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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직적·지능적 범행…시장 신뢰 훼손”
부당이득액 산정 안해…2심서 쟁점될 듯
[법알못 판례 읽기]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투자컨설팅업체 호안투자자문 라덕연 대표가 2023년 5월 1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3년 국내 주식시장을 뒤흔들었던 이른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폭락 사태’의 주범인 투자자문업체 호안투자자문 라덕연 대표에게 징역 25년의 중형이 내려졌다.

법원은 “모든 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 시세조종 범행”이라며 자본시장법 위반 등 검찰이 적시한 혐의 전부를 유죄로 판단했다.

검찰과 라 대표 양측이 모두 항소를 제기해 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시세조종 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단 기조가 확인된 판결이라는 평가다. 상급심에선 1심 재판부가 특정하지 않은 부당이득액의 규모를 두고 양측이 공방을 펼치게 될 전망이다.

“회복 불가능한 피해…반성 없어 죄질 불량”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정도성)는 2월 13일 라 대표에게 징역 25년과 벌금 1465억1000만원, 추징금 1944억8676만여원을 선고했다. 2024년 5월 보석으로 풀려났던 라 대표는 이날 재차 법정구속됐다.

라 대표의 측근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변모 씨와 안모 씨 역시 각각 징역 6년(및 벌금 26억원), 3년 6개월(및 벌금 5억원)을 선고받고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이들 피의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시세조종에 따른 자본시장법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 포탈, 허위 세금 계산서 교부) 등이다.

재판부는 이들의 범행을 “범행 규모와 수법, 범죄 기간, 투자 금액, 시세조종 주문 횟수와 거래량, 범행 가담 인원, 범죄수익 규모 및 은닉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대규모 시세조종”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특히 이번 사건이 시장 질서를 교란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재판부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형성돼야 할 주가를 의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방해해 다수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했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의 피해가 돌이킬 수 없다는 점도 주요 양형 사유로 적시됐다. 재판부는 “시세조종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큰 폭으로 부양된 주가가 한순간에 폭락하면서 다수의 선량한 투자자는 물론 라 대표 조직의 일반 투자자에게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했다”며 “라 대표 조직 주도의 레버리지 투자로 증권사에도 막대한 규모의 미수금이 발생했고 투자자들의 현재 자금 여력을 고려하면 피해 변제는 요원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라 대표에 대해 “조직적 범행 전반을 계획하고 주도해 실행했음에도 이를 전면 부인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중형을 선고한 취지를 “공정한 거래 질서를 조성해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시세조종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며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함”이라고 적시했다.

檢 기소 2년 만…주요 혐의 모두 인정


검찰이 라 대표를 기소한 건 2023년 5월이다. 사건의 발단은 같은 해 4월 말 선광·하림지주·세방·삼천리·대성홀딩스·서울가스·다올투자증권·다우데이타 등 8개 종목의 시가총액이 사흘간 약 7조4000억원어치 증발한 주가 폭락 쇼크였다.

급락한 종목들이 매물이 모두 외국계 증권사인 SG증권을 통해 쏟아져 나와 ‘SG 사태’라는 명칭이 붙었다. 시장에선 주가조작 세력에 의한 통정매매(주식 매도·매수자가 사전에 거래 시기와 수량 등을 협의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불법 행위)가 이 사태의 배경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8개 종목은 2022년 4월부터 약 1년간 저점 대비 400% 이상 급등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즉각 배후 세력을 캐내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과 금융·증권범죄 중점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은 합동 수사팀을 꾸린 지 11일 만에 라 대표를 체포했고 구속영장을 발부받는 데도 성공했다.

그 이후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라 대표와 변 씨, 안 씨 등 사태 핵심 인물로 지목된 3인방이 동시에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2019년 1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통정매매와 고가 매수, 허수 매수 등 방식으로 8개 상장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우거나 하락을 방어해 약 7377억원의 이익을 취했다고 봤다.

검찰이 산정한 부당이득액은 국내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검찰의 구형은 징역 40년에 벌금 2조3590억원, 추징금 127억원이었다.

라 대표 일당은 2019년 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917명의 고객을 상대로 투자일임업을 영위했다. 이들은 고객들로부터 7932억여원을 넘겨받고 고객 명의의 증권계좌를 위탁받아 관리하며 투자 수익의 50%를 정산금(투자일임수수료)으로 챙겼다.

정산금은 투자자 명의의 차명 증권계좌를 통해 지급받거나 조직이 관리하는 법인의 매출인 것처럼 조작해 ‘세탁’했다. 수사 과정에서 조세 포탈 혐의도 드러나 검찰의 추가 기소가 이뤄졌다.

라 대표 일당은 돈세탁을 위해 총공급 가액이 104억원에 달하는 허위 세금계산서를 641회에 걸쳐 발급했다. 그는 정산금을 허위로 회계처리하고 하위 직원들에게 과세 근거 자료를 은닉하라고 지시했다. 2020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는 약 719억원어치의 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 신고를 누락했다.

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판결문에 적시된 라 대표 일당의 시세조종 주문 제출 횟수는 3만801회(수량으로는 3037만188주)다. 재판부는 체계적인 분업 구조와 차액결제거래(CFD) 등을 활용한 주식 레버리지 투자 방식, 다단계식 투자자 모집 등 라 대표 일당의 범행 수법이 매우 고도화된 것으로 봤다.

라 대표를 중심으로 50여 명의 조직원은 영업관리팀, 매매팀, 정산팀, 법인관리팀 등 업무를 분담해 900명이 넘는 투자자를 모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범행에 가담한 인원을 최소 60여 명까지 인정했다.

특히 조세 포탈 혐의와 관련, 재판부는 “조세수입 감소에 따른 국고 손실로 국민 모두에게 부담이 전가돼 비난 가능성이 큰데도 피고인은 이를 보전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주가 폭락 사태 발생 직후 직원들에게 과세 근거 자료를 감추라고 지시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양형 요인으로 고려됐다.

[돋보기]

법원 “부당이득액 산정은 곤란”


다만 법원은 라 대표 일당이 시세조종으로 부당하게 얻은 이득액을 명시하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라 대표 일당이 취한 부당이득은 적어도 수천억원 이상인 것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며 이를 양형 요소로 고려한다면서도 “약 3년 4개월에 걸친 주가 상승분에는 다양한 외부적 요인이 포함돼 있어 산정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이번 사건이 자본시장법 443조 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을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요인에 따른 상승분을 분명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형사법의 유무죄 판단에선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는데 검사의 증명이 부족했다”고 부연했다.

검찰과 라 대표 양측이 모두 항소하면서 2심에서 부당이득액 규모에 대한 법원 판단이 달라질지 주목된다. 라 대표는 1심에서 검찰 출신 이원곤 대표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평산과 함께 바른, 대륙아주, 가온, 로집사 등 대형로펌을 줄줄이 선임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한 바 있다.

한 남부지검 출신 변호사는 “통상 부당이득액 산정이 쉽지는 않다”며 “라 대표 측은 항소심에서 주가조작과 실제 주가 상승분 사이의 인과관계를 집중적으로 다퉈 부당이득액 규모를 줄이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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