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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선 전세버스에는 지역 이름과 소속 단체 등이 적혀있었다.

“젊은 사람이 오니까 예쁘네. 유튜브에도 많이 나와 있거든, 공부 많이 해야 해.”

한겨레 기자들은 삼일절이던 지난 1일 서울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새벽 전국 각지에서 서울행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운동본부(대국본)의 ‘천만 광화문 국민대회’(국민대회)와 여의도에서 열린 ‘세이브 코리아’가 연 ‘3·1절 국가비상기도회’로 향하는 버스다. 기자들은 영남과 호남, 충청 등 지역마다 단체 운영자들에게 연락해 탑승을 예약했다. 이 중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아 버스에 오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날 새벽 6시40분께 호남 한 지역의 주차장에는 전세버스 4대가 나란히 섰다. 대국본 회원들이 이날 106주년 삼일절을 맞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마련한 버스들이다. 연휴 첫날 이른 아침이었지만 45인승 버스는 순식간에 가득 찼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상경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회원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버스를 처음 탄 회원은 2∼3명 정도로 보였다. 버스에 오른 참가자들의 나이는 40대 후반부터 70대까지였고, 대체로 60대 이상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애국 우파’라고 했다. 이들은 집회 참석이 익숙한 듯 가방에는 플라스틱 접는 의자부터 돗자리, 태극기가 꽂혀있었다. 우리네 여느 이웃과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탄핵 반대 집회로 향하는 전세버스에서는 간이 특강이 열리기도 했다.

참가비 3만원, 건강식품 판매와 간이 특강도


참가비는 3만원. 점심과 저녁으로는 빵이나 김밥, 밥과 김치, 콩나물 무침이 전부인 소박한 도시락이 제공됐다. 바나나와 음료수, 사탕 등도 놓여있다. 버스는 담임 목사의 기도나 인솔자의 발언으로 출발을 알렸다.

서울로 향하는 전세버스 행렬은 고속도로를 가득 메웠다. 버스 앞 엘이디(LED) 전광판에는 출발 지역을 표시한 지역명 뒤로 ‘자유마을’이나 ‘대국본’, ‘세이브 코리아’ 등이 뚜렷하게 표시됐다. ‘광주 9호’ ‘익산 5호’ 등 지역과 번호로 상경 규모를 짐작게 했다. 이날 호남 지역에선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지 않았다.

출발지에서 1~2대로 시작했던 버스 행렬은 중간지점인 정안 휴게소나 신탄진 휴게소에는 수십여 대로, 안성 휴게소 인근에서는 100여 대로 불어났다. 안성휴게소는 각각 광화문과 여의도 집회 참여 버스로 혼잡했고, 화장실 앞에는 30m가량 긴 줄이 늘어섰다.

한 버스 인솔자는 기자에게 “청년이 와서 너무 대견한다”고 했다. 그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모두 좌파들이 ‘독재자’로 만들었지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살린 분들”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그다음으로 제일 훌륭한 대통령이다. 우파 유튜브 보고 공부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인솔자의 기도 뒤로 ‘아멘’이라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버스 안에서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기도 했고, 탄핵 심판 관련 간이 특강이 열리기도 했다. 세이브코리아 관계자는 “헌법재판소가 형사소송법을 준용해야 하는데 이를 준용하지 않고 탄핵 심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헌법재판소법 위반”이라고 했다.

같은 탄핵 반대라도 “우리가 진정한 우파”


“수박은 빨간 부분이 영양가 있는 부분이에요. 우리(대국본)가 그렇고요. 세이브코리아 쪽은 이념이 달라요. 윤석열 대통령 이것(탄핵 반대)만 우리가 조금 봐주는 거야.”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인솔자의 말이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취지는 같지만, 광화문과 여의도 집회에 참여하는 인원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광화문 행 버스를 탄 한 참가자가 “여의도에서 열리는 ‘세이브코리아’ 집회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어 이 버스를 탔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회원이 “거기를 왜 가느냐”고 핀잔을 줬다. 전광훈 목사 집회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의 사고는 뚜렷했다. 전 목사와 입장이 다른 단체나 개인은 이단, 공산당, 빨갱이라는 취지다. 이들은 여의도 집회를 열고 있는 손현보 목사는 이단, 보수언론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좌파라고 했고, 제이티비시(JTBC)는 중국 공산당 지지 언론으로 표현했다.

이들은 보통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부터 반대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한 참가자는 “몇 년 전부터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집회에 많이 참여했다”며 “이후 한동안 집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버스를 탔다. 문재인 때 나라가 공산화됐는데 이재명에게 나라를 또 바치려고 하니…”라고 했다.

탄핵집회 현장이 가까워지자 버스에 타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은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명의 ‘한마음으로 힘써 싸우세’라는 찬송가를 작게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했던 것은 시간이 갈수록 합창으로 번져나갔다. 이 중 일부는 노래 중간에 ‘아멘’, ‘주여 대한민국을 지켜주소서’ 등을 외치기도 했다.

1일 광화문 광장에는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전세버스 행렬


광화문 인근 주차장과 도로는 전국에서 온 전세버스 수백여대로 가득 찼다. 광주에서 전세버스 업체를 운영하는 60대의 한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전에는 탄핵 촉구, 가결 뒤에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려는 단체들이 매주 2∼3대씩 꾸준히 예약하고 있다”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전세버스 1일 대여비용은 90만∼100만원으로, 겨울방학이 끝나면 비성수기이지만 최근에는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버스가 광화문에 도착한 뒤에는 대부분 각자 집회 현장으로 이동한다. 정해진 시간까지 집회에 참석하고 다시 버스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오후 4시 광화문 일대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한창이었지만 경북 김천과 구미, 부산 등 먼 곳에서 온 참가자들은 귀가를 서둘렀다. 버스 기사는 “여기서 5분 늦게 출발하면 집까지는 1시간 이상 더 걸린다”고 탑승을 재촉했다.

귀갓길 버스 안은 피로에 지친 참가자들이 대부분 잠을 청해 고요했다. 그 와중에도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우파 유튜버들의 목소리가 돌림노래처럼 버스 안을 가득 메웠다.

글·사진 특별취재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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