 아니다"라며 "저한테 부여된 권한으로 부대장한테 명확한 지침을 줘야 한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이어 그는 "그렇게 (위법한 영장 집행이라고) 결론이 나서 제가 한 것이 월권이고 직권남용이라면 책임을 지겠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원칙을 지키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윤 대통령이나 계엄에 가담한 군 지휘관들에게서 듣지 못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철학이 있는 군인이 필요하다"

지난달 27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81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임관 장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최근 한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 있습니다.
김 대행의 모습을 보면서 군인들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계엄 이후 대다수 계엄 가담자들은 "상관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다", "대통령과 장관의 지시가 위법한지 아닌지 판단할 경황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명령이니까 그냥 했다는 것입니다.

12·12 군사반란의 주역들이 내란죄로 처벌받은 지 수십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스스로 위법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는 장군들을 보면서 기가 차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아무리 계엄 상황이라도 국회에 진입해 본관 유리창을 깨면서,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을 시 처단한다는 섬뜩한 포고령 문구를 보면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몰랐다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육사 졸업식을 보면서 왜 이런 판단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습니다.
취재진이 육사 졸업생을 인터뷰하면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육사 정훈실장이 급하게 질문을 제지했다고 합니다.
왜 인터뷰를 검열하려고 하냐는 기자들의 항의에 그다음부터는 질문을 막지 않았지만
여전히 졸업생들은 정훈실장 등 학교 관계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바른 신념이 형성되도록 만드는 것보다는 외부 시선에 몸을 사리고 상관의 명령에 판단 보다는 맹목적 복종만 하도록 가르치는 군의 모습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한 육군 대령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장교들을 정치적 바보로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헌법 가치와 정치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관의 지시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됐을 때는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2·3 불법 계엄을 계기로 육사 생도 시절부터 신념이 있는 군인, 철학을 가진 군인으로 육성하는 제도와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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